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여파로 마주의 마사 출입이 금지된 지가 벌써 수개월째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주마 마주들은 애당초 마사에 많이 가지 않는다. 마사는커녕, 자기 말이 무슨 색깔인지 모르는 마주들도 있다. 말을 고르기 위해 우리가 "직접" 제주 목장에 갔다는 사실에 놀라는 반응도 접한 적이 있다. 현실이 그렇다. 그러니 마주더러 마사에 들어가지 말라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별로 타격이 없었을 터다.
우리는 다르다. 규제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일주일에 족히 서너 번은 델피니를 보러 가곤 했다. 우연히 그때 내가 시간 여유가 많은 때였기도 했고, 가볍게 운전하고 가서 피니 얼굴도 보고, 쓰다듬고 당근 먹이고 돌아오는 그 소소한 일과가 참 행복했다. 주말중 하루는 남편과 함께 피니를 보러 갔다. 피니를 보러 가는건 그만큼 무척 중요하고도 당연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게 막힌 거다.
"내가 내 말을 못 보는 게 말이 돼?"라고 분개했지만 달리 도리는 없었다. 물론 나는 분명 지금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싶은 불안에 드러내놓고 반발하지도 못한 채로 시간이 흘렀다. 주행심사 때는 아주 멀리서 보고 돌아왔어야 했고, 그토록 기다리던 데뷔전은 가보지조차 못했다.
무서운건 그렇게 살다 보니 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피니를 보러 가지 못해도 다른 일상들은 계속되었으므로그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냥저냥 피니를 보지 못하는,한 때는 말도 안된다고 여겼던 그 상황이 또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느꼈다, 피니가 내 마음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는걸.
여전히 우린 밥을 먹으면서, 산책을 하면서, "피니 기지배 잘 있나?" 혹은 "피니 잘 있대."라고 피니 이야기를 했다. 여전히 피니의 훈련 기록을 챙겼고, 피니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떨어져있지만,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피니를 생각하고 있고 피니를 잊지 않았다고 믿었다. 물론 그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피니에 관한 감정의 진폭이 점점 줄어들어가는 것이었다.
좋은 소식에 대해 예전같으면 100만큼 기뻤을게 이젠 50만큼 기뻤다. 안좋은 소식에 대해 예전같으면 100만큼 걱정을 했을게 이제 한 60만큼 걱정이 됐다. 달려가서 격려할수도, 쓰다듬으며 염려할 수도 없는 그 먼 존재에 대해 나는 그야말로 "쿨해지고" 있었다. 깨달았다. 피니가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 멀어지고 있구나.
며칠 전, 내 새끼와의 생이별을 참는 것이 한계에 달한 남편과 나는 급기야 마사에 들어가 델피니를 보기로 결심을 했다. 누군가 막는다면 이 이야길 하고, 그게 안 먹히면 그 이야기를 하고, 그래도 안 먹히면 마지막으로 "두 번 다시 안 올 테니 제발 이번 한 번만"이라고 빌어보자는 계획까지 세우고 길을 나섰다. 다행히 아무도 우릴 막지 않았고, 더욱더 다행인 건 아무도 우리와 만나지 않은 고로 코로나 확산 염려도 없이 피니 방 앞까지 갔다.
정말 오랜만에 피니를 봤다. 과장을 좀 보태면, 못알아볼뻔했다. 특유의 얼굴 무늬, 특유의 눈동자, 그리고 명명백백히 마방문에 써있는 "델피니" 세글자가 이 말이 우리 말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음에도 들었던 그 낯선 느낌, 그 생경함, 이 피니가 내가 아는 그 피니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정말 묘했다.
물론 피니가 변하기도 했다. 계절에 맞추어 털이 북슬해졌고, 색도 굉장히 짙어졌다. 몸도 더 커지고, 근육이 발달하고 단단해졌다. 내가 아는 피니는 날씬하고 근육도 없어서 매끈하면서도 조금 토실토실하게배가 살짝 나온 웃자란 아이 같은 모습인데, 햇빛을 받아 붉은 밤색으로 빛나는 보드라운 털을 가진 "애기"인데, 내 눈앞의 이 늠름하고 멋진, 살짝 긴장하며 만져야 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이 거대한 경주마가 우리 델피니라고?
"야.. 너 우리랑 같이 당근 먹고 내가 빗질해주고 하디랑 같이 가족사진 찍었던 그 피니 맞아? 너 나 기억은 해?"하고 물어보는 목소리가 떨렸던 데는 여러 이유가 섞였을 거다.
집에 돌아오며 다짐했다, 자주 봐야겠다고.이젠 왠지 꼬맹이라고 부르면 안될 것 같은 멋진 경주마 피니를 역시 안보고 사는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마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