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오래전 외국계 회사에서 매니저로 근무했다. 전 세계에 사업장이 있던 글로벌 기업이라 전화회의가 수시로 열렸다. 여러 나라의 엔지니어링 센터에서 참석하지만 주로 북미와 유럽 시간에 맞추다 보면 우리는 항상 늦은 밤이었다. 회의를 진행하고 결과를 정리해 메일로 공유하는 게 내 몫이었다. 영어로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억양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제일 불편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요즘 같은 화상회의가 없던 시절이라 목소리만으로 상대의 감정을 읽을 수 없다는 것과, 나라별 문화 차이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무엇보다, 글로벌 협업 과정에서 동일한 프로세스를 따르지만 서로가 익숙하고 불편한 지점이 크게 달랐다. 궁금했다. 도대체 사람들의 사고의 기원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과 문화는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까? 우리는 어떻게 서로 다른 사고의 체계를 갖게 되었을까? 그래서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틀림이 아닌 다름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의 기원을 찾아 출발한 나의 탐구생활은 교보문고를 오가며 수많은 책을 만나게 되었고, 오늘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소개한다.
동양과 서양, 두 문명의 이해를 돕는 리처드 니스벳 교수의 <생각의 지도>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 동양과 서양. 두 문명이 가진 다름의 기원은 언제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두 문명을 이해하는 것은 나를 이루는 의식의 구조와 뿌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다. 저자의 연구실에는 동서양의 대학원생들이 함께 공부하는데, 이들을 통해 서로 다름을 매일 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다름의 원형을 찾기 위해 동서양의 많은 대학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를 한 권의 책 <생각의 지도>으로 엮어냈다.
다름의 기원을 바라보는 저자의 분석이 흥미롭다. 동양 문명의 뿌리는 중국의 공자로부터, 서양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정신치료 전문가 이동식 박사도 <도정신치료 입문>에서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소크라테스까지는 동서양의 차이가 없었지만 플라톤부터 뭐든 분류하려 들고 개념화하려는 버릇이 지금의 서양 문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서양은 명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동양은 동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동양은 전체와 일부를 항상 연관 지어 사고하는 관계 중심이기 때문에 사건들 간의 관련성을 잘 파악하는 반면, 서양은 개별 사물을 분리하여 생각하므로 항상 공통적인 부분을 구분하고 범주화하여 일반화된 규칙을 찾아내려는 습성이 있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서양은 형식논리를 통해 참과 거짓에 일관성이 있는 반면, 동양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주장들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유연성을 갖는다.
동양과 서양은 이처럼 사회문화적 특성과 오랜 기간 노출된 양육환경으로 인해 사고의 체계와 세계를 인식하는 체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언어에 의한 영향도 크다. 저자가 제시하는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동양과 서양, 두 문명에 다름이 있을 뿐 우열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과거 우리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때 미국 유학이 출세를 보장하고, 유럽 여행이 재력을 보증하던 시절이 있었다. 서양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추앙은 동양에 대한 열등감으로까지 비하되곤 했다.
지금은 어떤가? 문화, 예술, 기술 등 많은 분야에서도 K-콘텐츠가 곧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그리고 해외 유학생들도 한국으로 돌아오면 국내 인재들과 똑같이 경쟁해야 한다. 더 이상 해외 프리미엄은 없다. 우리는 지금 경제 대국이면서 역동적인 문화를 가진 선진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에서도 우리의 전통을 버리고 서양을 추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지도처럼 동양과 서양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옛말에 ‘아우 탄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예부터 어린 자녀를 돌볼 때 사용했던 말이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큰애가 퇴행적 행동이나 정서적 불안정을 보이면 ‘아우 탄다’라며 부모에게 큰애를 더 챙기라며 일러주셨던 것이다.
심리학이나 교육학이 없던 까마득한 옛날에도 우리 선조들은 어린 자녀들에 대한 정서적 이해를 경험적으로 체득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아이들의 정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부모들이 챙기던 아우타기를 서양은 그제야 몇몇 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책을 읽다 보면 서양의 석학들은 동양문화에서 차이점이 아닌 배울 점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오로지 진보와 능률만을 소중히 여기는 서양문화의 병폐를 동양의 전통문화를 통해서만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평화로운 삶과 인생의 기쁨을 소중히 여기는 동양의 전통문화가 인본주의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서양의 석학들이 옳다고 믿는다. 지금 전 세계의 주류가 되고 있는 ‘K-컬처’가 그 증거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 어느 것 하나 나와 같을 수 없으니, 그 다름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곧 세상살이 지혜라는 것도 알게 된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들;
-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2016년(김영사)
- ‘생각의 기원’, 마이클 토마셀로, 2017년(이데아)
- ‘인간의 내밀한 역사’, 시어도어 젤딘, 2020년(어크로스)
- ‘러셀, 북경에 가다’, 버트런드 러셀, 2009년(천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