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뽑은 계약직 직원은 나보다 한 살 어린 여자였다. 내가 이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나이와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나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설레는 마음으로 지원했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계약직이었다. 정규직으로 입사한 나도 이렇게 나가는 마당에 이 사람은 얼마나 더 괴로울까.
“정해진 서식이 있으니까 그냥 여기에 맞춰서 쓰시면 돼요.”
“아, 네 알겠습니다.”
나보다 키도 작고 마른 새 직원은 계약직으로 2년을 잘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2년을 열심히 버텨보겠다고 눈을 반짝였다. 말리고 싶었다. 2년을 버티기 전에 곧 잘려나가고 말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안 봐도 뻔한 이야기였다. 무사히 2년을 채운다고 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아는 선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통 1년 하고 11개월째가 되면 으레 퇴직시키는 분위기였고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들이 퇴직금을 잘 받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그맣고 가여운 새 직원은 하루 종일 열심히 일을 배웠다.
어제는 쉬는 날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장부를 제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언론사의 뉴스 프로그램이나 청와대 내부고발 페이지가 제일 그럴싸했다. 경찰이나 검찰에 파일을 직접 넘기는 것은 어쩐지 못미더웠다. 장부 안에는 간부급 경찰과 검사장급 검사의 이름이 서른 개도 넘게 들어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정치인이나 기자의 이름도 많이 들어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검색해가며 그 숫자가 가장 적은 집단을 골라냈다. 그리고 메이저급 뉴스프로그램 하나와 정부기관, 그리고 가끔씩 정치를 다루는 탐사보도 프로그램과 대안언론 몇 곳을 찾아냈다. 온종일 그 작업만 했는데도 대충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시곗바늘이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제보해야지 생각했는데 퇴근할 때까지 전화를 한 통도 걸지 못했다. 회사 현관을 나서면서 핸드폰 메모장을 열었다. 맨 위에 저장된 파일을 열어 어제 저장했던 제보처 전화번호 리스트를 쭉 훑었다. 입력한 전화번호가 하이퍼링크로 파랗게 변해있었다. 전화번호에 살짝만 손을 대면 전화번호가 바로 전화창으로 옮아가고, 전화창 아래의 동그란 통화버튼을 누르면 바로 신호가 울리게 돼있었다. 회사 코앞에서 보기에는 위험한 전화번호 위로 내 손가락이 스칠 듯 지나쳤다.
결국 아무데도 전화하지 못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운 좋게 열차 좌석에 앉아서 가면서도 몇 번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누르지 못한 번호가 먼저 내게 연락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으면서도 내가 이래도 될까 생각하는 마음이 갈팡질팡 대책 없이 헤매고 있다. 나는 저릿한 손가락에 억지로 힘을 주고 핸드폰을 꽉 붙잡았다.
“엄마! 이거 봐!”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이 크고 얼굴이 동그래서 한눈에도 귀여운 인상의 아이가 내 앞에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지지 않고 바라보다가 씩 웃었다. 아이는 미간을 찡그리더니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엄마, 이 아줌마 손 좀 봐. 손이 까만색이야. 이상하지? 얼굴은 우리랑 똑같은데.”
순간 세상이 멈추는 것 같았다. 천천히 순환하는 공기의 흐름도 멈춘 듯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귀에서는 윙윙대는 소리까지 났다. 주먹을 쥐려고 했는데 손끝에서부터 힘이 모두 빠지고 내 몸 안의 피가 몽땅 사라진 기분이었다. 서있었다면 단번에 털썩 주저앉았겠지. 힘없는 손에서 빠져나간 핸드폰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얼른 몸을 숙여 핸드폰을 주웠다.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핸드폰을 쥔 내 손을 찾기 위해 흉흉한 시선으로 내 몸 이곳저곳을 훑었다. 목 뒤에서부터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시선들의 등쌀에 못이긴 손은 저절로 구부러져 주먹 쥔 모양이 되었다. 주먹 쥔 새카만 손 위로 물방울이 탁탁 튀었다.
“얘가 무슨 소리를……. 어……?”
아이 엄마의 시선이 내 손을 보자마자 내 얼굴로 따라왔다. 그는 내게 죄송하다고 건성으로 말하면서 내내 내 얼굴과 손을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내 얼굴을 힐끔대기 시작했다. 지하철의 속도가 느려지고 곧 문이 열렸다. 나는 무슨 역인지도 모르면서 빽빽하게 서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내렸다. 그 순간 나는 내 존재의 근원으로 여겼던 세상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다시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서 누가 숨통 한가운데를 콱 움켜쥔 것 같았다. 온 몸이 벌벌 떨려서 많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승강장 간이의자에 앉아 떨림이 멎기를 기다렸다. 언제부터인지 눈물도 볼을 타고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나는 다시 만원 지하철에 올라 탈 자신이 없었다. 또다시 누군가 내 손을 보고 손가락질 하며 비웃을 것만 같았다.
지하철역에서 벗어나서 큰길로 나갔다. 택시를 잡을 심산이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억지로 내밀어 손짓했다. 해가 져서 어둑어둑한 하늘은 내 손을 반쯤 숨겨주었다. 30분 만에 겨우 잡은 택시를 타고 줄곧 택시기사의 눈치를 살폈다. 언제라도 내 두 손을 노려보며 내리라고 할 것만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내렸다. 에어컨의 냉랭한 공기가 빠져나간 자리로 가볍고 따뜻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창틀에 팔을 기대고 고개를 묻었다. 머리 위로 부드럽게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마지막 남은 위안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