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새 직원과 함께 먹었다. 그는 회사가 아직 낯설어서인지 나와 함께 있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할 일이 있었다. 나는 그를 먼저 올려보내고 혼자 카페에 갔다. 그리고 비장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 순서대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적어두었던 전화번호는 금방 바닥을 보였다. 애초에 몇 개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금방금방 거절당했다. 유명한 방송국의 어떤 탐사프로그램은 일반 기업에 대한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고 나를 쫓아냈고, 어떤 뉴스의 담당자는 우선 보고를 하겠다며 미적미적한 태도를 유지했다. 여러 개 쥐고 있던 동아줄이 하나하나 끊겨서 툭툭 떨어져 내리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숨이 막혔다.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숨구멍 위에 푹 눌러앉은 것 같았다.
나는 마지막 남은 동아줄을 올려다보았다. 잘린 동아줄인지 하늘까지 이어진 동아줄인지 알 수 없도록 그 끝은 깊은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이것마저 이미 끊어진 썩은 동아줄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손가락이 마지막 남은 파란색 링크 위를 서성이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점심시간은 채 10분도 남지 않았다.
“여보세요.”
몇 분을 더 망설이다가 겨우 전화를 걸었다. 한 대안언론의 전화번호였다. 수화기 너머로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이 희미하게 들렸다. 곧이어 또랑또랑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네, ㅁㅁtv입니다.”
“네, 제보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대기업 뇌물 건이에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렇게 마지막 동아줄도 끊어지는구나. 고르고 골라 전화한 곳인데도 내 말을 듣고 싶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기업의 뇌물장부 따위는 너무 흔하고 공공연한 비밀이라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숨을 한 번 쉬고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시계가 커다란 글씨로 1시를 알려주었다. 다 마시지 못한 커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 문을 나서는데 벌써 전화가 울린다. 나를 찾는 윤대리나 새 직원의 전화라고 생각했다. 핸드폰 위로 들고 있던 카드지갑을 다른 손으로 옮겨 잡았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의외로 모르는 번호다. 받을까 말까 하는데 벨소리가 끊이지도 않고 계속 울렸다. 그냥 끊어버릴까 잠깐 생각하다가 천천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네, ㅁㅁtv 유진실 기자입니다.”
행운은 절망으로 천천히 떨어질 때만 골라서 고개를 빼꼼 내미는 장난꾸러기 요정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