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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에 Jul 04. 2024

산후•육아우울증 극복기- 1. 결혼, 거기까진 좋았다!

행복에 행복을 덧입히고 싶어서 그만

나는 모든 게 예정된 듯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주말 이른 아침쯤 수면안대를 끼고서 퍼지게 자고 있는데 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어떤 여자가 신부님, 신부님, 일어나세요! 웨딩 메이크업 받으셔야죠! 본식 5시간 전이세요. 하며 날 흔들어 깨운다. 그러면 나는 얼떨결에 놀라 하며 후다닥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누가 골랐을지는 모르지만 지극히 내 취향인 드레스를 입고 식장으로 이동한다. (와, 내가 봐도 꾸미니 좀 예뻐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장면이 빠르게 이동하고,  어이! 신부입장! 신랑입장! 주례사 어쩌고를 거쳐서 식은 결국 막바지에 다다른다. 양가 부모님들은 그저 뭐만 해도 울고, 그 와중에 나만 철없이 웃고 있고.. 이 스토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친구에게 부케를 던지며 또 까르르 웃고 있다.


이런 아주 진부하기 짝이 없으며 글로 읽기도 귀찮은 전형적 시나리오처럼, 나의 결혼과정이란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져 버린 듯한 무난하고 순탄함의 연속이었다. 아무런 예고나 발악도 없이 긴 시간을 지나야 도착하는 기차에 탑승해 버린 무임승차객이 된 기분이랄까.


굳이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를 들어보자.


당시 구남친(현남편)과는 연애는 몰라도 결혼 생각까지는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별달리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 욜로족까지는 아니지만 일을 해서 돈이 조금 모인다 싶으면 친구와 일 년에 몇 번씩은 여행을 갔고, 맛있다는 미슐랭은 꼭 한 번쯤은 가보고,  돌연 한국에 사는 게 지루해져서 호주로 유학을 떠났기도 했고, 거기서 또 남아공으로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렇듯 흩날리는 재 같은 삶을 살아온 내가, 결혼 같은 걸 해서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한 남자만을 사랑함과 동시에, 어떠한 생명체를 낳아서 그 생명의 모든 것이 될 심리적 유산을 물러줄 수 있을만한 인간인가? 답은 아니오에 가까웠다.


물론 그 당시 집도 절도 없던 나의 삶은 굉장히 불안정적이었고 외롭기도 했다. 그러나 외롭지 않은 인간 따위는 없고, 다만 시간은 지나간다라는 진리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누구나 외롭다. 외로움을 동기로 하여 그 원동력으로 살아가고자 태어났으니까. 때문에 누군가와 같은 집에 산다고 해서 나의 실존적인 고민이나 잡다한 번민이 해결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같이 살고 싶다거나, 결혼이라는 것을 굳이 하고 싶은 강력한 계기가 생긴다면 해 볼 순 있겠다 정도로만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와의 연애 2년 차에 나는 길고 긴 직업적 방황을 마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이것도 특별히 그때 꼭 교사가 되고 싶었다거나, 이제는 그만 방황하고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거나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그 해에 임용고시 티오가 많이 났길래 한번 그럼 쳐볼까? 해서였다. (이 멘트는 교사로서의 부끄러움과 소명의식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지워버릴까 하다가 글에 솔직하고자 남겨둬 본다..)  아, 그리고 동시에 비교적 잔잔했던 나의 인생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그동안 충전해 온 모든 인류애를 다 박살 내줄 만한 환멸을 느낀 사건이 하필 그 해에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분노와 스트레스에 사로잡힌 나는 미친 듯이 집중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한 일종의 승화심(?)으로 임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나는, 일단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하루에 꼬박 14시간은 죽어라 공부만 했다. 그때, 구남친(현남편)은 그런 나를 묵묵히 바라보며 지원해 주었다. 매일 아침 커피도 사다 바쳐주고, 심지어는 경제적인 지원까지 아까지 않으면서 나를 응원했다. 덕분에 마음의 평정심을 많이 찾게 된 나는 겨우 4~5개월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꽤 좋은 성적으로 임고를 합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열심히 공부한 탓도 있겠지만 구남친(현남편)의 극진한 외조 그리고 박살 난 인류애에 대한 대치적 분노로 인한 성과가 아닌가 싶다.


