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남 오징어 탈출 공략집 8 : 배째라 데이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생각하기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이다.
사람들이 그렇게나 열광하는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처럼,
그냥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하겠다.'랄까.
나는 이 행복 탈환 몸부림기를 시작하면서, 한동안 꾸준히 운동을 하고 정결한 식사를 하고 어떻게든 꾸역꾸역 최대한 숙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퇴근 후 얼마 안 되는 남은 시간 속에서도 일과를 허겁지겁 마치고 일찍 잠을 청했다.
확실히 컨디션은 좋아졌다. 체력도 좋아졌다.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했던 40 중반이 된 후 찾아온, 어쩌다 느닷없이 훅 찾아와 아주 사람을 짓눌러 밝고 가는 그 최악의 드러운 우울 빌런도 이제 뜸해진 듯하다.
음.. 좋은데?
라고 이 단조로운 패턴과 일상을 보내기를 몇 달.
좋긴 좋은데 이렇게 매일매일을 숙제를 마치는 기분으로 살다 보니 울적함이 들어올 틈은 없지만 어느새 마음 한켠에 사리 같은 갑갑함의 갈증이 생김을 느꼈다.
아직 나는 수련이 덜 되었나 보다.
석가모니와 쇼펜하우어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상태라는데, (아, 참고로 쇼펜하우어는 불교 교리의 팬이었다. 어쩐지 뭔가 하는 말이 비슷한 구석이 많더라..)
솔직히 꼭 그런건 아닌 거 같네 인간적으루. ㅋ
본능적으로 이 갑갑함을 풀어주어야 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소집해서 부어라 마셔라로 달리자니, 나는 그 불나방 같은 숙취의 말로를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 그건 이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된 후에 잔잔히 가지기로 하고,
뭔가 좀 더 우아한 방법으로 이 사리를 해소해 보기로 한다.
일단 오늘은 그냥 내 맘대로 뇌를 거치지 않고 오늘만 사는 것처럼 살아본다.
운동 루틴도 안 하고, 식사도 먹고 싶은 때에 먹고 싶은 것 아무거나 배달점에서 시켜본다. 칼로리와 지방의 제왕라고 불리는 마라탕을 시켰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지, 다음 주 미팅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더 훌륭히 자랄 수 있을지, 가족에게 행여 부족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더 나은 내가 되려면 무얼 생각하고 정진해야 할지, 더 의미 있게 알차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 오늘은 그런거 난 모르겠고.
그냥 맥주나 한 캔 사서 오징어 뜯으면서 보고 싶은 유튜브나 봐야겠다.
새로 생긴 괜찮은 카페에 가서 뭘 꼭 정보를 캐내려기 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은 뭐 하고 사나 기웃기웃 유유자적하게 웹서핑이나 해봐야겠다.
멜론 모음이나 들으면서 강변 따라 설렁설렁 자전거나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
가끔은 어떤 목적의식 없이 무의미한 것들을 음미하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아니 하긴 왜 의미가 없어. 이런 것들이야말로 다 행복이지. ㅎㅎㅎ
조금은 가벼운 깃털 같은 시간 속에서 그냥 뻔뻔하게 하고 싶은 것들을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
이것도 놓쳐서는 안 될 중간중간 챙겨줘야 할 엄연한 행복의 필수 요소가 아닐까 싶다.
...오늘은 깃털처럼 글도 살짝 설렁설렁 썼습니다. m(_ 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