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의 직감 적중 사건- 쌍둥이 임신기(상)
문득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나는 당신에게 이 점이 매우 궁금하다.
혹시 정말 일어나기 드문 일인데도, 살아가면서 어렴풋이 나에게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 만 같던 일이 정말로 삶에서 그대로 실현된 적이 있는가? 이는 문득문득 살아가면서 단편적으로 든 생각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쭉 간직했던 예감 같은 것을 의미한다.
길다면 길었던 인생길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러한 류의 경험을 한 적이 제법 있어왔는데,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설명할 수 없이 기묘한 인생 속 미스터리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딘가 모르게 신기(?)가 있거나 꿈이 잘 맞는다거나 하는 류의 영적인 감각이 탁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왠지 모르게 나의 내면 속에서 잠식되어 있다가 이 일은 꼭 일어날 것 만 같았던 장면들이 실제로 불현듯 일어나게 된 적이 몇 차례 있어왔다는 뜻이다. 그래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문득 나만 그러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나에게는 쌍둥이 고모가 있다. 고모들은 일란성 쌍둥이기 때문에 당연지사 외모도 무척 닮았고, 성격도 비슷한 편이었다. 내가 많이 어렸을 적 3대가 한 집에 같이 산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고모들은 고등학생쯤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인 5~6살 정도까지만 함께 살아서 정확하고 선명한 기억은 없지만, 굉장히 단편적이거나 강렬했던 잔상들은 의외로 꽤 남아 있다.) 어쨌거나 고모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끔은 뭔가를 나를 위해서 사 오곤 했는데 그것이 어쩔 때는 혀가 파랗게 되는 사탕이기도 했고 입안에서 팝팝 터지는 것을 찍어먹는 사탕이기도 했다. 고모들이 하교한 시간쯤에 근처 놀이터에서 3명이서 같이 그런 것들을 함께 먹으면서 시소를 타기도 하고 미끄럼틀을 타기도 했으며 나란히 그네를 타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날도 평범하게 고모 중 한 명이랑 나란히 그네를 타며 사탕을 먹던 중에, 머리 위로 박쥐가 날아갔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나름 소도시에서 자란 나인데 그 동네에는 가끔 밤에 박쥐 무리가 날아가기도 했다!) 나는 단지 노을이 살짝 지며 작고 검은 텐트들이 날고 있는 하늘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본 고모들이 내가 본 지를 모르고 동시에 손짓하며, ‘ **야, 박쥐 좀 봐! ‘하고 동시에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
나도 쌍둥이 아기 낳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린 나이에 정말이지 어떻게 보면 좀 징그럽고(?) 개연성 없으며 기이하기 짝이 없는 사고가 아닌가 싶다.
어릴 적 고모들을 보며, 서로를 닮은 서로와 평생을 함께 할 친구이자 운명공동체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무엇인가 일종의 부러움과 갈망 같은 것이 이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것만이 이유가 되지는 않는 듯하다. 단순히 그러하다면 왜 나도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쌍둥이를 낳을 것 같다는 흐릿하지만 선명한 사고로 귀결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조금 더 자라난 나는 중학생, 고등학생 이 되어서도 몇 친한 친구들에게 ‘난 왠지 아기 낳으면 쌍둥이 낳을 것 같아.’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해 왔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고 다닌 건지 그 치기가 우습다.) 그러면 친구들은 ’아, 너 고모 있으니까? 그럴 수 도 있겠다. 유전이라던데? 한 대 걸쳐서도 많이 나온다던데?‘ 같은 류의 말을 주로 나에게 해 주었다. 음, 그런데 나에게는 정말이지 그런 단편적인 예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아주 강렬하지만 반면 마치 깊은 명상에서 얻은 울림 같은 것, 소리로 표현하자면 아주 고요하고도 강하게 내리치고 있는 어떤 것이 나의 미래를 이미 보여주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강렬하게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몇 달 정도쯤 임신하고자 시도하면 그래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게 아이가 찾아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기는 우리에게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도 나는 어렴풋이, 두 명이 한 번에 찾아오려면 힘들어서 그럴 것이리라 생각했다. 100프로는 아니었지만 뭔가 꼭 그러한 것이리라 믿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침, 그토록 기다리던 그들을 드디어 마주하게 되었다. 원래 성향 자체가 그렇게 달달 떨거나 하는 성격은 아닌데, 그날은 유독 임신 테스터기를 쥐고 결과를 기다리는 1분도 되지 않았던 짧은 순간이 정말 손끝이 저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을 정도로 떨렸었다.
