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아민 Jul 04. 2024

우는 엄마 나서는 누나 2



먼저 퇴근하는 사람은 늘 엄마였다. 우리의 중국집은 22시가 넘어야 문을 닫는다. 그것도 오는 손님에 따라 늘 달라졌다. 무튼 엄마는 집에 오고 나면 피곤에 젖은-그 당시엔 알아채지 못했다.- 목소리를 내며 샤워를 하러 갔다. 엄마가 나오면 우리는 아주 늦은 저녁을 먹었다. 사실 이 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까닭을 생각해보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저녁은  외로웠다. 누나가 있었지만 누나는 언제나 어딘가 공허했다. 그래서 덩달아 나도 공허해졌다. 누나의 목소리는 언제나 들떴다. 나의 목소리도 덩달아 신이 났다. 누나의 들뜬 목소리는 공허했다. 나의 신이 난 목소리도 공허해져왔다. 누나는 내가 태어날 적부터 나를 봐왔지만 나는 누나의 8년을 평생 모를 것이다. 그래서인지 누나의 공허한 눈빛을, 목소리를, 닮아는 가더라도 원인은   없었다. 원인 모를 외로움이었다.


그렇게 기억나지 않는 저녁 시간이 끝날 즈음엔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우린 늘 그렇듯 후다닥 숨었다. 함께 숨을 때도 있고 각자의 방으로 누가 먼저 들어가나 시합을 할 때도 있었다. 아버지의 도어락 소리는 언제나 삑사리가 난다. 우린 조마조마한 심장을 붙잡고 문을 잠근다. 현관이 열리고 투박한 발소리가 들린다. 방 문 앞까지 살아있는 사람의 냉기가 느껴진다. 당장이라도 문을 부실 것 같은 손아귀가 아른 거린다. 주먹으로 바뀐다. 숙인 고개가 문을 두드린다.




말이 없다. 아버지도 나도 누나도

엄마도


그 누구도 말이 없다. 숨을 죽이고 다음 행동을 기다린다. 아버지도 나도 누나도


아버지는 늘 열리지 않는 문을 열려고 한다. 그 문은 결국 열린다. 우리 집은 그 당시에 너무 낡았었다. 쉽게 뚤리고 쉽게 망가졌다. 우리는 그런 문을 보며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를 잃어만 갔다. 내가 놓친 누나의 8년은 이렇게 무언가를 잃기만 했을 지도 모른다.


아픈 말과 아픈 행동만 하는 아버지는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태어난 시점부터의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억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4살 즈음에 아버지가 집에 있던 나의 세발 자전거를 던진 것이다. 그것은 누나도 가끔 타던 것이었다. 그 세발 자전거는 4살인 나에겐 조금 컸고 12살인 누나에겐 꽤나 작았다.


누나는  아버지에게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적어도  기억엔 그렇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말을 받아주는 것은 누나밖에 없었다. 받아친다는 말이  어울릴  같다. 그래, 누나는 언제나 앞장 서서 아버지를 막았다. 지금이야 내가 조금 컸기에 아버지에 대적할  있지만  시절의 누나는 10 내내 8 어린 나와 30 많은 엄마를 자신의  뒤에 두었다. 내가 놓친 누나의 8년은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내가 담은 누나의 17년에도 빈 곳은 존재한다. 그러나 왠지, 정말 왜인지 모르게, 그 또한 무언가 잃어왔을 것이라 추측하게 된다.


나는 그 곳을 혹은 그것을 채워줄 수가 없다. 누나에게 있어 나의 역할이란 그저 텅 빈 원초적인 웃음을 함께 해주고 그저 텅 빈 물음에 텅 빈 답을 해주고 놀이 속 텅 빈 즐거움을 함께 쫓는 것이었다.


엄마는 알까


이전 02화 우는 엄마 나서는 누나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