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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민 Jun 20. 2024

눈에 담지 못하는 어여쁨

그 때 카메라가 나타났지





호수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2002년, 여전히 추운 겨울에 넌 세상에 나왔단다. 조금 더 빨리 나오지, 조금 더 늦게 나오지 따위의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어. 너는 그냥 예뻤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가 않더라.


그런데 사람은 눈에 넣을 수 없다는 걸 너도 알 거야. 거짓말만 해서 늘 미안하구나. 그런 너에게 줄 수 있는 거라곤 선천적 믿음 뿐이었어.


믿음은 예술의 영역이란다. 넌 그걸 나중에, 아주 나중에 보여주게 될 거야. 믿음이라는 예술을 세상에 펼칠 거야. 꼭 기억해 시예(恃藝)야. 네가 세상을 믿을 수 있게, 너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나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을 거야. 그런데 오늘은 왠지 물 속 깊이 빠지고 싶구나. 남산 어딘가 아무도 모를 폭포 속에서 코가 시리도록 잠기고 싶어. 그러다가 초점 없는 나의 동공 한 짝만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게지. 그런 눈을 보고도 네 엄마는 나를 사랑한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사랑 앞에선 잠시 사라질 뿐일까? 시예를 깨끗이 닦아줄 때면 나의 동공은 무슨 색일까?


시예의 동공은 너무나도 어여쁜 검정이다.


절대 희지 말거라.



나는 중국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시예 엄마는 전화를 받고 나는 배달을 한다. 늘 하이얀 셔츠, 하이얀 목양말, 검정 구두와 정장 바지를 입고 배달을 한다. 멀끔한 청년이 폭설과 폭우에도 배달하는 것에 동네 사람들은 감동을 하였다. 주방장이 자주 바뀌었다. 맛도 그러했다. 그러나 고객층은 견고했다. 오늘은 왠지 두꺼운 패딩을 입고 샤워를 한 듯한 몸이다.진짜 샤워를 한 뒤에 머리도 정리하고 나만의 유니폼을 챙겨입는다. 시예는 보이지가 않는다. 이 작은 반지하 단칸방에서도 시예가 보이지 않는다. 시예를 보려면 이 단칸방을 벗어나야한다. 바퀴 벌레처럼 서랍장 밑에 숨은 나의 딸을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난 나만의 유니폼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여야만 한다.


시예 엄마는 이에 대해 내게 몇 번 불만을 표한 적이 있다. 시예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자벌레를 데리고 노는 시예랑 내가 놀 시간이 어딨겠나. 당장이라도 이 집에서 도망나와 시예를 깨끗한 카페에 데려다주고 싶어. 나도 그렇다고 은주야.


태석아, 난 매일 새벽에 시예를 문구점에 데려가. 열려 있는 곳도 잘 없지. 근데 그거 알아? 나 아무것도 못 해. 시예도 아무것도 못 해. 하.. 왜 가냐고? 얘가, 이 조그만 네 살짜리가 구경만 해도 좋아하는 게 느껴져. 근데 당신, 당신 그 가게, 가게 문 7시에 열잖아. 미쳤다고 누가 그 시간에, 어? 누가 짜장면 먹는다고 그 시간에 문을 여냐고! 시예 색종이 구경할 시간도 부족해. 당신 조금만 늦어도 불 같이 화내는데 어떡해.  데려가야지. 발에서 나는 그 삑삑이 소리가, 나, 나는,


은주가 울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시예는 큰 소리를 내는 제 엄마를 바라본다.


아, 또 남산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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