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겨울바람,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여정)
어쩌다 서울(2026.1.20.)
딸이 새 직장으로 옮기며 조금 더 넓은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그 틈을 타 아내와 나는 아들 내외가 서울로 연수를 가는 일정에 맞춰 천안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처음에는 단순한 방문이었다. 그런데 연수를 함께 받기로 했던 동료가 갑자기 참석하지 못하면서, 이미 예약해 둔 방값을 환불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엄마 아빠, KTX도 한 번 타보시고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도 보실 겸 같이 올라가죠.”
언제부턴가 ‘KTX 한 번 타봐야지’ 생각만 했는데, 시간 대비 요금에서 늘 고속버스에 밀려 미뤄두던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딸은 새벽같이 출근하고, 남겨진 우리는 견과죽을 끓이고 두부와 사과를 반찬 삼아 아침을 먹었다. 며칠 전부터 내려온 한파주의보 때문인지 바람은 유난히 매서웠다. 아들은 “지금 택시 부르면 안 올 것 같다”며 우리를 역까지 태워주고, 다시 차를 주차하고 오겠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천안역 앞에 내려 아들 내외의 배낭 세 개를 메고 역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KTX 542, 17호차’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기차 타는 곳이 여러 갈래라 다시 물어 용산행 2번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아들 부부와 합류해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아늑했다. 속도를 실감하지 못하다가 마주 오는 기차와 스칠 때만, 그 빠름을 살짝 드러냈다. 눈을 뒤집어쓴 들과 산들이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났고, 그 풍경은 오래된 시골집을 떠올리게 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아들 부부의 인도에 따라 움직였다.
“지하철보다 버스가 덜 걷고 빨라요.”
그 말에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목수건에 모자, 마스크까지 단단히 했지만 바짓가랑이로 스며드는 찬 바람은 매서웠다. 잠시 ‘내의를 입고 올걸’ 하고 후회했다.
5012번 버스에 오르자 따뜻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한강의 물빛도 반짝였다. 버스는 더현대백화점 앞에 멈췄다.
1층 로비는 넓고 조용했다. 고급 매장들이 듬성듬성 자리해 있어 공원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지하 1층 ‘테이스티 서울’ 푸드코너로 내려가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인파가 물결처럼 밀려다녔다. 무엇을 먹을지 정하지 않은 채 사람들 틈에 섞여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비교적 한가해진 시간에 자리를 잡고 여유롭게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1층 로비에 올라온 아들은 잠시 머뭇거리다 아내에게 다가갔다.
“엄마, 무릎 아프다고 했잖아요. 휠체어 있는지 물어볼까요? 운전은 아빠가 하고요.”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좋지, 그럼 휠체어 신세 좀 져볼까.”
휠체어를 타고 매장을 한 바퀴 돈 뒤 엘리베이터로 6층에 올라갔다. 그곳에는 인형 매장이 여러 곳 있었다. 아내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나에게 방향을 지시했다. 처음 해보는 휠체어 운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인파를 피해 좁은 매장을 지나는 일은 은근히 집중을 요구했다. 그래도 공원처럼 꾸며진 백화점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휠체어를 반납하고 다시 정류장으로 가 7613번 버스를 탔다. 좌석이 넉넉해 지하철보다 훨씬 여유롭게 시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남동의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저녁이면 붐빈다는 거리지만, 낮의 골목은 조용했다. 작은 카페와 공방, 식당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뜨개 카페가 있다는 ‘바늘이야기’ 공방에 들어섰다. 아들은 자리를 맡겠다며 2층 카페로 올라가고, 아내와 며느리는 아래층에서 실을 고르며 무엇을 뜰지 고민했다. 나는 구경하는 아내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2층으로 올라왔다. 커피 옆에 놓고 혼자, 혹은 둘이서 조용히 뜨개질을 하는 풍경이 참 낯설고 재미있었다. 손님 대부분이 여자였고, 남자는 아들과 나뿐이었다.
아내는 분홍색 털실 두 뭉치와 대바늘을 들고 올라와 모자를 뜨기 시작했다. 며느리도 가져온 실로 무언가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 사이 밖으로 나와 골목을 걸었다. 세월이 묻어나는 건물들 사이를 걷다 보니 찬 바람이 다리에 스며들어 마트 안으로 몸을 피했다.
마트에서 잠시 추위를 피하는 사이 아들이 말했다.
“아빠, 떡 있는데 이걸로 내일 아침 할까요?”
가래떡과 백설기 한 팩씩을 샀다. 그런데 멀지 않은 거리에 떡집 간판이 보여 달려갔다. 막 문을 닫는 중이었다. 다시 마트로 돌아가 떡을 환불하고 나왔는데, 그새 떡집 문은 잠겨 있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포기하려던 순간, 골목 저편에서 약봉지를 든 사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가래떡과 감자떡 한 팩씩을 5천 원에 샀다. 그 작은 행운이 괜히 하루를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카페로 돌아오니 아내와 며느리는 우리가 오기만 기다렸다는 듯 뜨던 실을 가방에 넣었다. 남은 실 한 봉지는 환불했다.
숙소로 가는 길, 며느리는 열심히 맛집을 검색했다. 연남동의 ‘작은 마을 밥상’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테이블은 세 개뿐이었지만 주방에는 일하는 분이 세 명이나 있었다. 두루치기 2인분과 청국장 2인분을 시키자 반찬과 밥은 무한 리필이었다. 배를 두드리며 저녁을 마쳤다.
단독주택을 개조한 반지하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왔다. 이웃 손님의 늦은 웃음소리와 새벽의 길고양이 울음에 잠을 설쳤지만, 가성비만큼은 충분했다.
갑자기 오게 된 서울, 아내는 서울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형은 못내 아쉬워하며 내일 아침 일찍 집으로 오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