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안녕. 와! 목도리 예쁘다. 못 보던 건데?”
“엄마가 떠 주신 거예요.”
카페의 사장 언니가 막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나를 함박웃음으로 반긴다. 나도 마주보고 웃었다. 일하는 부하직원 보다는 사람으로 대해주는 사람이라서 나는 사장 언니를 좋아했다.
언니는 나보다 열 살이 많았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했다던 언니는 힘들게 들어간 회사에서 과로사할 것 같은 위기감에 일을 그만 뒀다고 했다. 언니는 서울 태생인데도 서울살이에 환멸이 났다고 말했다. 만원 지하철을 타는 것도, 한밤중에 택시를 타는 일도, 꽉 막힌 도로의 매캐한 매연냄새도 질리도록 싫어서 도망치듯 이사를 내려왔단다. 그래서인지 나를 잘 이해하는 언니는 내 이력서를 받자마자 나를 채용하겠다며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 요즘 언니는 매일같이 내게 직원으로 일할 생각 없냐고 묻는다.
고향으로 내려온 것은 벌써 몇 달 전이었다. 진작 계약 기간이 끝났던 자취방을 빼고 집으로 내려왔다. 어릴 적부터 늘 동경하던 서울에 더는 미련이 남지 않았다. 엄마는 내 몸을 보고 많이 울었다. 별 이상이 없다고 말했지만, 새카맣게 타들어간 딸의 몸을 보는 엄마의 심정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집에 와서 가장 먼저 커피를 끊고, 산책을 하고, 충분히 잤다. 엄마가 차려주는 규칙적인 식사는 덤이었다. 다른 생각은 전혀 없는 사람처럼 규칙적인 생활에 집착했다. 그러는 동안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살도 찌고 생활 패턴도 되찾았다.
그 다음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끊었던 커피를 다시 입에 댔지만, 이상하게도 몸을 짓눌렀던 새카만 얼룩은 언젠가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리없이 찾아왔던 것처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 가장 먼저 손등의 물집이 사라졌고 목, 가슴, 등, 배, 팔다리, 가장 늦게 물든 곳부터 점점 색이 빠졌다. 매일 샤워를 할 때마다 거울에 비친 몸을 보고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다.
해변 끝에 조그맣게 꾸며진 카페는 늘 한적했다. 그래서 카페 안에 잔잔한 노래를 틀고 파도치는 바다를 가만히 보는 게 요즘 나의 가장 큰 취미였다. 오늘은 내가 나왔는데도 언니는 할 일이 남았는지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다.
“오늘은 늦게 들어가세요?”
“응. 누가 오기로 해서.”
나는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커피머신을 쓸데없이 한 번 더 닦기로 했다. 마른 행주로 따뜻하고 매끈한 기계의 겉면을 문지르다가 행주를 쥔 손을 보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뽀얗고 매끄러운 손. 그 끝에는 검은 얼룩이 지옥 같던 과거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커피머신에 비친 얼굴이 빙그레 웃었다. 등 뒤에서 언니가 나를 불렀다.
“이지야, 이거 봐.”
언니가 노트북을 내게 내밀었다. 익숙한 로고와 건물의 이미지가 화면 중앙에 커다랗게 떠 있었다. 웃던 입꼬리가 단번에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지난번에 임원들 뇌물로 구속됐다더니, 이번엔 그룹 차원 세무조사구나.”
“그러게요. 제 생각보다 문제가 많았나 봐요.”
터치패드로 기사 스크롤을 천천히 내렸다. 다음 주부터 당장 세무조사를 시작하겠다는 국세청의 발표가 있었다고 했다. 기사 맨 아래에는 유진실 기자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사장, 이사, 부장 할 것 없이 회사 전체가 광범위하게 연루된 뇌물 사건은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수사기관의 수사가 시작되었고, 언론도 시류에 편승해 신나게 사건을 보도했다. 시민단체들도 여러 가지 성명과 입장을 발표했고 대중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에서 뜨겁게 끓어올랐다. 시작은 내가 했지만 사건은 금방 부풀어 올라 내 손을 떠났다.
며칠 전, 나와의 이별을 진심으로 아쉬워했던 새 직원이 내게 연락을 했다. 뇌물 사건이 국가적 이슈로 떠오른 다음이었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회사 상황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로는 회사가 제일 먼저 파일의 유출경로를 파악해 그 범인이 나라는 것을 알아낸 것 같았다.
