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용 붕대를 네 다리에 야무지게도 감아주시는 걸 지켜봤다. 관리사님과 함께 마사 뒷길로 총총총 내려가는 걸음걸이가 유독 튀어 오르듯 가벼웠던 이유는 "신남" 보다는 "긴장"이었다. 실제로 대기하면서 몇 번을 날뛰었다. 멀찍이서 바라보며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난리를 치더니 차에는 또 금방 탄다. "차는 잘 타"가 과천에서 델피니가 들은 마지막 칭찬이었을까. 출발도 눈 깜짝할 새에 한다. 참 간단하기도 하지.
수송차 뒤를 따라갔다.양재 어디에선가 피니는 오른쪽, 나는 왼쪽으로 길이 나뉘었다.금방 보러 내려갈거다, 굳은 표정으로 다짐하는 것만이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위안이었던 것 같다. "왜 하필"로 시작하는 질문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의문도 아닌 의문이 해결해 주는건 없기에.
좋아, 애는 갔다. 언제 올지 기약도 없다.여기에 우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매 주 보러 가자는 다짐, 물론 별거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심지어 나야 일을 안하니까 그렇다 치지만 일주일에 고작 이틀 쉬는 남편이 그중 하루를 온전히 다 들여서 왕복 500킬로 거리를 오가는 게 쉽지가 않다. 토요일 하루를 피니를 보러 가는 데에 다 썼고, 그다음날은 꼼짝없이 지친 몸을 회복하다가 끝이 났다. 지상 최대의 목표, 타협할 수 없는 절대가치라도 되는듯 "토요일은 델피니를 보러 가는 날"로 정하고 아침 7시가 되면 온 가족이 길을 떠났다.
가다가 차가 고장 나면 다른 차를 끌고 다시 갔고, 전국적으로 호우특보에 산사태경보가 내려도 무식하게 비를 뚫고 막힌 도로는 우회해 가며 갔다(결국 26킬로를 남겨놓고 범람 직전의 하천 옆길을 도저히 통과할 수 없어 집으로 되돌아왔다).
우리에겐 델피니를 보러 가는 날이 일주일 중 거의 유일한 낙이었으니까. 이번엔 피니가 어쨌지 저쨌지, 저번엔 이걸 안먹더니 드디어 조금은 먹었어 등등 남들이 보기엔 너무도 하잘것 없는 행동 하나하나를 즐겁게 곱씹으며 "다음번 내려가는 날"이 돌아오기까지 각자의 일상을 버텨낼 수 있도록 패덕 앞 땡볕에 서서 고작해야 한시간 남짓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길 반복했던거다.
여섯살 언니 옆에 세워놔도, 네살 언니 옆에 세워놔도 피니는 너무나 애기였다. 애기, 애송이, 꼬맹이, 하룻강아지, 천지를 모르는 망아지, 몸만 컸지 이 모든 표현이 다 어울릴 만큼 "어린 말". 심지어 그 몸조차도 보면 볼수록 너무나 미성숙했다.그런 말이 고작 넉달만에 신데렐라 변신하듯 짠 하고 늠름한 경주마로 거듭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몇 달 더 산 꼬맹이"가 되었을 뿐.그렇다면 과연 델피니는 준비가 된 걸까.단지 건강상태는 분명히 더 좋아졌다고 하니까, 다시 처음부터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듯 시작해보자는 마음가짐이라면 피니는 준비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특별히 낙천적인 사람들은 아닌데(정확히 말하면 나는 극도로 비관적이고 남편은 약간 낙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운 장수 휴양의 목표는 딱 세 가지였다:첫째 피니는 충분히 푹 쉰다. 둘째 우린 매번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셋째 피니와 하디가 한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으니 이번 기회를 빌어 가족사진을 찍는다.
이정도면 나는 목표 달성이라고 본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피니에게"그동안 고생 많았다. 조심해서 와."라고 인사를 하며 느꼈다. 역시 "가"보다는 "와"라고 말하는 마음이 한결 편하다.
7천키로 이상을 동행하는 내내 다음 날 죽은듯 누워 쉴지언정 여정 중에는 단 한 번도 걱정할 일 만들지 않은. 고마워 하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