조금 뒤이지만 영원같던 시간이 지나고, 정말이지 선명한 두 줄. 극초기라기에는 말도 안되게 누군가가 빨간 펜으로 일부러 그려놓은 것과 같이 선명했던 두 줄. 나는 그때 또 한 번 확신했다.
와, 드디어 만났다! 내 아기들. 우리 두 아가들. 엄마 마음 밭에서 조용히, 그러나 아주 작은 숨결을 내뿜으며 살며시 잠들어 있다가 드디어 엄마를 만나러 이렇게 와 주었구나.
아이 이쁘다, 아이 기특해, 아이 잘 왔어. 아직 나오지도 않은 아랫배를 한없이 어루만지며 이제 막 엄마가 된 나는 한없이 눈물을 떨구며 그렇게 아기들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그저 화학적인 결과물이 만들어냈을 뿐인 임신테스트기를 두 손에 꼭 쥔 것 만으로도 나는 이미 아기들에 대한 강한 모성애가 마음 깊이 터지듯 뿌리내리며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다.
테스트기를 침대로 가지고 와서 눈을 다시 감았다 떠서도 보고, 햇빛에 비춰도 보고, 커피를 한 잔 내려와서 마신 다음에도 우리 아가들의 흔적이 잘 있나 한참을 들여다 보기를 반복했다. 계속해서 선명한 두 줄. 그 어떤 무지개를 본 것보다 더 찬란하고 벅찼다.
그때의 행복과 터질듯한 벅참이란 진부하지만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잠시 낮잠에 빠졌는데, 그때 꾼 꿈이 큰 엄마 가오리가 헤엄을 치는데 두 귀여운 아기 가오리가 아주 힘차게 엄마 가오리를 따라오는 꿈이었다. 태몽으로도 아가들은 엄마에게 ‘우리 같이 찾아왔어요’라고 말해주는 듯해서 그것이 또 너무나 귀엽고 신비로웠다.
그러했기 때문에 첫아기를 보러 가던 병원의 초음파 진료실에서,
“산모님, 두 개 가 보이는데요? “
라던 의사의 말에 나는 태연했고 잔잔히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 셋은 이렇게 만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이전부터 예정된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지만 무척이나 반갑고 설레고 소중했다.
이렇듯 우리 셋은 그저 운명 그 자체였다.
임신 초기는 임신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는 행복했지만, 강렬한 입덧 때문에 냉면, 신 과일, 매운 음식 외에는 도저히 무언가를 먹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가끔 검진을 가면 정말 단 하나의 문제도 없이 아이들은 나란히 비슷한 크기와 비슷한 속도로 건강히 잘 자라주었다. 그것이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여기까지가 임신했을 때부터, 임신 초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사실, 이번 글을 쓰면서 마음이 먹먹하고 급기야 눈물도 많이 났다. 이렇듯 운명같이 만난 소중한 아기들에게 그때의 나는 왜 산후 우울과 육아 우울 따위에 잠식당하여 무한한 감사와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주지 못했을까. 왜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고, 악을 쓰고 우는 아기가 너무나도 버겁고 밉고, 급기야는 첫 웃음이라는 것을 보여준 기특한 아가를 보며 갑자기 크게 오열하여 그 모습을 본 아가를 다시 울리고만 초라하고 나약한 엄마가 아닌 엄마가 되어버렸던 것일까.
비교적 평온했던 임신 초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나는 임신 중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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