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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데이트

대한민국 출신의 마리-킴과 자포니즘 전시

토요일 오전 7시경 침대에서 일어난 프랑수아의 머릿속은 분주하다. ‘오늘 뭐 입고 나가지? 마리-킴이 내가 알아 놓은 레스토랑을 좋아할까?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눈을 뜨자마자 집 앞 카페로 내려가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테라스에 앉아 마시면서 프랑수아는 머릿속을 천천히 정리해 가기 시작한다. 식당은 그랑팔레 옆의 일식집 코코하나(Koko Hana)[1]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자포니즘 전시를 보고 나서 일식을 먹으면 왠지 시각과 미각을 다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지난번 만남에서 마리-킴, 프랑수아 개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모리스 드니에 대해 주구장창 이야기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관심사를 물어봤는데, 도리어 자신의 관심사만 쏟아낸 것 같다. 오늘 만나면 마리-킴에 대한 것들을 더 물어보기로 다짐한다. 남자친구는 있는지, 지금 혼자 사는지, 룸메이트는 있는지.  


토요일 오전 7시 30분, 마리-킴은 알람시계 소리를 듣고 눈을 뜬다. 주말에 알람이라니, 스스로 너무 한 것이 아닌가 가끔 생각하지만 그래도 일정한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싶어서 주말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는 편을 선호한다. 비몽사몽 눈을 뜨고 바로 화장실로 직행하여 찬물에 얼굴을 씻는다. 주말에는 언제나 늘 더 자고 싶기 때문에 일부러 찬물로 세수한다. 수도에서 나온 찬물을 얼굴에 끼얹자 정신이 번쩍 든다. 빛바랜 은색 수전에서 나온 물이 슬러시 얼음처럼 차갑다.


마리-킴은 곱슬기 있는 머리를 하나로 묶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거울에 비친 안경을 벗은 모습은 어딘가 어색하다. 창백해 보이는 인상에 그나마 주근깨가 옅게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두 눈동자는 오늘도 칠흑같이 어두운 블랙이다. 깊어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검은색이다. ‘나는 누구를 닮은 걸까?’ 거울 속에 있는 자신과 대화해보려고 한다.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는 바로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다. 안경을 쓰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해야 할까?


어린 시절, 마리-킴의 프랑스 부모님은 마리-킴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말해주었다.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만 마리-킴과는 너무 다른 모습을 가진 부모님이었기에 마리-킴은 어릴 때부터 ‘내 엄마는 따로 있나?’라는 생각을 해왔고 어느 날 유치원을 다녀온 날 프랑스 어머니에게 대뜸 물어봤다.


“엄마, 나는 엄마 말고 다른 엄마가 또 있어?”


어머니는 마리-킴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마리-킴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어린 마리-킴의 표정 변화를 읽으려는 듯했다.


“마리-킴의 엄마는 바로 나지, 그렇지만 낳아준 엄마는 따로 있어. 나도 지금 그분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


호기심에 가득 찬 마리-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을 한다.


“그럼 엄마, 나는 어디에서 태어났어? 낳아준 엄마가 따로 있으면 거기서 태어났어?”


엄마는 마치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응, 마리-킴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수도이지. 서울은 프랑스의 파리처럼 그 나라의 중심도시야. 여기서 비행기를 타면 10시간[2] 정도 걸리는 곳이지. 마리의 이름이 왜 마리가 아니고 마리-킴인지 알아?”라고 대답한다.


“아니, 몰라”


“마리는 태어났을 때 원래 ‘김(Kim)’이 성이었어. 엄마 아빠와 가족이 되면서 ‘오베르(Aubert)’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지. 엄마랑 아빠는 마리가 저 멀리 대한민국에서 온 소중한 보물이니까 마리의 원래 성을 잊지 말자고 ‘마리-킴’으로 이름을 지어줬어. 지금처럼 마리가 언젠가는 궁금해할 것 같았거든. 킴이 붙으니까 더 특별하잖아. 마리라는 이름은 너무 흔하기도 하고.”


