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은 것만 같은 날도 결국은 오게 되어있다. 필연이자 순리이다. 나는 영원히 닿지 못할 것 같던 날을 오늘로 맞았다. 회사를 떠나는 날이었다.
틈틈이 집으로 옮겼던 짐이 꽤 됐는지 마지막으로 짐정리를 했는데도 A4용지 상자 하나를 다 못채웠다. 아침부터 컴퓨터 파일 정리에 짐정리까지, 오전 내내 정리만 했는데도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끝났다. 인사치레로 아쉽다거나 다음에 또 보자는 빈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사직서를 냈지만 사실은 불미스러운 일로 해고를 당한 셈이니 불명예스럽고 초라한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달 전 퇴사한 옆 팀 김대리가 떠올라 입맛이 썼다. 그는 외국계 회사에 합격했다며 호기롭게 사직서를 냈다. 그와 친했던 사람들은 그를 축하하며 다음에 꼭 보자고 인사했고, 다른 사람들도 아까운 인재가 떠난다는 반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떠나는 길에 마주쳐버린 나도 마지못해 웃으며 인사했던 것 같다. 왜 나는 그런 식으로 마지막을 장식할 수 없었던 걸까. 내 잘못이 아닌 일 때문에 괴로워하기는 싫었다. 얼른 생각을 그만두었다.
내가 상자의 뚜껑을 닫자마자 계약직 직원이 내개 쪼르르 달려왔다. 며칠 같이 지냈다고 정이라도 들었는지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마음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순진함이 귀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회사에 익숙해지면 곧 사라질 모습이라서 더 그랬다.
부장과 과장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나를 본체만체 하며 성의 없는 손짓으로 나를 내쫓았다. 일 년여 동안 함께 일했던 팀원들은 그보다 조금 나았다. 윤대리는 잘 가라고 짧게 인사했고 경수씨와 다른 직원들은 아쉽다는 인사치레를 했다. 그 말에 진심이 단 한 방울도 담기지 않았다는 것은 물론 나도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 중 유일하게 진심으로 배웅해주는 새 직원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나는 자유인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방과 박스를 현관 앞에 두고 먼저 씻기로 했다. 회사에서 가져온 먼지는 한 톨도 남겨두기 싫었다. 그 다음으로 한 것은 이불을 펴고 눕는 일이었다. 아직 더운 여름이지만 나는 얇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홀가분한 마음보다 커다랗게 와 닿는 것은, 영원히 혼자 격리된 것 같은 외로움과 공허함, 그리고 두려움.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아픈데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눈동자부터 시작된 아픔은 눈썹뼈를 타고 뒤통수까지, 안구를 둘러싼 모든 곳으로 이어졌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와르르 무너지자 열이 나는 것도 같았다. 여름이불 안에서 열나는 몸을 웅크리고 누워서 생각했다. 보호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 산다는 것은 잔인함에 익숙해지는 일이라고.
눈물이 나지 않아서 그런지 가슴이 답답했다.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쳤다. 조금 나은 것도 같다. 다시 몇 번 쳤더니 가슴에 콱 박힌 뜨거운 덩어리가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불덩어리는 식도의 끝, 입안 깊숙한 곳에서 멈췄다. 목이 뜨겁고 아팠다. 아무리 헛기침을 해봐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내가 몸 안 불덩어리와 사투 아닌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이 몸 둘 바를 모르고 세게 진동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이불 밖으로 붉게 열 오른 얼굴을 빼꼼 내밀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엄마였다.
종종 이럴 때가 있다. 엄마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을 내민다. 학교 준비물이나 친구 생일선물 살 돈, 유행하는 운동화, 비싼 대입 원서비, 면접용 정장 값, 밀릴 뻔 했던 학자금 대출 상환금, 그리고 지금.
“여보세요.”
아무리 가다듬어도 갈라지는 목소리가 신경 쓰였다. 엄마는 평소보다 한 박자 느리게 말을 꺼냈다.
“……. 바로 받았네?”
“아.”
애매하게 대답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4시27분. 평소 같으면 일이 바빠 핸드폰은 쳐다보지도 못할 시간이었다. 엄마에게 회사를 그만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죄책감에 목소리가 상냥하게 변했다.
