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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남녀 Jul 06. 2024

차마 나오지 않는 말

馬主授業: 경주마 델피니


우리 집 꼬맹이 경주마 델피니가 이번 주 일요일, 세 번째로 경주에 나선다. 훈련 한 번 할 때마다 어김없이 다리를 절며 들어오던 약한 암말은 이제 매일의 강훈련과 거듭되는 경주를 꿋꿋하게 버티며 성장하고 있다. 그래도 훈련이 시작되면 스트레스와 피로로 밥을 안 먹기 시작해서 경주가 끝날 때까지 사료 섭취량이 현격히 줄어든다. 경주가 끝나고 마음이 편해져야 겨우 다시 먹기 시작한다. 이는 피니뿐 아니라 대부분의 예민한 경주마들에게서 나타나는 성향이다. 피니도 지난 경주를 준비하며 밥을 그대로 남기다가 경주가 끝난 뒤 2주간 쉬며 다시 밥을 잘 먹어 10킬로그램 정도 몸무게가 늘었다. 아마 지금쯤 다시 살이 빠지면서 몸과 마음 모두 날카로운 운동선수 모드로 변했을 거다.

코로나로 최근 완전히 마사 출입이 막히기 전까지 그래도 한동안은 가끔 피니를 보러 갈 수 있었다. 마방 앞에 서서 장난을 치다가 곧 다시 출주 한다는 소식을 듣피니에게 참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상당히 오래 뜸을 들였는데, 결국 나온 말은 아마 대충 이런 식이었을 거다.


"음... 그냥 너 뛸 만큼만 뛰어. 괜찮아."


잘하라는 말이 그렇게 안 나온다. 크면서 그 말을 들은 적 있나 가만히 떠올려 본다. 유감스럽게도 숱하게 들었다. 내 눈앞에서 이를 악문 표정으로 검지를 치켜세우며 " 해!"을 외치던 가족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인데 여전히 진절머리가 나는 느낌은 덤이다.


​나도 피니한테, " 좀 해 이 꼬맹아" 혹은, "이번엔 지난번보단 잘하자?"라는 식의 말을 사실 못 할 것도 없다. 애가 못 한다고 잡아먹길 하랴 때려주길 하랴, 그냥 말이 그렇단 거지. 그런데도 그 말이 절대 안 나온다. 죽어도 안 나온다. 아니, 싫다. 이제 보니 난 그 말하는 게 싫은 듯도 하다.


정말 솔직한 심정이라면, 그냥 피니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리면 좋겠다. 특히 마방까지 돌아올 힘은 남겨두고 달리길 바란다. 아무리 경주마라도 뛴다는 게 사실 죽고 사는 일 아니다. 단지 그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기쁠 것이냐의 문제일 뿐. 그렇기에 "피니야, 힘을 남겨두고 달려야 "라고 당부하고 싶었다. 말들은 약질 못해서 죽도록 달리다 정말 죽으니까.

어쩌면 나는 내가 끝내 가져보지 못한 부모가 되고 싶은가 보다. 내가 받아보지 못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피니에게만은 보내고 싶은가 보다. 끝없이 가해졌던 압박. 성취에 대한, 결과에 대한 당연한 기대 혹은 당연한 기대인 척하는 욕심. 그것들로부터 나는 한 번도 자유롭지 못했고, 급기야는 그 모든 것들을 내면화하기에 이르렀다. 쉽게 툭툭 내뱉듯 던져진 말들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 때문에 그 말이 안 나오지 싶다. 피니가 6등급 암말 한정 경주가 아니라 켄터키 더비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절대 피니한테 잘하라곤 안 할 거다.


​고맙다.

다치지만 말자.

괜찮아.

그냥 너 뛰고 싶은 만큼만 뛰어.

런 식이겠지.


괴상하다면 괴상한 마주다. 근데 또 어찌 보면 괴상할게 전혀 없다.



넌 정말 아름다운 말이야





2021.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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