하여튼 나는 합격했고, 내가 원하던 지역의 교육청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는데 (상담교사는 첫 발령 시 교육청으로 발령이 나기도 한다.) 그 교육청에서 바로 5분 거리에 구남친(현남편)의 부모님이 투자 목적으로 사두신 아파트가 있었던 것이다. 참 신기하네, 하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서울 사시는 분들이 하필 거기에 아파트를 사 두신게 참으로 기묘하다.)


그런데 합격의 기쁨도 잠시, 단지 나에게만 문제가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제 딸내미가 직업적으로도 갖춰진 데다가 결혼적령기를 조금 넘어서려 하니,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성격 급한 나의 엄마는 마치 한 마리의 딱따구리로 빙의해 버리기에 이르렀다. 이 정도면 사람이 쪼여서 모래가 될 수 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결혼 결혼 결혼!"거리면서 나를 쪼아대는데 이 도발적이고 지구력 강한 딱따구리의 공격을 참다 참다 참다 참다못한 나는 그만,


- 엄마, 나 남자친구 있어!


하고 자백을 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자 딱따구리의 눈이 섬광과 같이 빛나더니 갑자기 부드럽고 무력해진 부리로 그를 당장 내 눈앞에 대령하라고 지시했다. 그래, 얼굴 한 번 보여주는 게 어렵냐 싶어 나는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 구남친(현남편)과 함께 식사를 했다. 구남친(현남편)을 만나기 직전까지도 엄마는 어려도 너무 어리다(구남친은 굉장히 연하이다!), 직업이 안정적이지도 않다, 맞벌이 교사가 최고다를 운운하며 역시 우리 딸이 아깝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래도 뭐 일단 얼굴이나 보자라는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막상 구남친(현남편)을 만나보니 애가 착해 보이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은근히 썩 마음에 들었는지 분위기는 이상하게 화기애애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애가 괜찮네.


딱따구리에서 탈피한 엄마의 첫 사람언어였다. 무던하고 착한 아빠도 물론 구남친(현남편)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인가, 나는 지금의 시부모님과의 첫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이차이가 많이 지는 며느리감이 싫진 않으실까 걱정했지만, 그분들은 정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나를 너무나도 예뻐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냥 정말 좋은 분들이셨던 것이다. 거기서 나는 완전히 결혼에 대한 마음이 굳어져 버렸다. 따스하고 온기 가득한 저 집의 며느리가 되고 싶다!


그러고 한 달 뒤, 우리는 상견례를 하고 본격적으로 결혼에 대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보통 결혼 준비를 하면서 많이들 싸운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고, 양가 부모님들 또한 그러했다.


그렇게 나는 3개월 만에 유부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남편과 나는 그때 그 교육청 근처의 아파트로 들어가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혼 생활도 정말 행복했다. 각자의 일을 하고 돌아와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았고, 평생을 무계획 그 자체로 살아왔던 나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큰 정서적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었다. 평온한 나날들이었다. 그것이 조금의 권태감을 준 것이었을까?


나는 결혼하고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문득 이런 생각과 마주하게 되었다.


나도 엄마가 되고 싶다!


결혼이 주는 행복감과 더불어,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현직 초등 상담교사였던 나는 사실 아기를 낳고 기른다는 것에 조금은 자신감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기에게 발달 단계별로 어떠한 자극과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심리적인 안정과 평온을 주기 위해서는 어떤 양육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이상행동이나 발달을 구분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은 사실 다른 엄마들보다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무언인가를 기르는 것,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일종의 연민 같은 것을 많이 느꼈던 성격이었기에 더 그러했던 것 같다. 부모가 된다는 책임감 따위는 마치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깡그리 잊어버리고, 나는 그냥 너무너무 아이가 낳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3개월 정도 자연임신 시도를 하게 되었다. 뭐 1-3개월 노력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기는 쉽게 찾아와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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