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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남녀 Jun 30. 2024

돌아오는 델피니

馬主授業: 경주마 델피니


수송용 붕대를 네 다리에 야무지게도 감아주시는 걸 지켜봤다. 관리사님과 함께 마사 뒷길로 총총총 내려가는 걸음걸이가 유독 튀어 오르듯 가벼웠던 이유는 "신남" 보다는 "긴장"이었다. 실제로 대기하면서 몇 번을 날뛰었다. 멀찍이서 바라보며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난리를 치더니 차에는 또 금방 탄다. "차는 잘 타"가 과천에서 델피니가 들은 마지막 칭찬이었을까. 출발도 눈 깜짝할 새에 한다. 참 간단하기도 하지.

수송차 뒤를 따라갔다. 양재 어디에선가 피니는 오른쪽, 나는 왼쪽으로 길이 나뉘었다. 금방 보러 내려갈 거다, 굳은 표정으로 다짐하는 것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위안이었던 것 같다. "왜 하필"로 시작하는 질문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의문도 아닌 의문이 해결해 주는 건 없기에.


​좋아, 애는 갔. 언제 올지 기약도 없. 여기에 우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매 주 보러 가자는 다짐, 물론 별 거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심지어 나야 일을 안 하니까 그렇다 치지만 일주일에 고작 이틀 쉬는 남편이 그중 하루를 온전히 다 들여서 왕복 500킬로 거리를 오가는 게 쉽지가 않다. 토요일 하루를 피니를 보러 가는 데에 다 썼고, 그다음 날은 꼼짝없이 지친 몸을 회복하다가 끝이 났다. 지상 최대의 목표, 타협할 수 없는 절대 가치라도 되는 듯 "토요일은 피니를 보러 가는 날"로 정하고 아침 7시가 되면 온 가족이 길을 떠났다.


​가다가 차가 고장 나면 다른 차를 끌고 다시 갔고, 전국적으로 호우 특보에 산사태 경보가 내려도 무식하게 비를 뚫고 막힌 도로는 우회해 가며 갔다(결국 26킬로를 남겨놓고 범람 직전의 하천 옆 길을 도저히 통과할 수 없어 집으로 되돌아왔다).


​우리에겐 피니를 보러 가는 날이 일주일 중 거의 유일한 낙이었으니까. 이번엔 피니가 어쨌지 저쨌지, 저번엔 이 걸 안 먹더니 드디어 조금은 먹었어 등등 남들이 보기엔 너무도 하잘 것 없는 행동 하나하나를 즐겁게 곱씹으며 "다음번 내려가는 날"이 돌아오기까지 각자의 일상을 버텨낼 수 있도록 패덕 앞 땡볕에 서서 고작해야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길 반복했던 거다.


여섯 살 언니 옆에 세워 놔도, 네 살 언니 옆에 세워 놔도 피니는 너무나 애기였다. 애기, 애송이, 꼬맹이, 하룻강아지, 천지를 모르는 망아지, 몸만 컸지 이 모든 표현이 다 어울릴 만큼 "어린 말". 심지어 그 몸조차도 보면 볼수록 너무나 미성숙했다. ​그이 고작 넉  만에 신데렐라 변신하듯 짠 하고 늠름한 경주마로 거듭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몇 달 더 산 꼬맹이"가 되었을 뿐. 그렇다면 과연 피니는 준비가 된 걸까. 단지 건강 상태는 분명히 더 좋아졌다고 하니까, 다시 처음부터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듯 시작해 보자는 마음가짐이라면 피니는 준비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특별히 낙천적인 사람들은 아닌데(정확히 말하면 나는 극도로 비관적이고 남편은 약간 낙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운 장수 휴양의 목표는 딱 세 가지였다: 첫째 피니는 충분히 푹 쉰다. 둘째 우린 매번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셋째 피니와 하디가 한 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으니 이번 기회를 빌어 가족사진을 찍는다.

​이 정도면 나는 목표 달성이라고 본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피니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 조심해서 와."라고 인사를 하며 느꼈다. 역시 "가"보다는 "와"라고 말하는 마음이 한결 편하다.





7천키로 이상을 동행하는 내내 다음 날 죽은듯  누워 쉴지언정 여정 중에는 단 한 번도 걱정할 일 만들지 않은. 고마워 하디.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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