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속 우물-3
74세 나의 엄마 민여사.
퇴근 후 아이들 저녁식사 챙기고 집안일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어느덧 10시.
늦은 시간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한참을 영상통화 연결음만 뚜뚜. 끊으려던 신호의 끝에 엄마가 씻고 나오셨는지 그제야 전화를 받으신다.
"엄마도 이제 씻으셨나 봐~좀 더 있다가 전화할걸.
머리 말리고 하세요. 다시 전화할게"
"아니다, 선풍기 켜두면 된다"
"어제는 잘 주무셨어? 시차가 바뀌어서 잠도 못 주무셨을 텐데. 컨디션은 어때~엄마"
"가서 얼마나 정신이 없고 걸어 다니고 힘들었는지 고혈압, 갑상선 약도 못 챙겨 먹고 돌아다녔다.
나이 들면 이젠 외국도 나가면 안 된다. 힘들고 피곤하고 어딜 가도 환영도 못 받고"
"젊은 사람들도 시차 바뀌면 적응하기 힘든데
엄마는 당연히 더 힘들었을 거야. 다리도 약하지, 잠도 못 잤지, 먹는 것도 입에 안 맞고 얼마나 힘드셨겠어"
"그런 거 난 다 괜찮다. 그런데 난 또 살다 살다 이런 대접은 첨이다. 모르는 사람한테도 그런 거지 취급은 안 당했을 거다.
내 옷 다 꺼내 두면서 까지 딸이랑 손녀 먹이겠다고 캐리어에 죄다 먹을 거 챙겨간걸 내가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앞으로 아들이든 딸이든 다시는 나 데리고 어디 여행 갈 생각 마라.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 왜 나를 그 먼 외국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짐짝 취급 하나"
"엄마, 무슨 일 있었길래 그런 말씀을 하셔~"
"내가 어디 창피해서 말도 못 한다.
도착한 날 추워서 네 동생옷 입으면 되겠지 하고 옷을 찾아봤더니 입을 만한 옷은 하나 없고
옷이 없나 물었더니 나를 데리고 아웃렛을 갔다. 잠깐 앉아 있으라고 하더니 둘이 한참을 어디를 다녀와.
그러면서 옷이라고 어디서 둘둘 말은 거적데기를 들고 와서 '엄마, 이쁘지 이쁘지 이거 입고 다니자' 하길래 내가 눈길도 안 줬다. 길거리 가다가 사도 그런 건 볼 수도 없는 거라.
내가 그랬다. 나 안 입는다. 내다 버려라. 그걸 어디 입고 다니라고 엄마를 주나.
내가 영웅이 점퍼만 챙겨갔어도 없었을 일인데. 그런 딸을 챙긴다고, 먹을 거가 뭐라고 그랬는지. 내가 땅을 치고 후회했다."
첫날 파리도착하고 영상 통화 할 때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막냇동생이 그런 말을 했었다.
"언니, 내가 엄마옷 사드렸는데 안 입는다고 갖다 버리라고 하고 나한테 짜증만 낸다. 우리 엄마 왜 그러시는지 몰라. 엄마짜증 받아주다 내가 위경련 온다"
예전부터 엄마는 당신 선물이든 표현이든 현금이 좋지, 자식들이 뭐든 물건으로 골라서 사다 주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이건 입으라고 사 온 거냐, 색깔이 이게 뭐냐, 이걸 어떻게 신고 다니라고 사 왔냐, 내가 80대 할머니냐, 다시는 사 오지 마라!
등등. 지금껏 그래왔기에 둘째 동생과 난 물건을 사서 선물로 드려야 할 때는 백화점을 모시고 가서 직접 고르시게 했고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현금을 드렸었다. 막냇동생은 지금도 가끔 이것저것 인터넷으로 막 골라서 엄마한테 부쳐준다.
매번 좋은 소리 못 듣고 이런 거 사지 마라 나 안 입는다라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으면서도
'그냥 입던지 버리던지 엄마가 알아서 해' 라던지 '진짜 안 입을 거면 반품할 테니까 그대로 빼둬 엄마.'
라던지 그런 번거로움을 본인뿐만 아니라 엄마에게까지 스트레스를 줘가며 해오던 터였다.
한 번은 막냇동생이 신발을 3-4개 주문해 줘서 엄마가 받은 적이 있었다.
"내발은 칼발이라 웬만한 신발도 편하게 신을 수가 없는데 이런 걸 어디서 골라서 보냈는지 무겁고 발 아프고 색깔은 또 이상하고 이런 거 좀 보내지 말라고 네 동생한테 얘기 좀 해라" 며 하소연을 하신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해오던 막냇동생의 행동이 이번 여행에서
엄마의 기분을 망치게 한 것이다.
동생은 아마도 별 뜻 없이 평소 하던 것처럼
이것저것 골라서 엄마 앞에 내밀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엄마 민여사님은 눈도 높으시지만
그동안의 막내행동으로 보아 당신한테 돈 쓰기 싫고 아까워서 젤 싼 거적데기를 사 왔지 싶어 내 자식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시니 과거에 잊고 있었던 일까지 엄마의 밑바닥 감정우물에서 올라와 거친 소용돌이를 일으켜 센 물보라가 친 것이다.
"엄마, 그래서 기분이 많이 상하셨구나."
"그것뿐인 줄 아냐, 아침마다 일어나면 나가기 전에 먹을 아침 해대야지, 먹고 나면 치워야지, 그러다 보면 나갈 시간인데 머리 만지고 화장할 시간이 어디 있냐, 머리를 감을래도 샴푸가 있어, 린스가 있길 해. 하다못해 드라이빗도 없고. 내가 이런 딸을 먹여보겠다고 내 짐을 캐리어에서 다 빼느라 이런 일이 생겼다. 나도 참 미련하지. 왜 그랬을까."
또
"뭐 사러 가면 나 혼자 앉아서 기다리라 하고 둘이서 한참 있다 오고 뭐 간식거리를 사도 딱 한 개 가져와서 같이 먹을 수도 없고 스위스 초콜릿이 그렇게 맛있다면서 엄마 갈 때 챙겨가라고 어느 누가 사주길 하나. 내가 파리 도착하자마자 여행비용 많이 쓴 거 아니까 미안해서 현금 백만 원을 줬다. 그러고 나니까 어딜 가도 쓸 돈이 없는 거라. 카드도 안 가져갔지, 그러니까 뭘 하고, 사야 하는데 돈이 있어야지. 그런데도 신경을 안 쓰더라고."
그러다가 엄마의 묻어두었던
막냇동생 대학교 시절얘기까지 꺼내신다.
"내가 네 동생 등록금을 해주기로 했었는데
그 어렵게 모은 돈을
네 오빠가 사고를 쳐서 갚느라 그걸 못해줬다"
내가 미안하고 못해준 건
그것밖에 없다. 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