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언니와 함께한 가좌천 벚꽃길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웃은 봄날

by 허정호

언니와 함께한 가좌천 벚꽃길

아내는 언니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벚꽃도 보며 하루를 보내고 싶어 했다. 아침 공기가 아직 서늘하던 오전, 우리는 산책을 다녀오면서 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오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산책을 하고 돌아와 점심을 준비하려면 어느새 한 시를 훌쩍 넘길 것 같았다. 아내는 큰언니와 둘째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을 함께할 수 있을지 물었다.


나는 가좌산으로 산책을 다녀온 뒤 큰언니를 모셔오자고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을 따져보니 결국 큰언니 댁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가좌산으로 향하는 길에 시장에 들러 순두부 두 봉지씩 샀다. 따끈한 점심상에 보태려는 작은 정성이었다.

석류공원에서 출발해 한 시간 정도만 걷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산책길 곳곳에 봄을 알리는 산벚꽃과 개나리가 반겼고, 특히 별목련이 예쁘게 산책길을 맞으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봄볕 아래에서의 걸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고, 삼십 분쯤 지나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돌렸다. 큰언니 집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연놀부 식당에 있다며 바로 오라고 했다.


아내는 잠시 망설이다가 사 온 순두부를 현관문 앞 그늘진 곳에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그냥 식당으로 가서 먹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파크골프장에 있던 둘째 언니에게도 연락을 넣어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이른 시간이라 식당 안은 한산했고, 언니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언니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벚꽃이 한창이라는 가좌천으로 잠시 발걸음을 옮겼다. 연분홍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봄의 한가운데로 나를 이끌었다.


식당으로 돌아왔을 때는 둘째 처형과 형부가 이미 도착해 메뉴를 주문하고 있었다. 다섯 명이니 테이블을 나눠 앉을까 했지만, 사장은 한 테이블에 오붓하게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다. 아내는 반찬을 몇 가지 더 부탁했고, 사장은 정성스레 소고기 전골냄비를 가스불 위에 올려 고기가 잘 익도록 저어주었다. 육수도 넉넉히 부어주고는 “이제 드시면 됩니다” 하고 미소를 지었다.


전골이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당면과 소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어우러졌다. 앞접시에 한가득 담아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둘째 처형은 고기가 너무 달다며 손을 대지 않고, 대신 채소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그러면서도 형부의 접시에는 당면과 고기를 가득 담아주며 은근한 정을 나눴다. 고기보다 당면이 더 인기였던 탓에 금세 동이 나자, 큰 처형은 당면을 추가로 주문해 다시 전골에 넣었다. 소소한 취향과 배려가 어우러진 식탁이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조용히 카운터로 가서 휴대폰으로 결제를 하려 했다. 그런데 큰 처형이 “아까 결제했다”며 손짓을 했다. 머쓱해진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식당을 나서며 큰 처형이 카드를 내미는 모습을 보고 “어, 이거 뭐야. 이럴 수 있어요?” 하고 웃으며 넘겼다. 그렇게 또 한 번, 가족의 따뜻한 정을 느꼈다.

언니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과일과 후식을 나누며 한숨 돌렸다. 식곤증이 몰려왔는지 둘째 처형과 형부는 잠시 잠에 들었고, 큰 처형 역시 의자에 앉아 고요히 눈을 붙였다. 봄날 오후의 햇살은 사람을 쉽게 나른하게 만들었다.

잠에서 깬 형부는 병원에 가야 한다며 일어섰다. 우리는 그냥 보내기 아쉬워 가좌천으로 모시고 나가 벚꽃 산책을 함께했다. 개양오거리에서 경상대 정문까지 이어진 산책길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꽃비가 바람에 흩날리며 길 위를 연분홍으로 물들였다.


산책길과 데크 쉼터 곳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봄을 즐기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웃음소리로 가득한 젊은 학생들. 그 생기 넘치는 풍경 속에서 나 역시 덩달아 기운이 솟는 듯했다.

우리는 벚꽃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느린 오후의 시간을 보냈다. 둘째 처형과 형부는 병원에 가기 위해 먼저 떠났고, 큰 처형과 우리는 의자와 산책길을 오가며 한참을 머물렀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젊은이들의 환한 웃음이 번져갔다.


그날은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모여 밥을 먹고, 걷고, 웃었을 뿐이다. 벚꽃처럼, 잠시 피었다가도 오래도록 기억에 머무는 하루였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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