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의 공식적인 첫날.
유심을 구매하기 위해 백팩커스를 나섰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짐이 한가득인 유모차 승객을 보면서
도와드려야 하나? 오지랖 넓은 생각을 하는 도중 버스가 도착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앞 문으로 지면에 연결되는 경사로 램프가 내려왔고
맨 앞의 유모차 승객이 완전히 타고난 이후에야 모든 승객이 차례로 탑승했다.
뭐지, 이 분위기?
다시 출발하기까지 3분 남짓 걸렸는데
그 누구도 조급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체되는 게 무척 당연하고 익숙한 분위기. 낯설다.
그 찰나 동안 미어캣 마냥 머리 내밀고 동동 거리던 내가 민망해졌다.
생각해 보니 유모차 승객이 먼저 타야 하니까 다들 그 뒤로 줄을 선 거였군. 와우.
민망함을 뒤로하고 버스 구석에 앉아 가는데
거의 모든 승객들이 하차할 때 기사님께 Thank you!라고 외치며 인사를 한다.
뭐지, 이건 또?
한국에서는 빨리 카드 찍고 내리기 바쁜데..
나부터도 한국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마인드~ 외칠 때는 언제고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중간에 혼자 미리 일어나 있었는데 정차 전에는 카드도 안 찍혀서 머쓱^^;
한국인을 괴롭히는 법 중 하나가
버스에서 내릴 때 미리 일어서지 못하게 하기라는데
미리 카드 찍고 문 앞에 서있다가 착착 내려주는 게 암묵적인 매너로 통하는지라 정말 맞는 말이다 싶었다.
빨리빨리의 효율성에 비해서 이런 점들이 일상생활의 속도를 느리게 할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여유로운 이 분위기가 타인을 조금 더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 이어지는 것 같다.
호주에 온 지 두 달이 된 지금도 이 여유를 누리고 경험하는 순간마다 항상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놀라운 건 이뿐만이 아니다.
길거리는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휠체어를 사용자를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 동물원이나 관광버스조차도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다 갖추고 있다.
기본적인 이동을 위한 대중교통은 물론이고 관광 시설조차도 일반 보행자와 휠체어 사용자에 차별을 두지 않는 거다.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휠체어 탄 승객을 마주칠 일이 드문데 왜일까?
작년에 깁스를 했을 때 내가 그동안 이용하던 대중교통이 누구나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음을
몸소 체험한 이후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차별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2주 간의 짧은 경험만으로도 불편했는데 그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올해 4월 기사로 ‘서울시 내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어쩌고 기사를 봤는데 아직 이런 부분이 선진국과 십여 년은 차이 나는구나 싶었다.
효율성을 따지면서 그 과정에서 밀려날 수 있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았구나.
그 몇 분을 서둘러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낀다고.
(나한테 하는 소리다. 아껴서 내 인생이 좀 나아졌던가?)
우리는 진정으로 서로 배려하기를 원하고 그걸 기꺼이 수용할 인내심이 있는 걸까?
매일매일 내가 여기서 경험하고 누리는 여유를
한국에 돌아가서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늦게 출발하는 것이 특별히 의식할 일이 아니게 되길.
배려가 필요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그 여유가 우리에게도 당연한 일상이 되길.
더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위한 너른 품을 가진
너그러운 사회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