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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남녀 Sep 17. 2024

델피니의 다섯 번째 경주를 보며

馬主授業: 경주마 델피니



곧 네 살이 되는 우리 델피니가 오늘 다섯 번째 경주를 뛰었다. 경주마 삶 다양하다곤 해도 "네"살과 "다섯" 번째에 방점 찍는 이유는 우리 피니 늦었다면 늦은 축이라는 말 하고 싶어서다. 숫자 하나 더 써서 "6"등급까지 합쳐놓으면 한 층 더 가관이다. 이제 곧 살 되는데 아직도 6군에서 못 올라가고 있고 경주는 다섯 번밖에 못 뛰었다? 긴 말 필요 없이 한 단어로 정리 가능, 그것은 "부진마".


26주 만의 출전이다. 마지막으로 뛴 네 번째 경주가 지난 5월이었다. 11위에서 5위로, 5위에서 3위로 거듭 순위를 올리며 기대 수준 역시 최대치로 끌어올려 나간 네 번째 경주에서 피니는 "못 해도 2등으로는 들어와야 한다"라는 말까지 들었으나 7위라는 다소 놀라운 등수로 맥없이 경주를 마무리했다. 이미 그전부터 컨디션이 아주 좋지는 않았는데 뛰고 나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또다시 마방 휴식과 애매한 몸 풀기가 무한 반복될 분위기였고, 이러느니 가서 쉬어라 하는 심정으로 장수로 내려보냈다. 장수만 가면 행복하다는 피니라 아닌 게 아니라 몸 좋아지고 표정 밝아졌다. 아까운 3세, 경주마에게 금쪽같은 시간을 이렇게 허비한다 싶은 생각 한 번도 한 적 없다면 거짓말이고, 비슷한 우려의 목소리 들은 적 없다면 역시 거짓말이다. 그러나 버티고 버티고 "놀아라 쉬어라 같이 놀아보자"하다가 이제 됐다는 승인받아 올라온 가을이었다.


드디어 몸 괜찮아져서 올렸더니 너무 오래 쉰 까닭에 경주마로서의 기본 능력을 잃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우니 주행심사를 다시 보란다. 규정이 그렇다. 여기서 나는 울었다. 어떻게 붙은 주행심산데, 우리 피니가 주행심사 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과천 경마장에 입사해서 주행심사에 이르기까지 그 길고 긴 마음고생의 세월이 스쳤다. 그런데 그걸 또 보라고?

꼬맹이는 다행히 주행심사를 잘 봤고, 붙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오늘이 휴양 후 첫 경주였던 거다, 이른바 "복귀전". 물론 사람들은 피니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마 좀 애매한 말일 거다. 대놓고 못 뛸 말은 아닌데, 너무 보여주는 건 없고. 좀 할 만 한가 싶으면 무너지고 휴양은 또 왜 갔다 온 것이며, 한 마디로 "믿을 수 없는 말". 맞다. 출주 기회도 겨우 잡았다. 상금 못 벌고 잘 못 뛰는 말들은 출전 순위에서 밀린다. 무언의 압박인 거다, "무능력한 말은 퇴출". 못 뛰면 더더욱 뛸 기회를 줘야 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려보지만, 누가 누가 더 잘 뛰나 추려보자는 세계이므로 싹수 안 보인다 싶은 말들 설 자린 줄이는 정책이다. 이 세계가 그렇다.




아침 일찍 채비를 하고 과천에 들어가자마자 마사부터 들렀다. 피니가 경주 준비를 하러 가기 전에 꼭 행운을 빌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척 평온하고 고요한 마방. 조용히 방에 다가가 보니 애가 가만히 서 있다. 행여나 신경을 거스를까, 날뛰다 다칠까 걱정이 되어 문도 제대로 열지 못했다. "피니야, 잘해."라고 조용히 말해준 게 전부다. 피니는 예민해 보였고, 긴장한 것 같은 눈빛이었다. 창살 너머로 잠깐 쓰다듬다가 금방 자리를 떴다.


발주대로 들어가는 것까지 봤는데 더 이상은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야외로 나가버렸다. 거기 서 있으면 결승선을 통과하는 마지막 모습만은 직접 볼 수 있다. 출발음이 들렸다. 애들은 분명 달리고 있을 텐데 아무리 들어도 우리 피니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눈에 띄게 치고 나오는 게 있다면 "7번 델피니"라는 말이 한 번쯤은 들릴 법도 하건만 아무 소리도 없으니 '우리 피니는 뒤에 있나 보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저 멀리 4코너를 지나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 달려오는데 이렇다 하게 앞에도 없고 그렇다고 뒤에도 없는 것 같고 중간 어디쯤엔가 뭉쳐있는 말들 중 누가 누군지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그때 이름이 불렸다, 정신을 번쩍 차리고 보니 우리 피니가 세 번째로 달리고 있었다.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피니를 보러 마방으로 다시 갔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목욕을 하고, 모래를 맞아 벌겋게 충혈된 눈을 씻어내고, 평보로 숨을 고른 뒤 마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목욕하는 피니를 보며 남편에게 소곤거렸다,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 피니 천덕꾸러기 안 돼서.".


애가 잘하니 그게 제일 좋다, 애가 못하면 그게 제일 무섭다. 솔직히 누가 우리 피니에게 돈을 건다고 하면 그러지 마시라고 말리고 싶다. 사람 마음 어쩔 수 없어서 걸었다가 잃으면 말을 욕하게 되기 때문이다. 잘 뛰지 못하는 말의 주인은, 그 말을 너무 아끼는 주인은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면서도 또 말이 너무 안 됐다고, 불쌍하다고 한다. 동시에 말은 지금 이 상황을 모를 거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모든 건 주인이 감당하면 되고, 말은 모르고 또 몰라도 된다는 것이 유일하게 주인 마음 편하게 한다.


​나는 우리 피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단지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 너무나 운명적으로 엮인 관계다.

피니가 우리에게는 최고고, 최선이다. 존재 자체로.







피니는 사랑하는 우리 말이다. 우리의 얼굴, 우리의 자부심, 성적과는 관계 없다.








202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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