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제로

에세이

by 이건우

결국엔 모든 것이 zero로 흘러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화학반응이 평형상태로 수렴하듯이 생명의 탄생과 죽음은 물론이요,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것들까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주를 떠나온 슬픔에 젖어있었습니다. 섬과 관광지라는 그곳만의 특수한 환경이 저를 매료시켰었지요. 집에서 조금만 걷다 보면 바다가, 들뜬 마음으로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여행객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저를 반겨주는 동료들이 좋았어요. 그렇게 한 달간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오게 된 뒤부터는 그곳의 향수에 취해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이제는 그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당장의 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과거의 좋았던 추억들은 어느새 잊히고 눈앞의 상황들에 충실하게 되는 거죠. 집에 돌아와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더 이상 봄의 풍경이 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겨우내 그렇게나 기다렸던 봄인데도 불구하고, 거리의 풀과 꽃,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에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아요. 제로가 되어버린 거죠. 또 있습니다. 일주일 전에 즐겨듣던 노래는 식상해지며 자주 방문하는 커피숍도 일상이 되고부터는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저가 커피 브랜드보다 웃돈을 준만큼의 만족감이 없어요.




그러나, 희망적인 사실은 좋지 않은 것들까지도 모두 결국은 제로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에요. 제주를 떠나온 슬픔이 사라지듯이, 매일 아침의 출근길도 곧 적응하듯이, 짜증 나는 잡념에 휩싸여도 한숨 자고 나면 개운하듯이 말이에요. 그렇게 세상 모든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이 제로로 흘러가면 다시 또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되죠. 어제의 산책길과는 다른 길을 탐색하고, 다른 카페를 방문하며, 새로운 노래를 디깅 하듯이 말이에요.

이런 '제로'의 원리가 사람을 다시 또 일어나게 하고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좌절로부터의 상승과 기쁨으로부터의 하강을 반복하게 하며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향하게 하는 거죠. 제로의 위 아래를 넘나들며 끝이 아닌 리듬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재미를 찾아내고 또 하루를 살아내게 하는 힘을 만들어 내는거죠.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도 언젠가 좋아하지 않게 되고 좋아하지 않는 일도 좋아하게 될 수 있으니 우리는 아무 일이나 하며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또 다른 문제이니 다음 글에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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