1997년 3월 13일
오늘은 학교에서 생활 계획표를 만들었다. 거기에 7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썼기 때문에 어떻게 내가 7시에 일어날 건지 막막했다. 그리고 할 줄 아는 운동이 있는데 학교 갈 준비 하기도 바쁜데 어떻게 운동까지 하냐는 것도 문제였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은 대체 언제 생겨난 것이며, 누가 만들었을까. 검색을 해봤다. 이 말은 일본의 의사 사이쇼 히로시가 쓴 동명의 책에 등장한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알려지고 유행어가 되었다고 한다.
아침형 인간 이전에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있었고, 최근에는 ‘미라클 모닝’이라는 것이 유행했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언가 보람찬 일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이다지도 많다니. 놀랍다.
97년에 쓴 일기에도 있듯이, 나는 7시 기상도 부담스러워하는 어린이였다. 아홉 살 때만 막막했던 것이 아니라 열아홉 살 때도 부담스러웠고, 지금도 그렇다.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동이 틀 때쯤 일어나서 뭔가 해보겠다고 결심한 적도 없다. 타고나길 큰 계획과 포부가 없는 사람이라 그런 것도 있겠으나, 일어나는 것 자체가 늘 힘들었다.
그러나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고 지각하는 어린이는 또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한 번 깨우시면 즉각 일어나는 아이였다. 지금은 6시 45분에 알람을 들으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알람은 그 한 번이면 충분하다. 일어나야만 하는 시간에 딱 한 번 알람을 해놓고, 그걸 듣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그래서 지금도 약속이 몇 시든 늘 일찍 가 있는 편에 속한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내 삶은 대체로 주어진 시간표에 순응하지만, 능동적이고 부지런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9시까지 학교에 가야 하니 8시에는 아무 저항 없이 일어나면서도 7시에 일어나겠다는 계획표를 보면 막막해하는 아홉 살의 나처럼 말이다.
그렇게 일정하게 이어져 온 궤도에서 유일하게 이탈했을 때가 있으니 바로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내 짝은 우리 학년의 유명한 전교 1등이었다. 그 친구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친구에게 늘 세심한 조언을 해주는, 마음이 여유로운 아이였다.
한 번은 수험생들의 영원한 화두, 몇 시간을 자야 양심에 덜 찔리는가(?)를 주제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수면 시간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었는데, 수면 패턴이 아주 놀라웠다. 밤에 조금 일찍 자고 무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다가 등교한다는 것이다.
새벽 3시라니. 듣기만 해도 전교 1등의 포스가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이 공부 시간에 감화된 나는 역시 1등이라고 감탄하며 5시쯤 새벽 공부를 하리라고 계획했다. 결과는 대단했다. 나는 오전 내내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종종 손수 깨워주시기도 했다. 새벽 공부 덕에 성적이 오른 것이 아니라, 잠 깨는 껌 종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껌박사가 되었다.
그 후 인생의 중요한 시험과 수험 생활을 몇 번 거치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내가 다시 인생 2회차를 맞이하여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아래와 같은 원칙을 지키겠다고 말이다.
1. 10시에는 드라마를 한 편 보며 휴식을 취한다.
2. 드라마가 끝나면 자고 7시에 일어난다.
3. 깨어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공부에 몰입한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공부나 운동으로 남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 7시에 일어나겠다고 세운 계획을 부담스러워했던 아홉 살 어린이는, 아침마다 그저 좀 더 누워있고 싶은 게으른 직장인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아침에 꼭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바로 ‘공복에 실내 자전거 타기’다.
평생 운동과는 담을 쌓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절교 상태로 지냈던 내가 그냥 운동도 아니고 아침 운동이라니. 아침도, 운동도, 둘 다 안 친한데 두 개를 한 번에 묶어서 해보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어찌나 냉담했는지 모른다.
꽂힌 이유는 별것 없다. 다이어트는 평생 마음 한구석에 지니고 가야 할 숙제이고, 요 며칠 연예 뉴스에서 공복에 자전거를 탄다는 여배우들을 많이 보았을 뿐이다. 이런 어이없는 이유로 실내 자전거를 사겠다는 결심에 대한 반응으로는 이러한 것들이 있었다. 옷걸이가 필요하면 옷걸이를 사라, 당근에 새것이나 다름없는 물건이 많다, 늙냐, 무응답, 등등….
나는 평소에 소비 활동에 큰 관심이 없으므로, 무언가 사겠다고 하면 남편은 대체로 지지해 주는 편이다. 그러나 실내 자전거를 사서 아침에 타겠다고 선언했을 때의 반응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기다. 당황한 표정으로,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 뭐라고 알아듣게 타일러야 할까, 그런 복잡한 마음이 얼굴이 쓰여 있었다.
다행히도 자전거는 아직 사지 않았다. 해가 길어지려는 계절에 자전거를 사서는 괜히 볼 때마다 부채감만 느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분간 나의 아침 루틴은 변함없이 6시 45분 기상, 뚱이 아침밥 준비, 출근 준비가 끝일 것이다. 자전거는 역시 마음으로만 타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