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했다. 특별했다. 인터뷰에 촬영에, 뭇사람의 비아냥을 샀을지언정 오늘이 6번 게이트 델피니의 마지막 경주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특별한 소개까지 있었다. 과천에서 나가는 날, 수송차에 잘 올라타는 것을 보는 것으로 모자라 기어코 목장까지 쫓아갔다. 반드시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며 차를 얼마나 바지런히 몰았는지 모른다. 준비가 잘 되어 있나 확인부터 했다. 말이 내리고, 깨끗한 톱밥을 폭신하게 깔아 둔 마방에 들어가 한바탕 구르는 것을 봤다. 당근까지 다 먹이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한 마디로 할 만큼 했다 아니, 차고 넘치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슬픔이 가시질 않는다.
은퇴란 그런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고, 잔치를 열고, 이것은 끝이 아닌 시작임을 새기고 또 새겨도 자꾸만 울먹해지는 것. 우리의 첫 경주마가 영영 주로를 떠나게 된, 이제부터는 "델피니"라는 이름 앞에 "경주마"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는, 델피니의 모색에 가장 잘 어울리게 디자인된 마주복색을 입은 기수를 등에 얹고 날렵하게 질주하는 모습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지지고 볶았어도 멋졌던 삼 년여의 시간을 뒤로하는 이 모든 변화에 기쁨이란 없다.
부마 카우보이칼과 모마 드림딜라이트의 2018년생 밤색 암말 자마에 대해 사람들은 대개 다른 주인을 만났으면 진즉 경마장에서 쫓겨났을 것이라고들 한다. 개인적으로 델피니가 경주에 부적합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어느 정도 믿는 입장인 것도 맞다. 그래도 이 말에게 우리가 최선의 주인이었다고 단언하는 것 역시 오만이기에 이렇게 퇴역하게 된 델피니에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미안함이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좀 더 좋은 주인을 만났다면 더 나은 경주마가 되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의 가축화된 말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는 한 일찍 죽을 일이 없다. 주인의 비호 하에 안온하게 사는 말이 불의의 사고를 당할 일 역시 거의 없다. 그 뜻은 올해 다섯 살 난 델피니는 앞으로 이십 년은 족히 더 산다는 이야기다. 이십오 년 세월 중에 고작 삼 년이 이 말을 규정할 수 없고 규정할 필요도 없다. 말이 오래 산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울 것인지 편안할 것인지는 선택에 달려있다.
서운함에 당당하다, 이 또한 사랑의 일부이기에. 그러나 일부를 전체로 치환할 수는 없다. 서운하면서도 희망을 품고, 슬프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현실을 맞이한다. 영원한 안식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살고 또 사는 것이므로.
피니야, 이제 나가는거야.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성큼 한 걸음 내딛어 보는거야. 네가 가는 곳이 어디든 항상 내가 먼저 가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