“오늘은 별로 안 바빠서.”
“잘 지내나 궁금해서 전화 해봤다. 안 힘드나?”
평소처럼 괜찮다고 대답하려 했는데 눈물이 먼저 왈칵 쏟아졌다. 우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아무 소리도 못 냈다. 한마디라도 입 밖으로 꺼내면 떨리는 목소리를 들킬 게 분명했다.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많이 힘들지. 시간 되면 집에 한 번 온나. 안 그래도 아빠 꿈에 니가 자꾸 울기만 한다 안하나. 걱정이 돼서 전화 했다.”
“…….”
아까부터 쏟아지듯 흐르는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양 볼을 뒤덮었다. 축축한 볼을 손으로 계속 닦아도 턱 끝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앙다문 턱이 얼얼하다. 마음의 쓰레기들을 가둬놓은 댐이 툭 무너진 것처럼 감정의 폭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져 내렸다. 있지도 않은 마음이 가뭄 때의 논처럼 잘게 쪼개져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쌓이는 것 같았다.
“니, 우나?”
“……엄마.”
내 목소리를 듣지 않고도 이미 알아버린 엄마 때문에 더는 도리가 없었다. 이제 나 혼자 숨기고 전전긍긍하면서 버틸 힘이 없었다. 끊어질 것 같은 마지막 생명줄을 조심스레 붙잡는 심정이었다. 내 생명줄은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가늘었다.
“와?”
“나 회사 그만뒀어.”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고해성사하듯 털어놓은 진실은 엄마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예상했던 반응이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전화를 끊을까 생각하는데 엄마가 짧게 말했다.
“잘했다.”
“……뭐?”
너무 놀라서 줄줄 흐르던 눈물이 뚝 멈췄다. 내가 잘 들은 건지 확신이 안 섰다. 상상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잘했다고. 세상에 회사가 그거 하나뿐이가? 마침 잘됐네. 내일 집에 내려 온나.”
“엄마…….”
이번에는 내 말문이 막혔다. 늘 참으라고, 더 해보라고 내게 채찍질만 하는 엄마였다. 항상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처음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었을 때 내심 얼마나 기뻤는지 조그만 원룸도 천국같이 느껴졌다. 내 편을 들어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던 엄마였다. 예상치 못했던 엄마의 덤덤한 위로는 아주 낯설면서도, 마음을 꽁꽁 묶고 있던 쇠사슬이 한꺼번에 확 풀리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와 전화를 끊지도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내가 핸드폰을 꼭 붙들고 우는 동안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안타까운 한숨소리가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위로처럼 들렸다. 생전 처음 내 편이 생긴 것 같았다. 기분이 괜찮았다. 아니, 좋았다.
“내일 올 거지?”
한바탕 울고 눈물이 좀 잦아들었을 때 엄마가 물었다. 나는 코를 팽 풀었다.
“……응.”
“알았다. 내일 보자.”
엄마의 인사를 끝으로 전화를 끊으려다가 문득 핸드폰 액정을 보았다. 24분 37초, 24분 38초, 24분 39초. 통화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가까운 곳에 그림자처럼 함께하던 사람이 바로 내 편이었다. 내게는 그 어떤 반전보다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은 갑작스러웠지만 그 이상으로 기뻤다. 1초씩 늘어가는 시간이 멈추면 오랜만에 찾아온 만족스러운 기분이 없던 일처럼 시들어버릴까 봐 통화종료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먼저 전화를 끊은 것은 엄마였다. 통화 종료를 알리는 화면이 나타났다. 아쉽고 또 아쉬웠다.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얼굴들 때문에 눈이 시큰하게 달아올랐다. 빨리 엄마아빠가 있는 진짜 우리 집에 가고 싶었다.
“……매정해.”
자취방 창으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온몸의 관절 마디마디로 피로가 몰려와 쌓였다. 잔뜩 주었던 힘을 쭉 뺐다. 몸이 말랑말랑하게 녹아 방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회사에 다녀온 것이 먼 옛날의 일인 것만 같다. 지금 눈을 감았다가 뜨면 내일,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있겠지. 오늘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마음껏 잘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