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 2일
오늘의 일기 글감은 한일 축구 경기다. 어저께 축구 경기는 정말 아슬아슬했다. 그리고 축구 또는 야구 경기 같은 경기 같은 경기장은 비 올 때를 대비해서 실내로 해야지 기회는 많은데 길이 미끄러우니까 미끄러져서 슛이 안 들어가는 거다. 그래서 나도 열받았는데 미끄러지고 넘어졌던 선수들은 어떻겠나? 그래도 노력한 보람 2-1 역시 축구는 한국이다. 여기서 제일 안 된 사람이 있다. 바로 일본 축구 감독이다. 정말 스릴 만점이었지만 일본 감독이 불쌍하다.
이 글은 정말이지 남의 글 같았다. 엥? 네가 언제부터 운동 경기에 관심이 있었다고!
3학년 때 쓴 이 일기에는, 지금은 전혀 관심이 없는 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다. 나는 축구든 야구든 운동 경기에 별 관심이 없으며, 따라서 운동 경기를 보며 크게 기뻐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경기 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돔구장이 없어서 선수가 날았든 다쳤든 알지 못한다. 스포츠 뉴스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한일전은 열 살 꼬맹이에게도 인상적인 경기였나보다. 아빠가 보셔서 덩달아 강제 시청했을 것이 틀림없는 이 경기에 이렇게 몰입했다니. ‘야구 경기 같은 경기 같은 경기장’에서 지붕도 없이 뛰는 선수들을 보고 분개하여 쓴 일기를 보고, 이날의 기분이 어땠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일본 대표팀 수장에게 보내는 동정과 안타까움이라니. 맞는 말이긴 하다.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감독은 경기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일본 대표팀 감독의 미래까지 걱정한 것을 보니 98년의 한일전은 대한민국 어린이가 보기에 꽤나 명승부였던 것 같다.
98년의 한일전이라니! 어떤 경기였을지, 당시의 사회적 배경 상 지금보다 더 과열된 경기였을지 궁금했다. 워낙 오래전에 치른 경기라 자료가 남아 있을까 싶었는데, 흥미로운 뉴스가 있었다.
97년에서 98년, 그 1년 사이에는 한일전이 무려 다섯 차례나 치러졌다고 한다. 그중 98년 삼일절에 치러진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은 패배의 쓴맛을 보았다. 삼일절에 한일전 패배라니 이건 대표팀의 경기력이 문제가 아니라, 경기 날짜를 잘못 잡았지 싶다. 나 같은 쫄보는 종목이 무엇이든 삼일절에 대한민국 대표로 나간다는 생각만 해도 경기장에서 몸이 쪼그라들어 버릴 것 같다.
삼일절의 패배 이후 신문 기사는 수모, 치욕 등의 단어로 도배되었고, 한 달 만에 리턴 매치가 열렸다.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열리는 단순 친선경기였지만, 이날 경기에는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중계 시청률이 최고 73%까지 나왔다고 하니, 숫자로만 보아도 얼마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경기였을지 알 만 하다.
한 달간 이를 갈고 준비했을 우리 대표팀은 1:1 박빙의 상황에서 황선홍 선수가 결승 골을 터뜨리며 2:1로 경기를 끝냈다. 순식간에 날아올라 시저스킥으로 골을 넣었던 98년 만우절의 한일전은 황선홍 선수의 커리어 중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라고 한다.
내 인생에서 열 살 이후 축구에 진심이었을 때가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것은 당연히 2002년의 한일 월드컵이다.
중1이었던 나는 빨간색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친구들과 인근 대학교 운동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보았다. 축구 규칙은 잘 몰랐지만, 그때는 규칙을 몰라도 경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모든 국민이 들떠있었고, 틈나는 대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누가 공을 갖고 있느냐에만 집중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4강 신화의 여정을 실시간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는 점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나에게 축구 선수란 아직도 2002년에 머물러있다. 지금도 대개 어느 팀의 코치나 감독으로,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그들은 2002년의 여름,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참고로 이 시기의 연예인 잡지는 표지부터 내용까지 축구 선수 특집으로 발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팬덤이 갈렸다. 나는 김남일 파였다.
개인적인 이유로 올해 야구에 대해 틈나는 대로 공부를 하고 있다. 오타니나 이정후처럼 유명한 선수들의 이슈를 챙겨 보기도 하고, 야구팬인 작가님이 쓰시는 글을 매주 꼼꼼하게 읽고 있다. 사실 규칙도 복잡하고 모르는 단어도 많은 데다가 실제로 경기를 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포인트가 많아서 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입력되는 것 하나는, ‘입덕 포인트’다. 스포츠에 빠지고, 우리 팀에 애증의 감정을 갖게 되는 과정, 그것 하나만큼은 제대로 이해가 된다. 야구는 잘 모르지만, 중계 화면에 잡히는 팬들의 표정과 열기만큼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얼마 전, 우리 집 여섯 살 공주도 야구에 입덕 아닌 입덕을 하게 되었다. 야구팬도 없는 집에서, 야구를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아이가 대체 왜 야구팬을 하기로 마음 먹게 되었을까?
정답은 ‘유니폼’이다. 우리 뚱이와 친한 7살 동네 언니는 온 가족이 두산 베어스의 팬이다. 뚱이는 이 언니네 집에 놀러 갔다가 ‘아기곰’이라고 등판에 커다랗게 적힌 어린이용 유니폼을 보고 선언했다. 앞으로 야구장에도 가고 싶고, 아기곰 옷을 사서 자기도 두산팬을 하고 싶다고 말이다.
이 상황이 귀여운 남편은 “그래, 우리도 이제 다 같이 두산팬하자!”라고 흔쾌히 외친다. 아무래도 내년 시즌에는 잠실에 여러 번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