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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우 Nov 12. 2024

[실습 88일차] 해바라기를 보며

내 주변엔 온통 사각형뿐이다. 

어릴적 들었던 노래 네모의 꿈처럼, 네모난 칸막이가 내 자리를 가두고 사각형 창문과 벽들이 사무실을 외부와 분리한다. 눈 앞에 놓인 노트북과 책조차, 이제는 없어선 안될 휴대폰조차.

공정의 단순화를 위해 세상 사물들이 네모난 것임을 다시금 기억하곤 순응하기로 한다. 

흠칫 놀란다. 어릴때는 미처몰랐던 어른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내가 어딘가 어색하다.

다시 책을 펴고 읽어나가려는데 낮익은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이거 Tg좀 찍어줘" 툭,하고 책상위에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덩어리들이 놓였다. 


이제 먼 정신의 세계로부터 돌아와 맡겨진 업무를 해야만 한다. 사무실 밖으로나가 연구실로 가야만 한다.

어딘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진다. 몸이 편함이 분명한데도 해소되지 않은 욕구가 내 안에 있음을 의식한다.

어른들이 말하는 공부로 먹고살기가 가장 편하다는 말. 그 말은 몸이 편함을 의미할 뿐이다. 그들이 간과한것은 정신과 감정을 담당하는 두뇌도 신체의 일부라는 것.



밖을 나오니 바람이 상쾌하다. 무더운 여름이 드디어 지나감을 실감하곤 가을을 온 몸으로 느껴본다.

해바라기다. 사진로만 익숙했던 꽃을 실물로 보니 왠지 새롭다. 

뭉게구름이다. 하늘 보는 것을 괴롭히던 도시의 전깃줄이 없으니 더욱 그림처럼 느껴진다.

꽃은 이렇게나 아름답고 구름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트인다. 더는 원할게 없다. 

연구실 건물로 들어가 복도를 거닌다. 최대한 천천히 걸어야 한다. 다시 사무실에 돌아가도 할 일은 없으니 시간을 최대한 보내야 한다.

복도엔 반 고흐의 그림이 걸려있다. 아까봤던 그 해바라기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하다. 

마치 괴롭다고 소리치는 듯한. 그러면서도 중심만은 올곧게 자리잡은. 여전히 아름답다. 

나는 이렇게 살고있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안고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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