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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홍 Jul 10. 2024

챕터 3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

호주에서의 공식적인 첫날.

유심을 구매하기 위해 백팩커스를 나섰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짐이 한가득인 유모차 승객을 보면서

도와드려야 하나? 오지랖 넓은 생각을 하는 도중 버스가 도착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앞 문으로 지면에 연결되는 경사로 램프가 내려왔고

맨 앞의 유모차 승객이 완전히 타고난 이후에야 모든 승객이 차례로 탑승했다.


뭐지, 이 분위기?


다시 출발하기까지 3분 남짓 걸렸는데

그 누구도 조급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체되는 게 무척 당연하고 익숙한 분위기. 낯설다.

그 찰나 동안 미어캣 마냥 머리 내밀고 동동 거리던 내가 민망해졌다.

생각해 보니 유모차 승객이 먼저 타야 하니까 다들 그 뒤로 줄을 선 거였군. 와우.


민망함을 뒤로하고 버스 구석에 앉아 가는데

거의 모든 승객들이 하차할 때 기사님께 Thank you!라고 외치며 인사를 한다.


뭐지, 이건 또?

한국에서는 빨리 카드 찍고 내리기 바쁜데..


나부터도 한국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마인드~ 외칠 때는 언제고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중간에 혼자 미리 일어나 있었는데 정차 전에는 카드도 안 찍혀서 머쓱^^;


한국인을 괴롭히는 법 중 하나가

버스에서 내릴 때 미리 일어서지 못하게 하기라는데

미리 카드 찍고 문 앞에 서있다가 착착 내려주는 게 암묵적인 매너로 통하는지라 정말 맞는 말이다 싶었다.


빨리빨리의 효율성에 비해서 이런 점들이 일상생활의 속도를 느리게 할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여유로운 이 분위기가 타인을 조금 더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 이어지는 것 같다.

호주에 온 지 두 달이 된 지금도 이 여유를 누리고 경험하는 순간마다 항상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놀라운 건 이뿐만이 아니다.


길거리는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휠체어를 사용자를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 동물원이나 관광버스조차도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다 갖추고 있다.


기본적인 이동을 위한 대중교통은 물론이고 관광 시설조차도 일반 보행자와 휠체어 사용자에 차별을 두지 않는 거다.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휠체어 탄 승객을 마주칠 일이 드문데 왜일까?

작년에 깁스를 했을 때 내가 그동안 이용하던 대중교통이 누구나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음을

몸소 체험한 이후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차별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2주 간의 짧은 경험만으로도 불편했는데 그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올해 4월 기사로 ‘서울시 내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어쩌고 기사를 봤는데 아직 이런 부분이 선진국과 십여 년은 차이 나는구나 싶었다.


효율성을 따지면서 그 과정에서 밀려날 수 있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았구나.

그 몇 분을 서둘러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낀다고.

(나한테 하는 소리다. 아껴서 내 인생이 좀 나아졌던가?)


우리는 진정으로 서로 배려하기를 원하고 그걸 기꺼이 수용할 인내심이 있는 걸까?


매일매일 내가 여기서 경험하고 누리는 여유를

한국에 돌아가서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늦게 출발하는 것이 특별히 의식할 일이 아니게 되길.

배려가 필요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그 여유가 우리에게도 당연한 일상이 되길.


더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위한 너른 품을 가진

너그러운 사회가 되길.


어느 날 찍어둔 노약자석 문구 사진. 당신보다 자리를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리를 양보하세요. 학생 요금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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