파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으로 부장은 한직으로 좌천되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부장이 노심초사해가며 유지해왔던 사내 정치 라인은 침묵했다. 그 여파는 과장에게도 여지없이 미쳤다. 부장에게 줄을 대고 있던 그 역시 부하직원 관리 소홀의 죄 때문에 지방 물류센터로 가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듣다 보니 지난 번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던 전화 몇 통이 떠올랐다. 모든 일의 시작에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회사에서 연락을 했을 건 아닐까. 무심코 넘겨버렸던 전화번호를 다시 찾아보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내가 새 직원에게 들었던 또 한 가지 소식은 곧 잘릴 것 같다는 말이었다. 주가가 폭락하고 회사의 존망이 걸린 상황이라며 은연중에 인원감축을 언급했다고 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 첫 번째 대상은 자르기 쉬운 비정규직이었다. 하는 일도 같은데 계약직이라 억울하다는 새 직원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 마음 깊은 곳을 매섭게 찔렀다. 그의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 회사에 품은 앙심을 숨기고 정의로운 척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더 눈물이 났다.
통쾌할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이상했다. 항상 벌벌 떨며 두려워했던 회사가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라는 실망감과 그런 회사에 목맸던 나 자신에 대한 자조, 그리고 연민. 몸담았던 회사를 고발했다는 죄책감, 구조적으로 나를 몰고 갔던 사회에 대한 분노, 또 나를 스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원망, 새 직원에 대한 미안함까지. 자업자득이라고 회사를 비웃는 얼굴의 이면으로 스며 나오는 음울한 감정들은 내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수많은 감정들이 조그마한 마음속에서 커다랗고 단단한 덩어리로 얽히는 것 같았다. 갈비뼈 아래 말랑한 내장이 엉망진창으로 꼬인 채 내 뱃속을 유영하는 상상이 나를 사로잡았다.
“커피 한 잔 할래?”
내가 멍하니 들고 있던 노트북을 빼앗아 테이블에 내려놓은 사장 언니가 커피머신 앞에 섰다.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것처럼 원두를 갈고 탬핑하고 샷을 뽑는 동작이 매끄럽다.
“에스프레소? 라떼?”
“에스프레소 주세요.”
언니는 윙크를 하더니 조그마한 에스프레소 잔에 샷을 옮겨 담았다. 무늬 없는 흰 잔에 같은 색 컵 받침까지 예쁘게 괴어서 내게 건넨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나를 손님 테이블에 앉힌 언니는 금방 자기 몫의 라떼를 만들어서 내 앞에 앉았다.
“기분이 이상하지?”
“……네. 기분 좋을 줄만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 않아요. 좀 이상해요.”
“좋게 생각해. 좋은 일이니까. 너한테도, 그 회사에도.”
우리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쓰디 쓴 에스프레소에서는 고소하고 포근한 커피 냄새가 났다. 연한 황금빛의 크레마가 새카만 커피 위를 부드럽게 덮었다. 금색 구름처럼 깊고 검은 액체 위를 유영하던 크레마가 사라져가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언니는 쭉 나를 보고 있었나보다. 눈이 마주쳤다. 언니는 흔들림 없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머릿속의 볼품없는 생각이 들킬 것 같아서 눈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좋은 사람들의 올곧은 눈빛에는 자석이라도 붙어있는 건지 영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이지야, 넌 네 생각보다 훨씬 용감하고 대단해. 그래서 가끔씩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그리고 죄책감 같은 건 지금은 맞지 않는 감정이니까 얼른 털어버리는 게 좋아. 넌 잘못한 게 없어.”
쪽집게처럼 내 기분을 맞추는 것은 늘 언니의 특기였지만, 오늘은 특히 대단했다. 조금 멍하게 있었을 뿐 내 감정을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언니는 내 기분을 단번에 맞춰버렸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혼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그저 살포시 웃었다.
영업을 마치고 다른 날보다 느릿느릿 기계청소를 했다. 다른 날보다 더 신경 써서, 꼼꼼히 닦았다. 추출버튼을 눌러 물을 빼고, 약품으로 닦고, 또 물로 헹궜다. 커피가 물들어 갈색으로 변한 커피머신용 청소 솔에는 커피 가루가 꽤나 묻어나왔다. 싱크대 수도꼭지 손잡이를 들어 올려 물을 틀었다. 흐르는 물에 솔을 갖다 댔다. 솔 구석구석 박혀있던 커피 가루가 물을 따라 천천히 흘러나왔다.
