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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남녀 Sep 19. 2024

곁에

馬主授業: 경주마 델피니



오늘로 델피니는 네 살이 되었다.

남편이 처음 본 건 한 살, 내가 처음 본 건 두 살, 그때부터 가족 되어 2년이나 흘렀다. 분명히 말했다. 이 말로 하겠다고 목장에 이야기하러 가는 2년 전의 차 안에서, "제발 신중했으면 좋겠어(나는 그 말 안 했으면 좋겠어)". 그러나 남편 귀에 지금 그런 말 안 들어오는 상태라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그렇게 엮인 말. 어느 곳 하나 눈에 거슬리는 데 없이 한 붓에 그린  얄미우리만큼 예뻤던 망아지.


델피니의 생일을 맞아 그래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신기함. 별 탈 없이 이렇게 물 흐르듯이 우리가 피니를 2년이나 데리고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 물론 피니는 뛴 날보다 쉰 날이 더 많고, 어째 과천보다 장수 휴양 목장에 더 많이 있었던 것 같기도 그런 말이고 그런 상황의 연속이었는데도 어찌어찌 2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 남편 말처럼 그래도 우리 애들 정도면 크게 어디 잘 못 된 건 아니니까. 막말로 경주 뛰다 뼈 부러지고 그 자리에서 끝나는 말들을 생각하면 우린 무난한 축이니까.


​그러나 우리 솔직히 괜찮지 못했다. 작년 12월, 일 등 할 거라고, 절호의 기회라고, 드디어 때가 왔다고 했던 그 경주. 8등으로 "망한" 그 황당한 성적까지도 다 알겠는데 문제는 그 뒤로 우리 피니 다시 뛰지 못했다. 뒷다리가 버티질 못해서 훈련도 못 하고 마방에만 내리 있었다. 매년 1월 1일부로 일괄 나이 먹는 경주마 연령 산정 시스템상 우리 피니 2022년 새 해 맞아 "무려" 네 살 됐다. 두 살로 입사할 때는 빛나는 신마, 이른바 "루키"였지만 그간 고작 여섯 번의 출주, 심지어 이렇다 할 성적도 내지 못한 채 나이만 먹은 경주마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겨울이 다 갔다.


생각해야 했다. 생각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생각을 시작해야만 했다. 같이 고민해 보자고 판을 깔아놓고 이내 현실부정에 눈물부터 뚝뚝 떨구는 "피니엄마"까지 등에 업고 주인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낫지 않으면, 호전되지 않으면, 이 말을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 마음 다스려 가며, 우는 아내 다독여 가며, 기운이 없어 까불지도 못하고 그저 당근은 맛있어 오물오물 받아먹는 500킬로그램짜리 망아지의 앞날에 대한 고민이 계속 됐다. 이제 정말로 벼랑 끝에 몰리는 기분이었다. "아직 뼈도 다 안 굳었어!"라고 대들어 봐도 이 세계에서는 견적 다 나온 나이, 네 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버티는 게 과연 옳은 걸까. 말을 위한 길이긴 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본다"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피니에게 떳떳할 수 있게 하자고 생각했다. 그 일환으로 우린 기다리던 중이었다. 피니의 상태를 지켜보며 과연 낫는지 낫지 않는지. 그렇게 오늘에 이르렀다. 피니를 보러 갈 때마다 만감이 교차했다. 차에서 내리면 한숨부터 나왔다. "제발 한숨 좀 쉬지 말자", 스스로에게 말을 하고 금방 또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걸어 들어갔고, 애를 보고, 별 차도 없는 걸 확인하고 돌아오곤 했다, 다음 주를 기약하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흔해 빠진 저 말이 문득 떠올랐다. 저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눈앞에서 폭탄이 터져도, 모든 게 와르르 무너져 내려도 피하지 않고 오롯이, 온몸으로 다 받아내겠다는 각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와, 그런 뜻인 줄 알았어도 결혼식에서 그렇게 앵무새처럼 저 말을 읊었을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을 때나 힘들 때나 항상  곁에. 널 등지지 않고 너와 함께. 우리가 피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말하자면 이게 전부다. 네 살, "나이 든 망아지" 델피니의 생일을 축하하며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길 빈다.





우린 잘 뛸 말을 고른 게 아니라 예쁜 말을 골랐나보다.







202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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