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얘기를 시작한 엄마.
"너희들한테 부담주기 싫어서 집수리 한다고
말은 안 했다만, 오래된 창을 이중창으로 바꾸고 보니 얼마나 환하고 바람도 안 들어와서 따듯한지 모른다. 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일하는 아재들 하는 말이 단열창이라 바람은 안 들어오는 대신 투명하다 보니 밤에 불을 켜면 밖에서 다 보이니까 그래도 커튼은 꼭 하세요 하데.
내가 또 그 얘길 듣고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급해서 둘째한테 그날 저녁에 바로 전화를 했다. 신경 쓸까 봐 수리한다 이런 얘기는 다 빼고 거실이랑 작은방이 겨울에 애들 오면 추우니까 커튼 하나해서 보내라 했지"
"그랬어 엄마? 안 그래도 주말에 막내랑 셋이 영상통화하는데 둘째가 얘기하더라고. 웬일로 엄마가 커튼사서 보내라 하셔서 검색해서 알아보고 바로 주문해 드렸다고. 엄마가 잘 받았다고 그러셨어 라고 하던데?"
"그래도 보내준 거를 좋은네 별로네 할 수 있나, 잘 받았다 해야지. 내가 창피해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커튼사서 보냈다길래 오매불망 그것만 기다리다가
막상 도착해서 박스 뜯어보니 이거는 어디 달수도 없는 기다. 색도 색이지만 천도 싸구려에 얼마나 얇으면 폴폴 날린다. 봉도 같이 안 보내고 길이는 짧고 그 아재들 있을 때 설치하려고 불렀다가 내가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
그 아재 하는 말이 원단도 얇고 똑같은 길이 두 개 들어있는 거 보니 이거 원플러스원 인가 보네요.
어르신 이런 거 사면 오래 못써요..."
"엄마 그래도 둘째가 설마 그런 거 보냈겠어.
일하는 분들이 그냥 하는 말을 엄마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거 아니고?"
"다음에 내려오면 봐라. 니도 눈이 있으면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 거다. 세상에 게다가 봉도 안 들어있는 커튼이 어디 있나, 당장 설치도 못하고. 다시 둘째한테 전화해서 봉이 안 왔다 했더니 봉은 원래 집에 있잖아 하데. 그거랑 커튼 끼우는 데가 안 맞아서 달지도 못한다. 있던 커튼이랑 색도 안 맞고. 그러니 봉만 다시 보내줘라 했다."
"일하는 분들 있을 때 커튼설치까지 해치우려고 하니까 엄마 마음이 급해졌나 보네"
"그래서 봉이 다음날인가 택배로 왔데. 뜯어가지고 아재들 보러 달아 달라했더니 이번엔 봉이 커튼이랑 안맞는기 왔다고. 끼는 게 아니고 고리에 거는 거라 할 수가 없다지를 않나.
내가 속에 열불이 나서. 나이가 다들 몇이라.
일을 그렇게 하라 해도 못하겠다. 어린이집 원장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일을 그렇게 설렁설렁 대충대충, 나이고 경력이고 다 허투루 먹었지."
"엄마가 그래서 병이 났구나. 화병이 난 거였네.
체하고 앓아누울만해. 우리 엄마 성격에."
"하루 아파서 누워있다가 이대로 두면 볼 때마다 화가 올라와서 안되겠는기라, 내가 마무리를 해야지 누구한테 또 맡기겠노. 둘째한테는 봉도 잘 받았다 하고 그 길로 먼 시내까지 차 운전해서 큰 마트를 갔다. 그렇게 좋은 커튼이 많은 기라. 이럴줄 알았으면 진즉에 내가 알아서 할 거를, 너희들한테 부탁을 해서 이 사달을 낸다."
"너무 높은 안목을 가지신 분이 우리 엄마라 딸들이 그걸 못 맞춘다 엄마.
엄마 안목을 닮은 딸이 어째 셋이나 되는데 하나 없는지 몰라.
미안해요, 민여사님."
"내가 그런 걸 알면서도 매번 까먹는다. 다음에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나이가 드니까
자꾸만 잊어버려. 또 같은 일이 생기고 화병이 나야
그랬었지 한다. 니들이 무슨 잘못이겠니. 없이 키우다 보니 많이 보여주고 많이 해주지 못해서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거라. 부모를 잘 만났으면 니들도 그리크진 않았을 긴데..."
엄마의 얘기가 지난 과거 회상으로 돌아가 자신 탓으로 이어진다. 전화기 넘어 조용해진 엄마의 침묵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가 없는 울컥함이 나의 가슴속에서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