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소녀가 사랑한 것들 05 | 몽연
마음을 비우는 것
이게 아무래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아닐까? 마음을 비우는 일.
사실 힘든 일이 있을 때 이를 대처하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다. 예전에 나였다면 아마 회피하고 무시하고 꾹 참고 지나갔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 혼자 버티는 것을 선택했을 것 같다. 모든 감정을 스스로 떠안고 가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감정은 나누기도 하고 주고받기도 하고 공유할 줄도 알아야 한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통해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주변에 같이 기뻐할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자퇴를 하고 집에서 혼자 지내면서 곁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기뻐도 슬퍼도 혼자 있으면 그 감정을 온전히 만끽하기가 힘들어서 쉽게 우울감에 빠지곤 한다. 내가 힘든 순간에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그 슬픔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기쁨을 얻을 수도 있다. 우울을 점점 덜어내고 기쁨을 점점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마음을 비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나는 나중에서야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참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꾹 참는 게 아니라 졸졸 흘려보내는 것. 이게 비우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자퇴를 하고 혼자가 된 나는 도움을 받을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당시 병원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고 제일 위태롭다고 느낀 시기였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는 것은 나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시기에 나는 음악의 도움을 받았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틀어 내 몸이 멜로디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 심장이 둥둥 박자에 맞춰 뛸 때까지 눈을 감고 가만히 음표를 따라가면 어느새 깨끗해진 내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비운 자리에 음악이 들어찬 마음은 그렇게 따뜻하고 영롱할 수가 없다. 아마 여태껏 느끼던 감정과는 다른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음악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비운 자리를 다시 채우는 것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노추
(오늘의 노래 추천)
음악을 얘기하는 글인 만큼 내가 사랑하는 음악들을 꺼내보고자 한다.
바로 "오늘의 노래를 추천"해드립니다.
tell me how not to get hurted or broken
상처받거나 부숴지지 않는 방법을 알려줘
even If you can't afford loving me anymore
네가 날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돼도 말이야
0310 - 백예린(Yerin Beak)
가사가 전부 영어로 된 이 노래는 밤에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듣기 좋은 노래. 내가 학원에서 나오면서 오늘 하루도 잘 버틴 나에게 들려주던 선물이었다. 밤산책을 할 때 꼭 들어보길 바란다.
너는 달을 볼 때 눈이 커졌고
나는 너의 눈에 비친 것을 보네
josee! - 데이먼스 이어(Damons year)
0310과 같이 들으면 정말 좋은 노래. 나는 사실 데이먼스 이어의 음악을 전부 좋아해서 모든 음악을 추천하고 싶지만 이 노래를 추천하는 이유가 있다. 나에게 해주는 말 같은 부드러운 가사가 눈에 띄었다. 또,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주제가로 쓰고 싶을 만큼 가사와 대사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계속 들어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됐다.
난 이런 애 아닌데
너 땜에 집중이 너무 안돼
미안해 멍 좀 때릴게
어질어질(Outta My Head) - 전소미
전소미의 노래는 보통 신나고 통통 튀는 노래라고 생각해 나와 맞지 않아 잘 듣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노래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가사에 사로잡혀 계속 반복재생하는 중이다. 적당히 신나는 잔잔한 노래.
띄워 그 숨을
빌어 승리를
버려 절망을
뛰어가는 사람과 넘어진 그림들을
SLAM DUNK - 달담
50초가량의 전주만 듣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음악. 넘어지고 다시 일어설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음악이다.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들으면 큰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음악의 힘
밋밋한 삶에 배경음악을 깔 수 있다면 어떤 음악을 깔겠는가? 나는 베이스와 드럼이 심장을 때리는 신나고 즐거운 밴드음악을 깔겠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음악을 들으며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말이다.
음악은 아주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김영하 작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미 외계 생명체는 우리가 모르는 형태로 우리 곁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를 들어, 음악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바이러스처럼 스며들어서 발현하는 등 인간에게 깃든 외계 생명체일 수도 있다고. 나는 이 말이 참 기억에 남는다. 음악은 우리에게 뿌리박고 자라나고 다른 이에게 전이되기도 하는 존재처럼 살아가는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강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음악의 힘을 믿는다. 내 음악을 추천하는 이유도 내가 느낀 감정을 선물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음악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듣던 나를, 그 순간을, 그 감정을 모두 담아 선물하는 것. 나는 오늘부터 음악을 추천받으면 고맙다는 말을 진하게 해볼까 한다. 너의 추억과 감정을 선물해 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