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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에 Jun 26. 2024

산후•육아우울증 극복기- 프롤로그

프롤로그

-산모님. 두 개가 보이는데요?


의사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정말이지 짐작도 못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답을 알고 있던 사람처럼 태연하게, 정말이요?라고 대답했다. 당연히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닌데 한편으로는 과거를 미리 들쳐본 사람처럼 그 말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의사는 그러한 나의 반응에 의아해하더니 이내 내가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또다시 말했다.


-아기집이 두 개 보인다고요. 쌍둥이요.


아니 그러니까 선생님.. 그럴 것 같았다니까요?라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말과 조우한 순간 나와 마주한 그 운명이 무언가 당연하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궤변이 아니고 실제로 그러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별다를 것 없는 매일매일의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간혹은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그러한 일들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리라고 느껴지던 순간이 몇 차례 있어왔다. 그러한 류의 일들은 인생이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 속에 있는 어떠한 힘에 기인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려는 듯했다.


비교적 늦은 결혼, 그리고 1년 만에 나는 나의 필연들과 조우했다. 그들은 나의 작고 미안한 적막 속에서 소름 끼치리만큼 비슷한 공간을 차지하며 작고 찬란한 빛을 열심히도 내뿜고 있었다. 작지만 정말로 강렬했다. 의사는 그 반딧불처럼 쉴 새 없이 반짝이는 것들이 무려 아기들의 심장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내 안에 무려 3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고? 어쩐지 기이하면서도 신비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시에 무섭고 불안하기도 했다.


대기까지 포함한 긴 진료를 마치고서 병원을 나왔다. 남편은 기뻐했고, 당연히 양가 부모님들도 좋아하셨다. 천천히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 서서 괜스레 나오지도 않은 배를 살살 어루만져 보았다. 순간,


<엄마! 우리 열심히 찾아왔어요.>


하고 아기들이 나에게 말해주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마도 같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갑자기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린 나. 그게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다가도 억울하리만치 짧은 기간이다. 내 인생의 약 20년치쯤은 족히 되는 날들의 희로애락을 압축시킨 것보다 더 강렬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일을 겪는 아이들을 상담해 오면서 그들을 마음 깊이 공감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정말로 오만한 착각이었고 심지어는 헛짓이 아니었었나 싶은 생각까지도 들었다. 부정적 감정이라는 것은 실존적이고 본질적인 힘듦 그 자체라는 것을 두 아기들을 키우면서 쉽게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감정간의 커다란 괴리는 나로서는 감당하기 너무나 낯선 것이었다. 마치 두 개의 자아가 내 삶을 오가며 분탕질하는 듯했다.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매일같이 휩싸인 시간들이었다.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한마디로 극단적인 양가적 감정의 향연, 그 자체였다. 극단의 행복과 극단의 우울이 동시에 사지를 잡아 찢는 듯했다. 그깟 돌덩이나 굴리는 시지프스 따위는 아주 쉽게 비웃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나보다 힘든 인간은 없을 것이라 자학하다가도, 나의 아기들은 말도 안 되게 예쁘고 사랑스러웠고 손에 살짝 쥘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소중했다. 그러나 이 작고 말간 것들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은 동시에 나를 믿을 수 없는 분노로 이끌기도 하며 나 자신을 그냥 아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30년이 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터닝 포인트라고 할만한 일들은 제법 있어왔다. 하지만 부모가 되었다는 것보다 나의 삶을 확실하게 변화시킨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간에게 있어 완전한 회복이란 없다. 아무리 생채기 난 상처가 아물고 없어지더라도 기억의 편린은 남는다. 어쩌다 그 편린조차 남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것은 나의 일부로 남아 기생하며 나를 만들고 무너지고 또 살아가게 한다.


아마 아기들이 60일쯤 돼 가던 때의 조용한 일요일 오후였을 것이다. 아기가 입은 오렌지색 메쉬 소재의 옷까지 기억이 날 정도로 그날의 기억은 무척 선명하다. 아기들은 그 무렵 밤새 번갈아가며 자고, 울고, 깨고, 배고파했다. 그 본능을 채워주기 위해서 나는 영혼이 반쯤은 저당 잡힌 채로 달래고, 재우고, 먹이기를 반복했다. 당연히 그전 날도 그러했을 것이다.


때문에 육체와 영혼이 모두 피폐해져 있던 그 보통의 날에 갑자기 나의 품 안에 안겨 있던 첫째 아기가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나를 보면서 불시에 방긋- 하고 웃었다.


첫아기의 <웃음>이었다.


그 순간, 왜였을까. 나는 미친 듯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무슨 일이냐며 놀라서 달려 나왔다. 품 안에 안겨 있던 아기는 갑작스러운 나의 울음소리에 크게 놀라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내 남편의 품 안에서 잠들고 있던 둘째 아기도 따라서 큰 소리로 울었다. 그런 나를 보던 남편은 아무런 말 없이 아기 둘을 데리고 조용히 침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나는 끝없이 울고 또 울었다. 운다는 행위에 심취한 사람같이 계속, 울었다. 한없이 천진하고 평범하면서도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을 불러일으키는 아기의 첫 웃음에,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울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정상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의 시간들로 돌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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