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는 상태는 참 재미있다. 우린 보통 쉬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맥락에 따라서는 다소 민망하게, 혹은 무력하게 느끼기도 한다. 애초에 쉬기를 원했냐 원하지 않았냐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쉬는 말"은 좀 심란한 존재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말을 쉬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말들은 저마다 주어진 기능이 있고 그 기능을 수행하면서, 수행을 "조건"으로 혹은 "전제"로 삶을 계속해나간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써먹을 데가 있어 살려둔다는 거다. 어떤 말이 쉰다고 하면 그 말을 지금 부릴 수가 없다는 뜻이다. 부릴 수 없어서 사람은 복장이 터질지언정 말은 편하고 좋다고 내리 시간을 끌 수만도 없다. 기능을 수행할 수 없으면서 밥먹고 물먹고 각종 비용 축내는 말을 사람은 오래 두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쉬는 말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찝찝해지는이유이기도 하다.
델피니가 쉰다. 마지막으로 경주를 뛴게 5월 말이었다. 그간 5, 6주 간격으로 꾸준히 출주 했었기에 다음 경주는 7월 중으로 잡히는 게 맞았다. 문제는 델피니가 힘이 없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몇 주 전, 다섯번째 경주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요량으로 기승해본 분들의 느낌상 후구가 약하단다.
후구? 이건 또 무슨 하늘 무너지는 소린가.말의 힘은 후구에서 나오는데 후구가 받쳐주질 못한다니 이 일을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일단 마음을 가라앉혀 본다, 델피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중에 약해도 괜찮은 부분은 하나도 없다. 후구 아니라 전구, 허리, 목, 다리, 굽 등 무얼 갖다 넣어도 뒤에 "약하다"라는 단어가 붙었을 때 눈앞이 캄캄해지긴 마찬가지였을거다.
분명한건 이대로 뛰어봤자라는 것이다. 내보내면 억지로 뛰기야 하겠으나 좋은 성적 나올 리 만무하다. 성적은 고사하고 무리하게 강행했다가 정말로 몸이 상할 수도 있다. 다행히 검사상으로 드러난 이렇다 할 신체적 이상은 없었지만, 지금 선에서 멈춰야 한다는 것이 조교사님의 판단이었다. 애 뛰게 하라고 우길 사람 없다. 그 길로 피니는 "휴식"에 들어갔다. 어느새 시간은 또 흘러 지난번 경주 끝난 뒤로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자체휴식인지 강제휴식인지 모를 이 상태로 말이 경마장에 살고 있다.
남겨지는 신세.
다른 말들 열심히 뛰고 훈련이네 경주네 분주히 오가는 동안 혼자 덩그러니 마방에 틀어박혀 있는 신세, 그게 어떤 느낌인지사실은 모른다. 인간이라면 스트레스받고 울적해질 테지만말들도 그럴까. 그래도 간간이 꺼내서 몸 풀게 운동시켜주고 밥도 잘 주고 하니 델피니는 만족할까. 그래도 자꾸 이입을 하게 되고 안쓰러워진다. 경주에 나가 상금을 벌어다주지 못하니 천덕꾸러기가 되면 어쩌지, 묵혀뒀던 걱정도 고개를 든다.피니가 언제까지 쉬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1년 전, 휴양을 내려간 피니가 언제까지 장수에 있을지 기약이 없었던 것처럼.
짠해 죽겠다. 언젠가는 다시 힘을 내주기를. 원래부터도 성적 욕심은 없었지만 더더욱 욕심을 버리라는 뜻인가 싶다.
괜찮겠지. 괜찮았으면. 괜찮을거라고 믿는다.
아프거나 그런건 아니지? 쉬다보면 낫더라고. 밥 잘 먹구. 다음주에도 당근이랑 몇 가지 들려보낼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