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 옷을 갈아입는 거리의 풍경은 덤이다
은행이 익어 갈 때
이른 새벽 출근길, 인적은 드물고 거리는 한산하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제법 걸을 맛이 난다. 하루의 청사진을 그리거나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걷다 보면 해결하지 못한 일의 실마리도 잡게 된다. 매일 새 옷을 갈아입는 거리의 풍경은 덤이다.
아파트를 돌아나가면 백정화 가로수 길이 나온다. 봄부터 가을까지 하얀 눈꽃 같은 꽃송이를 쉴 새 없이 터트리는 백정화는 두메별꽃이라는 친근한 애칭도 있다. 이름마저 청초한 모습에 어울리는 달콤한 향기가 거리에 번지면 별꽃 나라 이야기를 쉴 새 없이 건네는 것 같아 소녀처럼 마음이 설렌다.
사거리를 지나면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나온다. 노란 은행잎이 사방을 샛노랗게 물들이는 거리를 걸을 때는 마치 유럽의 어느 나라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밤새 떨어진 잎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일 때는 황금빛 주단을 깔아 놓은 듯 눈이 부신다.
사뿐히 지르밟으며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로 시작하는 김광균의 <추일서정秋日抒情>, 시 한 수를 떠올린다. 시대와 풍경은 달라도 가을에 느끼는 정서는 대개 비슷한 모양이다. 시에 나오는 포플러나무가 아니라 은행나무라는 사실만 다를 뿐 가을이 주는 호젓한 정취에 흠뻑 젖는다.
거리를 걷거나 운전 중에 불타는 듯 서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볼 때는 전신을 타고 흐르는 무언가를 느낀다. 나무가 전하는 이야기에 주파수를 맞추느라 심장에서 뻗어 나온 촉수가 온몸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깊은 심호흡으로 나무가 건네는 무수한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열매를 이리저리 피해 가며 걷는 것도 은행나무 아래에서만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니 반갑지 아니한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밟아 종일 따라다니는 구릿한 냄새에 난처했던 적이 있을 거다. 은행을 밟았다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뭣하여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가을에만 볼 수 있는 은행나무가 주는 멋스러운 추억이다.
은행나무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처음 겪는 COVID-19로 온 세상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다. 처음 겪는 이 상황은 낯설고 불편했다. 거리 두기와 영업시간 규제로 손님의 발길이 끊긴 식당의 폐업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방역 수칙과 수정을 거듭하며 바이러스와 맞서는 정책 속에서 생계마저 위협당한 이들은 필사적으로 살길을 모색했다.
그때 나는 계획되었던 수업이 줄줄이 취소되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울한 현실에 속수무책이었다. 세상을 헤쳐 나갈 나만의 무기 하나 없이 용케도 살아왔구나 하는 자괴감과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여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망망대해에 던져져 홀로 표류하는 조난자가 된 기분이었다. 스스로 헤엄쳐 빠져나갈 길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이처럼 큰 위기감을 느끼기는 처음이었지 싶다.
고민 끝에 간호학원에 등록했다. 간호사인 딸을 보며 환자를 돌보는 일은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집이 있는 시민공원에서 학원이 있는 로터리까지 20여 분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 다녔다. 철학자 칸트의 산책처럼 일정한 시각에 집을 나서 생각에 골몰하는 시간이었다.
매일 저녁 11시에 끝나는 이론 수업이 끝나고 요양병원 중환자실에서 보낸 실습 기간에는 코로나가 심해질 때마다 달라지는 방역지침으로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 감염자가 늘면 비대면 수업을 하고 줄어들면 정상 수업을 하며 우여곡절 끝에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코로나 이전의 세상이 직접 가고 보고 느낄 수 있는 예측 가능한 현실이었다면 코로나가 창궐하던 기간에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밤을 지새우며 자격증 공부에 몰입했다. 그해에 취득한 자격증이 여섯 개였으니. 어디에 쓰려는 계획도 없이, 닥치는 대로, 무작정, 그래야 안도할 수 있었다. 간호조무사 자격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글을 향한 꿈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글쓰기를 위한 나만의 노력도 쉬지 않았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소설을 듣거나 창작에 관한 자료들을 들으며 그 시간을 걸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날의 일들을 기록했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 년 동안 그 거리를 걸으며 가로수의 나무들처럼 나만의 이야기를 부름켜에 켜켜이 쟁여 나갔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그 길을 걸었다. 한여름에 짙은 초록의 나뭇잎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은행잎 사이로 몽글몽글 뭉쳐 가지마다 촘촘히 매달려 있는 은행 열매가 눈에 들어왔다. 은행잎이 없었다면 청매실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실하고 탐스러운 초록의 알맹이였다. 지금껏 노랗게 익은 은행만 보았지 연둣빛 은행알이 비바람 맞으며 햇살에 익어 가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십여 년 가까이 그곳에 살아도 가로수가 은행나무였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로 차로 이동해서 보지 못했거나 간혹 걸을 때도 관심사가 따로 있었기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다. 해마다 노란 은행나무를 보면서 초록의 은행나무를 떠올리지 않았던 건 가을의 은행잎이 워낙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거다.
그날 이후 여린 은행잎이 색을 더하고 은행이 몸피를 불리느라 도톰해지는 것을 보며 걷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은행나무에 기대어 자라는 작은 풀들을 보며 글감을 찾고 푸른 하늘을 찌를 듯 높이 뻗어 나간 나뭇가지에 걸린 구름을 사진에 담았다. 은행은 봄여름에는 사방 초록에 묻혀 제 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여름 뙤약볕에 만물이 익어 갈 때 은행도 시나브로 익어 간다.
사방 천지가 푸르고 창창할 때는 제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저마다 어떤 색으로 빛날지. 만약 이 길을 걷지 않았다면, 학원에 등록하지 않았다면, 삶을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은행의 참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양병원에 취업했다. 주로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를 돌보는 일이다. 한 분 한 분의 삶을 보는 일은 수백 년 세월을 버텨 낸 나무의 생애를 보는 것과 다름없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고난의 시간을 헤쳐 나온 당당함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숙연하여 절로 고개 숙이게 된다. 한 시대를 지나온 영웅들의 남은 생을 돌본다는 건 여간 가슴 벅찬 일이 아니다.
그 후로 자주 은행나무를 올려다본다. 비바람 맞으며 실하게 영글고 있는 열매에 눈길이 머문다. 새로운 길 위에 서서 걸음마를 떼는 아이와 다를 바 없는 내 처지 같아서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에 서니, 제풀에 의지가 꺾여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앞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그날의 은행을 떠올린다.
나무들이 숨겨 온 제 빛깔을 드러내는 가을이 오면, 은행나무는 제 몸을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그제야 우리는 제각기 품은 감성으로 은행 예찬에 앞다툰다. 가을은 바야흐로 은행의 계절이다. 잘 영근 열매를 가지마다 매달고 불타는 나무를 본다. 빼곡한 잎들 사이에서 늦은 가을까지 여무는 은행을 볼 때마다 우리들의 이야기 같아 코끝이 시큰해진다. 보는 이 없어도 저리 실하게 여물고 있구나!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은행잎을 떨군다. 길 위에 구르는 은행잎을 줍는다. 나의 작은 손길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 맺음의 전부인 그들에게로 간다. 잘 익은 가을을 보여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뛴다. 오늘도 나의 하루는 알알이 여물어 간다, 은행이 익어 갈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