“응, 그래”


어린 마리-킴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어머니를 쳐다보자 그녀는 마리-킴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손을 벌린다. 마리-킴은 어머니의 포근한 품 안에 안긴다. 울고 싶었는데 막상 이야기를 들으니 울음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마리-킴의 얼굴을 만지며 이어서 말한다. “마리-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나 엄마에게 물어봐. 아빠에게 물어봐도 되고. 우리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어. 너의 사진을 받은 그날부터.”


마리-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어, 엄마.”


그러나 그날 이후로 마리-킴은 어머니에게 자신에 대해 묻질 않았다. 스스로 알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스스로 알아갈 수 있는지 방법을 한동안 찾지 못했다. 그러던 2011년의 어느 날 거실에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TV를 보고 있었는데 뉴스 한 편을 듣게 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프랑스 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외규장각의궤』를 대여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외규장각의궤』에 대해 꾸준히 반환요청을 해왔고 프랑스 정부는 5년마다 대여기간을 갱신한다는 조건으로 영구 대여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마리-킴의 귀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쏙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청취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인 마리-킴이 뉴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자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마리-킴에게 말을 걸었다.


“마리-킴, 대한민국에 대해 알고 싶어?”


한참을 뜸을 들인 뒤 마리-킴이 대답했다.


“응, 그리고 『외규장각의궤』 저건 뭘까? 저것도 궁금해. 도대체 왜 달라는 걸까?”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마리-킴이 한번 조사해 보면 되겠네? 그러면 저 책이 어떻게 프랑스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거나 도서관에 가서 동아시아 역사책을 빌려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마리-킴은 책과 인터넷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다. 『외규장각의궤』는 한자로 작성되어 있는 책이기에 한자라는 것을 배워야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국어와 한자가 전혀 다른 것도 프랑스에서 줄곧 자란 마리-킴의 시선에는 신기했다. ‘비슷하지만 다른 라틴어와 불어의 관계와 비슷한 건가?’ 그렇게 마리-킴은 텍스트를 통해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루브르 학교에 와서 동아시아 문화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무엇도 선명해지지 않았다. 창문의 커튼이 아주 조금씩 젖혀지는 것처럼, 슬며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뿐이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 그랑팔레 매표소 앞 오후 4시 프랑수아가 먼저 도착했다. 급하게 온 건지 그의 가느다랗고 옅은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려 헝클어져 있다.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니 마리-킴은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이윽고 매표소로 발걸음을 옮겨 그랑팔레에서 진행 중인 자포니즘 전시 티켓을 두 장을 끊었다. 때마침 도착한 마리-킴이 프랑수아의 어깨를 톡톡 친다.


“프랑수아, 먼저 왔네요. 오래 기다렸나요?”


“아니에요, 지금 막 왔어요. 전시 티켓은 지금 끊었어요. 이제 들어갈까요?”


둘은 그랑팔레의 메인 전시홀에서 자포니즘 전시를 관람하기 시작한다. 전시에는 다양한 판화와 오브제가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풍을 의미하는 자포니즘은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평면적인 구성의 일본 목판화로 대변되는 자포니즘은 서양 미술에서 불변의 법칙처럼 여겨져 왔던 원근법으로부터 벗어나는 탈출구로 작용했다. 자포니즘의 평면성은 당시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많은 예술가들에게 무한으로 확장하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전시장에는 자포니즘에 영향을 받은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미술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19세기 후반 인상주의를 연구하는 프랑수아의 눈에 자포니즘은 여전히 이국적이다. 절벽 같은 평면성 때문일까, 여백의 미 때문일까? 바탕색을 칠하지 않아 비워진 공간인 여백은 프랑수아에겐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흰색도 채도와 명도에 따라 다양한 컬러감을 가지는데, 왜 굳이 색을 칠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든다.




호쿠사이,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1831년 경, 스미타 호쿠사이 미술관



빈센트 반고흐, <탕귀 영감>, 65.0 cm × 51.0 cm, 1887, 캔버스에 유화, 로댕미술관



“마리-킴은 여백을 어떻게 생각해요? 동아시아 미술사를 연구하니까 여백이라는 개념이 익숙해요?”


