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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남녀 Sep 15. 2024

경주마를 구매하는 가장 황당한 방법

馬主授業: 경주마 다프네



시아버님의 오랜만의 신마(新馬).

상당 기간 마주 지위를 유지하다가 중단하신 지 십수 년. 경주마가 다 무어냐, 있어봐야 골치만 아프다며 잊고 사셨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돌연 마주가 되겠다고 하더니 매끈하게 생긴 암말을 하나 들인다. 그놈의 말이 뭐라고 동물 하나에 실로 지지고 볶으며 울고 웃는 모습을 꼬박 년을 지켜보셨다. 우습다면 우스웠을 꼴이었는데 의외로 나쁘않다 싶으셨는지 인도 다시 해 겠다는 의중을 비치신 게 벌써 꽤 된 이야기다.


아버님의 신마를 찾아 드리는 건 남편의 매우 기쁜 과제였다. 옆구리 쿡쿡 찔러 은근하게 내 희망 사항도 좀 끼워 넣은 건 덤. 경주마 운명 다 거기서 거기라면 할 말 없지만 그래도 아직은 포기하기 어려운 우리만의 문제, 성별. 암말 싫지 않으시다면 암말로 가겠다 말씀드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꼬맹이 물색에 나선 게 사실은 작년부터다. 보통은 남편 혼자, 때로는 "이 말은 좀 같이 봤으면 좋겠어"하고 요청이 들어오면 같이도 내려갔던 제주도에서 망아지들을 보면서 나는 주로 하등 도움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 색깔 이쁘다", " 참 착하게 생겼다".


시간은 흘러 6월 말이 되었다. 학교도 끝났겠다, 모처럼 휴가 삼아 제주에 내려갔다. 전 날 가서 하루 놀며 쉬고, 다음 날 아침 일곱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나름 강행군으로 목장을 돌았다. 남편이 진즉부터 체크해 둔 아이였다. 한국 경주마 혈통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씨수말 "메니피"의 자마라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외엔 특별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온 김에 본다는 생각으로 육성목장에서 곧 있을 7월 브리즈업 경매 준비에 한창이던 꼬맹이 암말을 꺼내어 보여주시라 부탁을 드렸다.


진갈색 모색을 한 망아지가 관리사를 따라 마사 앞으로 나왔. 또각또각, 편자 잘 신은 굽의 경쾌한 울림과 함께 여름 햇살 아래 섰다.

속으로 입이 귀에 걸린다.

예쁘다. 표정을 감추는 게 힘들 정도로.


연이 닿는 건 참 순식간임을 또 한 번 느꼈다. 델피니 때도 그랬다. 고르고 고르던 시간과 노력이 무색하게 결정은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그리하여 우선순위에서 꽤 밀려 있던 망아지가 우리 말이 되었다. 수 십 마리를 본 하루였으나 눈에 들어온 유일한 친구였다. 경매 일주일 전에 갑자기 식구가 된 이 말이 너무 예뻐서 "다프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오늘 다프네가 과천으로 올라왔다. 델피니 때와 비슷하다면 장장 24시간의 긴 여행을 한 거다.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자란 꼬맹이가 처음으로 물을 건너 먼 길을 왔다. 마방에 들여 굴레를 벗겨 주니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밥그릇에 한번 킁, 해보는 게 영락없는 애기다. 낯설겠지만 적응하리라고 믿는다. 새로운 환경이지만 나쁜 환경은 아니기에 미안함은 덜하다. 두 살, 개월 수로 따지면 27개월쯤 되었다. 너무 어린 나이인데 당차게 제 할 일 다 해내며 오늘에 이른 야무진 꼬맹이다.


좋은 주인을 만났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듬뿍 사랑해 사람도 생겼고, 말 수 적고 별 관심 없어 보이지만 뒤로는 누구보다 든든히 챙겨줄 사람도 있다.  방 한 살 위 밤색 언니(피니)가 까칠하고 시샘이 많은 편인데, 그래도 둘이 이왕이면 잘 맞아서 서로 의지하고 살면 좋겠다. 그나마 델피니는 수말보다는 암말을 좋아하니 희망을 걸어본다.



다프네(Daphne). 그리스어로 "월계수". 사랑에 눈이 먼 아폴론에게 쫓겨 붙들릴 위기에 처하자 월계수로 변함으로써 영원불멸의 존재로 승화한 그리스 신화 속 요정







2021.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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