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피니 생각으로 마음이 무겁다. 말과 관계 맺기 전에 가지고 있던 상식이자 믿음은 "사랑하는 동물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이었다. 이는 전혀 특이할 것 없는 전 사회적 미덕이자 당위이기도 해서 이를 추구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말에 있어서는 같은 믿음을 고수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반려하는 소동물에 비해 어려워서 그런지, 썩 그럴 필요도 없고 더 나아가서는 옳은지조차 확실치 않다는 것이 통념이다. 여기서 파열음이 난다.
경주마가 다섯마리로 불어났다. 경주마주들 사이에서는 적은 수이지만 내게는 많다. 아픈 손가락이라고 말하기도 이제는 지치는 우리 델피니가 고민의 지분 대부분을 차지한다. 델피니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끝도 없다. 제일 큰 것은 "첫 말이라서"이다. 이런 식이라면 다프네, 벨베티, 디아나, 벨록스도 모두 할 말이 많을 것인데 다행히 이 친구들은 당장 고민을 하고 답을 낼 필요가 없다. 항상 은퇴의 코앞에서 겨우겨우 현역을 이어나갔던 델피니가 급하다.
올해 고작 다섯 살 먹은 우리 델피니는 너무 예쁘고 착하고 예민하고 까칠하다. 승마장에 똑같이 다섯 살 먹은 망아지가 있는데, 누가 봐도 영락없는 아가로 하는 행동도 그에 걸맞게 천진난만하다. 이제 겨우 기승 교육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패덕에 나와 놀며 언니오빠들 하는 것을 보고 배워 곧잘 한단다. 그 친구를 보다가 우리 델피니를 보면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린 아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
한결같이 믿지 않는 감정, 연민. 연민에 기반한 마음은 얕고 깨지기 쉽다. 연민은 그 순간만큼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도 강한 힘을 발휘할 것만 같지만 긴 시간과 어려움을 뚫고 나갈 동력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를 지치고 피로하게 할 뿐이다. 내가 델피니에게 가졌던 마음에 당당한 이유는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고마움이었다. 나는 단지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을 뿐인데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시절인연임을 새기고 새기고 또 새기면서도 탁, 움켜쥔 손의 힘을 풀기에는 아직 너무 미숙하다. 시간과 경험만이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피니야 우리 다시 어려질 수 있을까? 다섯 살이면 다섯 살 답게 말야.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