마리-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2-3초간 프랑수아를 가만히 쳐다본다. 설명을 위한 단어들을 찬찬히 고르는 것일까? 정적이 좀 길다고 느껴질 순간 마리-킴이 대답을 한다.


“음,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전달방식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백은 아주 자연스러운 비움의 상태 같아요. 서양의 배경색과는 다르죠. 동아시아 미술에서는 배경이 비워 있어야 채워진 색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연이어서 차분히 설명을 이어간다. “저도 처음에는 이질적이라고 느꼈어요. 우리는 고등학교에서 배경색을 칠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 유럽에서 발생한 미술을 배우잖아요. 르네상스, 바로크 미술에는 다 배경색이 칠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대학원에 와서 동아시아 고문서를 연구하다 보니, 글씨가 쓰여 있는 부분만 블랙이고 나머지는 빛바랜 누런 종이의 여백이더라고요. 이 조화가 정말 안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 뒤로부터 여백이 주는 안정감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무언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어요.”


프랑수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리-킴의 두 눈을 바라본다. 그녀의 짙은 두 눈동자가 더 아름다워 보인다.


“프랑수아, 제가 예전에 입양아라고 말했던 걸 기억하죠? 유치원 다니던 시절 엄마에게 물어봤어요. 엄마, 아빠랑 외모가 너무 다르니까, ‘나는 어디서 왔을까’가 늘 궁금했거든요. 엄마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말해줬고 2011년에 우연히 TV 뉴스에서 그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외규장각의궤』 영구대여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동아시아 고문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조사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프랑수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의를 기울여 경청한다. 그가 나름대로 준비했던 질문들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느낀다. 마리-킴은 마치 프랑수아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저도 제 스스로 놀랬던 것이, 그 여백이 주는 느낌이 정말 좋더라고요. 뭐라고 해야 할까 나랑 연결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건 저의 착각일 수도 있어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늘 궁금해왔기 때문이요. 저의 흑발 머리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금발에 가까운 엄마의 옅은 갈색머리가 예뻐 보여서 늘 부러웠지만요. 하하.”


프랑수아는 마리-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한다. “마리-킴의 흑발 머리는 오히려 주인공 같아요. 이렇게 깊이 있는 검은색 머리는 잘 없잖아요. 어머니처럼 금발에 가까운 모습으로 염색한 장면은 상상이 잘 안 되는 것 같은데요?”


마리-킴은 웃으면서 말을 이어간다.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마워요. 지금 우리가 보는 자포니즘 전시 말이에요. 일본풍의 미술작품은 넓게 보면 동아시아 미술사 영역에 있지만, 한국 미술사에서 나오는 회화랑은 정말 달라요. 한국의 회화는 더 은은하고 옅은 느낌이 있어요. 좀 더 고요하고 조화로운 느낌이랄까요. 일본의 회화와 목판화는 조금 더 장식적이고요. 처음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연구를 조금씩 하다 보면 작가의 개성이 차별적으로 드러나더라고요. 이게 또 매력이에요. 저에게 이제 자포니즘은 또 하나의 이국적인 문화 영역처럼 느껴져요. 한국의 그것과는 다른 일본만의 문화현상이에요.”




추사 김정희, 세한도, 23x69.2cm, 1844, 지본수묵, 국립중앙박물관




마리-킴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시를 관람하다 보니 꽤 방대한 규모의 전시도 짧게 느껴졌다. 프랑수아는 미리 알아본 일식당 코코하나로 마리-킴을 안내한다. 자포니즘의 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식당은 일본 식재료의 향기가 향긋하게 퍼지면서 은은한 불빛과 사케의 달콤한 향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살구 빛을 연상시키는 한지로 마감된 은은한 조명 아래 둘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까? 프랑수아는 갑자기 중요한 것을 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리-킴에게 연인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1] 파리 8구에 위치한 일식당. 1 Bis Rue Jean Mermoz, 75008 Paris, France.



[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인천국제공항-파리 샤를 드골 공항의 비행시간은 통상적으로 9-10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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