나는 커피머신을 청소하는 게 좋았다. 기계 청소하는 법을 배우고 나서 카페 마감을 하겠다고 자청한 것도 나였다. 기계의 커피 찌꺼기들을 뽑아내는 것이 어쩐지 내 안의 얼룩을 지우는 의식 같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전혀 관계없는 일인데도 기계를 청소하고 나면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커피 찌꺼기를 비닐봉지에 포장해 ‘가져가세요’라고 쓰인 나무 바구니 안에 넣었다. 허리에 둘렀던 검은 앞치마를 벗어 카운터 서랍 안쪽에 접어 넣었다. 코트를 입고, 전등을 끄고, 문을 잠갔다. 잠근 문을 두어 번 잡아당겨 문단속도 했다. 뿌옇게 빛나는 조그만 간판이 카페 앞을 희미하게 밝혔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렸다. 쏴아아. 쏴아아. 오늘은 파도도 잠잠하다.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보았다. 10시 5분 전. 천천히 걸어가서 막차를 타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이면도로의 흰 선을 따라 걸었다. 길을 따라 드문드문 서있는 가로등에서 노란 불빛이 쏟아졌다. 주머니에 넣었던 양손을 꺼내 노란 불빛에 비춰보았다. 마지막 남은 얼룩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은 원망과 미움처럼 유난히 선명했다.
차가운 공기에 손을 맡기고 천천히 걸었다. 내 느린 걸음은 다음 가로등 불빛에 다다랐을 때 우뚝 멈췄다. 어둠을 지나 새 불빛에 닿은 손끝이 아릿하도록 시렸다. 손톱 밑을 찌르는 통증에 나는 꽥 소리를 질렀다. 조용한 밤공기를 타고 내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고막이 먹먹하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입으로 드나드는 호흡이 조금 가빠졌다. 입김이 아까보다 좀 더 진하게 흘러나왔다. 노란 불빛 사이로 손을 들어 손끝을 보았다. 까맣게 물들었던 얼룩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나는 얼어붙은 얼음조각이라도 된 것 마냥 그자리에 딱 멈춰섰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모든 생각이 새하얀 눈밭처럼 싹 지워졌다.
멀리서 차 소리가 들린다. 버스다. 나는 멍하니 손가락을 바라보던 것을 그만두고 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내 걸음이 더 느렸던 모양이다. 보통 10분이면 오는 길을 15분이나 걷고도 도착하지 못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달렸다. 금방 숨이 가쁘고 다리가 무겁다. 버스의 커다란 엔진 소리가 등 뒤를 쫓아오듯 점점 크게 들렸다. 다리에는 커다란 추라도 달렸는지 아무리 뜀박질을 해도 제자리인 것 같다. 이제 등 뒤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멀리 보인다. 버스정류장을 알리는 둥그런 표지판도 저 앞에 나타났다. 열심히 뛰는 내 그림자가 생겼다. 기다랗던 그림자는 색이 점점 진해지더니 길이가 계속 줄어들었다.
이윽고 버스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내 옆을 천천히 달려 지나친 버스가 잠시 후 정류장에 가서 섰다.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버스는 앞문을 열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숨을 헐떡이며 버스 앞문으로 들어갔을 때, 버스에는 승객이 몇 명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평온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기사님이 친절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뛰어오는 나를 보고 기다려준 눈치였다.
“고맙습니다.”
“아입니다. 막찬데 당연하지요.”
기사님은 내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버스를 출발시켰다. 나는 누가 알려주기라도 한 것처럼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창밖은 온통 깜깜했다. 띄엄띄엄 있는 가로등은 낡아서 약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새카만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선명했다. 둥그런 얼굴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두 손을 들어 손가락 끝을 보았다. 주변 피부와 다를 바 없이 매끈했다. 손톱 아래는 핏기가 돌아 분홍색으로 보였다. 검은 얼룩 같은 것은 흔적도 없었다. 다시 손가락을 확인한 순간 안도감으로 온몸이 푹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만약 어딘가에 서있었다면 어릴적 즐겨보던 만화처럼 당장 바닥에 납작하게 녹아내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6개월 동안 내 몸에서 기생하던 얼룩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나니 웬일인지 허전하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라진 검은 얼룩이 신경 쓰인다. 시커먼 얼룩이 처음 생겼던 그 날부터 오늘까지의 기억이 순서없이 마구 떠올랐다. 긴 시간이었다. 복잡한 기분에 끝내 눈 끝이 매웠다.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달린 흰 불빛이 버스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버스는 암흑 같은 밤을 한참동안 달렸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