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줄였고
난 여전히 '쉼'을 모르겠다

나의 우울증 이야기, 아홉 번째

by 그냥나

2월 12일, 약을 또 줄였다. 장족의 발전이다. 아침에 먹어야 할 약이 두 알로 줄었고 저녁에는 여전히 다섯 알이지만 총량이 크게 줄어서 내겐 정말 큰 성과, 그 자체다.


약만으로 아침에 배가 불러본 적이 있는가? 한 알조차 삼기기 힘들어서 물을 아주 많이 먹어야만 했던 어린 날과 달리 이제는 다섯 알도 함께 꿀꺽 삼킬 수 있다. 왠지 모르게 이런 내가 씁쓸하다.


설 연휴를 편하게 보냈지만 늘어져 있던 나머지,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오랜만에 만난 불안과 싸웠다. 약을 줄여도 겪지 않았던 불안인데, 갑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분명 현 직장에서 1년은 돈도 모으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만료되어가는 컴퓨터활용능력 1급 필기 기한을 보니 괜히 촉박해졌달까?


또 돈. 돈은 사람을 여러모로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다, 참 고맙다.. 하하. 아무튼 현금 흐름이 좀 원활하지 않은 것 같아서 이것저것 계산하느라 지치기도 했다. 근래 병원비도 갑작스레 나가고 이것저것 지출을 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계획한 현금 흐름과 달라지다 보니 스트레스. 나는 정말 통제형이 맞다. 스스로를 자꾸만 통제하려 하니..


그래서 그런가, 의도적으로 '쉼'을 줘야 하는 걸 아는데 여전히 '쉼'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무작정 누워서 휴식 취하기? 미디어 보면서 시간 보내기? 대체 뭐가 뭔지 혼란스러웠다. 거기다 '쉬어도 될까'하는 생각이 더해져 우울과 조급한 마음이 크게 휘몰아쳤다.


'쉼', 다들 어떻게 쉬고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건강하게 회복할까? 늘어지는 내 자신이 싫다가도 마냥 누워있고 싶어지고, 또 마냥 누워있다가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아마 약이 다 끝나고 다시 병원을 찾는 날, 선생님한테 혼날 것 같다. 제발 좀 쉬라고.


* * *


한편으로는 호르몬제의 영향인가 싶기도 하다. 자궁내막암 치료를 위한 파루탈 복용이 끝난 지 어느덧 4개월이 되어 간다. 그런데 정상적인 생리를 하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정말 정말 다행인 건 내벽이 두꺼워지지도 않았고, 이전보다 나빠진 것도 없었다는 것. 다만 생리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병이라.. 호르몬제 복용을 다시 시작했다.


4세대 경구피임약인 플랜에이를 먹게 됐는데, 초기 부작용이 불안과 우울감 등을 불러온다고 한다. 건강해지려고 먹는 건데 건강이 해쳐지는 이 기분.. 정신질환과 신체질환이 함께 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마음이라도 어서 건강해져야지, 라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불안의 원인은 과거에 대한 후회,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과한 걱정에서 온다고. 나는 지금 내 현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 집중하자. 지금 내가 해야 할 것들에. 나아가서 '쉼'도 차차 알아가보자. 모든 시간이 생산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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