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위한 인간 영혼의 순례길
살면서 큰 풍랑에 휩쓸려 자신을 추스르는 것조차 버거운 시련은 한 사람의 가치를 일깨운다. 감당할 수 없는 시련 앞에 범인은 쓰러져 세상을 원망하지만, 위인은 툭 털고 일어나 현실을 버텨낸다. 이렇듯 한 사람의 위대함은 시련의 극복 보다 현실을 수용하고 감당하는 데 있다.
동양에 사마천이 있다면, 서양에는 단테 알리기에리가 있다. 사마천은 궁형의 치욕을 견디며 이천 년 넘게 동양의 위대한 고전으로 불리는 <사기史記>를 저술했다. 단테는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죽을 때까지 돌아가지 못하는 방랑 속에서 서양 정신사의 거대한 지도라 불리는 <신곡 Divina Commedia>를 저술했다.
단테의 <신곡>, 참 어려운 작품이다. 단테가 유배지에서 방랑하면서 자그마치 14년여에 걸쳐 저술한 대작을 소설 읽듯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세 유럽의 문화, 종교, 학문 등에 대한 다소 심층적인 배경지식이 필요한 이유다. 작품에 등장하는 수백 명의 인물들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단테가 왜 그러한 인물들을 지옥, 연옥, 천국에 소환했는지 그 마음을 읽기 힘들다. 그래서 이질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져 통찰은커녕 끝까지 읽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신곡>은 인간의 도덕성과 신앙을 탐구한 작품으로 이탈리아 원문은 세편의 장대한 시에 가깝다. 9개의 원으로 구성된 '지옥', 7개의 고리로 구성된 '연옥', 9개의 하늘로 구성된 '천국'으로의 여정이다. 모두 인간이 삶에서 겪는 고난과 성장의 과정을 상징하며, 자아성찰과 도덕적 선택의 중요성을 통찰한다. 단테가 정치적 내란으로 유배지를 떠돌다 생을 마감하는 14년 동안의 심경변화와 자아성찰이 세편에 녹아있다.
지옥 Inferno. 단테가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유배 생활을 시작하면서 느꼈을 감정은 정적들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단테는 살면서 만났던 부도덕하고 타락한 권력자들을 소환해 '지옥' 편에서 인과응보라는 정의를 실현한다. 현실에서 처단되지 않을 타락한 권력을 문학을 통해 응징한 것이다.
연옥 Purgatorio. 단테는 유배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피렌체로 복귀하려는 시도를 몇 차례 했겠지만 번번이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복귀에 대한 희망을 품고 깊은 자아성찰과 더불어 철학적 고민에 몰두했을 것이다. 그 결과, 현실과 가장 닮아 있고, 지옥과 천국의 중간인 연옥을 생각해 내었을 것이다. 지옥과 달리 희망을 갖고 속죄하면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 이곳에서 그는 7가지 대죄를 지은 자들의 속죄를 통해 중요한 철학적 교훈을 전한다.
천국 Paradiso. 단테는 추방되고 10여 년이 흐르면서 자신의 정치적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정적에 대한 복수심과 복귀에 대한 헛된 희망보다는 내면의 평화에 천착했을 것이다. 중세 기독교 세계관에 집중하면서 인간 이상과 신에 대한 믿음이 조화를 이루는 초월적 평온함을 추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결과 단테의 영원한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만나 신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여태껏 <신곡>을 정독한 것은 네 번 정도다. 삶의 중심에 놓여 있는 질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었다. 중요한 두 가지를 덧붙이면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해설서를 읽고 배경 지식을 쌓으면 작품을 보다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인생에게 배신을 당해 아픔을 겪든 약간의 쓰라림의 서사가 필요한다. 그만큼 수고를 들여 읽더라도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도 삶의 나침반과 같은 작품이다.
단테가 들려주는 삶의 여정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인간의 보편적 질문에 대한 가장 근원적 대답이다. 태어나 살면서 죄를 짓고(지옥), 성찰하고(연옥), 사랑과 지혜를 통해 신에 귀의하는(천국) 과정의 서사는 7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비춰봐도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신곡>을 읽고 나면 인간이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자아성찰과 영적 성숙의 과정이 있다면 다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우리 인생의 중반, 나는 한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너무나 유명한 첫 문장이다. 그리고 “사랑이 태양처럼 움직이는 곳으로, 나는 들어가고 있었다.”, 단테가 남긴 마지막 문장이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삶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함께 읽을 책;
- "신곡:지옥,연옥,천국", 단테 알리기리에,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 "신곡에 관하여", 프루 쇼, 오숙은 옮김, 저녁의 책 (절판되어 '단테 신곡 읽기'로 재 출판)
- "단테 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이영미 옮김, 안티쿠스 (절판되어 '교유서가'에서 재 출판)
- "The Dore Illustrations for Dante's Divine Comedy", Gustave Dore(아마존에서 구매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