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속우물-5
엄마는 겨울나기 준비 중.
계절이 가을로 들어서고 날이 꽤 추워졌다.
엄마가 계신 시골집에도 월동준비를 하시려나 보다.
거실과 방에 있는 창이 큰 시골집이다 보니 웃풍이 심하다. 보일러 온도를 높게 올려도 온돌바닥은 끓어오를지언정 코끝은 시리고 입에선 하얀 입김이 새어 나온다. 한 겨울엔 집안 공기가 차디차기 때문에 방한용품은 필수이다. 겨울 내내
실내에서조차 얇은 스웨터 정도는 꼭 입어주어야 하고 창에는 뽁뽁이를 몇 겹 덧데어 부쳐야 한다. 방풍지도 틈새마다 메워야 그나마 위풍 때문에 느껴야 하는 스산함을 달랠 수 있다.
이렇게 나의 눈엔 하자가 많고 오래된 시골집일 뿐인데 엄마에겐 반대로 강한 애착이 묻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옛날 내가 꼬꼬마 때 지금 집으로 이사를 했다.
막냇동생이 갓 태어났을 무렵이었으니 벌써 집의
나이도 사람으로 치면 불혹이 넘었다. 이사하고 대략 일 년 후에 어마어마한 홍수가 마을을 덮쳤다.
온 동네 집들이 물에 잠기고 집기류는 다 떠내려 가는 와중에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 최악이었던 건 도랑 바로 옆 지대가 낮은 곳에 터를 잡은 집이었으니 남아 있는 게 없었다. 한 순간 모든 걸 잃었음에도 엄마는 전혀 동요 없이 다시 집을 치우고 집기류를 씻어내고 제자리에 하나 둘 돌려놓으면서 안정감을 찾아갔다.
시골집이 불혹이라는 시간을 지나는 동안 우리 가족들도 나이가 들어갔다.
1살 애기였던 막내도 다 큰 성인이 되어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고 30대 젊은 여성이었던
엄마는 어느덧 80을 바라보는 할머니로 변해있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애착 때문이었 을까, 엄마는 단 한 번도 이곳을 떠나리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지만 앞으로 엄마에게 남은 시간도
시작했던 이 집에서 마무리하고 싶어 하신다.
시골집에 홀로 계신 엄마가 늘 걱정스러워 매일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며칠 전 매일처럼 영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에 보인 엄마가 평소와 다르게 소파에 누워서 전화를 받으신다.
주무실 때 빼고는 좀처럼 눕지 않는 분이신데 무슨 일 때문인지 걱정스러워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어디 아프셔? 주무실 때 빼고는 안 누우시는 분이 왜 누워계셔~"
"내가 오늘 마을회관일을 끝내고 보니 점심때가 되었어. 밥맛은 없고 고구마를 삶은 게 있어서 조금 먹었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어지러워서 쓰러질 뻔했다. 속이 안 좋아서 토하고 약 먹고, 아이고 내가 죽다가 살아났다."
"큰일 날뻔했네. 지금은 좀 괜찮으셔? 점심에 입맛이 없는데 고구마를 드시면 어떻게 해. 그냥 먹어도 목이 메는 건데."
"조금 먹었는데 이렇게 탈이 날줄 몰랐지. 겨울에 손주손녀들 오면 때마다 너무 춥다고 하니까 한 겨울 오기 전에 오래된 창이고 뭐고 우리 집일 많이 해주는 아재들한테 부탁해서 손보고 있는 중이다~"
"집을 수리 중이라고? 하여튼 우리 엄마, 해야겠다 마음먹은 건 당장 해야지 성에 차니 누가 말려. 우리한테는 한 말씀도 안 하시더니 집 여기저기 손보는 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셔서 소화도 안되고 그랬나 보네"
"그기 아니라~내가 참... 이런 말을 해야 되나 싶다.
막내딸 때문에 화병 나서 이제 좀 사그라질만하다 했더니 둘째 딸이 또 화병을 돋운다. 어쩜 딸들이 다 그렇게 보는 눈이 없는지 그거도 참 신기하다"
"둘째가? 이번엔 무슨 일로..."
엄마의 마음속 우물에 이번엔 둘째가
파동이 일게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