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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우 Dec 23. 2024

[실습 180일 END.] 비적응

실습 에세이

오늘 실습이 끝나는 기념으로 그동안 써왔던 실습에세이들을 되돌아 보았다. 

불과 8일만에 비적응을 선언하기도 했고 잠시 실습의 의미자체를 고민하다가 곧 버틸만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다시 이대로는 안된다라며 현재 처한 환경을 저주하기도 했었고 선선한 가을날의 바람에 따라 마음을 내려놓고 흘려보내기도 했었다. 


지금 보니 참 힘들었겠구나 싶다. 억지로 맞지도 않은 옷에 몸을 끼우고는 그 압력을 생생히 느낌에도 옷을 쉽게 던져버리지 못하고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했던 나를 상상하니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그렇게나 많이 실습을 하기로 한 과거의 결정을 후회했었고 아파했다.


근데 뭐 이제 다 끝났으니, 잘 된것 아닌가. 언제 끝날까 생각만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끝나는 당일에 도착해 있다. 돈이 모였고 회사라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산업에 종사하는 인간상들도 느꼈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고싶은 공부들을 했으니 이걸로 모두 잘 된 일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 작은 아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에 고통을 잊지말라는 듯, 후회를 반복하지 말라는 듯 잊지못할 아려움이 내 속에 여전히 남아 나의 일부가 될 터이다. 마치 군대처럼. 

실습을 하며 가장 많이 떠오르던 생각이 군대에서의 일들이었다. 자꾸만 겹쳐보이는 상황 탓에 나의 두려움은 배가되어 나에게로 돌아왔다. 다시는 마주하지 말자던 패턴이 반복되자 나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일상을 더이상 즐기지 못하고 휴식과 여가조차 괜히 쫒기는 마음으로 살아왔었다. 


그런 상황까지 다다르니 나는 군대 또한 나의 트라우마가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시절의 기억말고도 성인이 된 후의 강렬했던 기억 또한 트라우마가 되었음을. 그리고 나는 '잘' 살기 위해서 그런 트라우마를 존중하고 달아나야 함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진로를 정한거다. 내 삶의 방향을. 비적응자로 남기로. 세상의 주류로부터 달아나기로. 이게 전부가 아님을 믿기로. 분명 사랑의 세계가 존재함을 믿기로. 

주류세계로부터의 비적응. 

제조업(공장), 돈, 권력, 효율, 물질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주변의 곳에서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실습을 한 일은 잘 한일이 된다. 성과(결과)에 집착치 않기로, 더이상 적응하려 애쓰지 않고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기로 했으니 실습은 분명 긍정의 과거가 된다. 

다만 나는 계속 마음 한켠의 아려움을 끌어않고 살아가겠지. 비적응을 원하며.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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