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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연 Jul 15. 2024

삶에 대해

조울증 소녀가 사랑한 것들 03 | 몽연

 반복해서 하는 말. 나는 18살이다. 삶이라는 것을 평균적인 기준의 반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내가 어떻게 삶에 대해 논할 수 있겠는가. 그저 어린 내가 그리는, 불안해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에서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은 자퇴를 할 때 고민한 98%를 제외하고 남은 2%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고생길 시작


  나는 안정된 미래를 그려오던 사람이다. 남들과 똑같이 힘든 수험 생활 끝에 대학에 가고 전공을 살리진 못하더라도 작은 회사에 입사해(이것조차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노후를 준비하는 것. 안정적인 급여는 아닐지라도 버티고 또 버티며 안정된 삶을 살 것이라고 다짐하며 지냈다. 그런 나에게 가장 큰 변수가 된 게 자퇴다.


  자퇴를 한 당일. 집에 가서 많이 울었다. 앞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말했듯이 혼자가 된 공허함이 싫었다. 이제 내  좋은 날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외로운 고생길 시작이라고. 하지만 지금 나는 글을 쓰며 지내는 매일이 좋다. 더 나은 삶이 된 느낌.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물론 나의 경우는 아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자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높은 꿈을 위해, 남들과는 다른 삶을 위해 말이다. 그런 이들처럼 하고 싶은 일, 인생을 바꿀 만큼 아주 큰 일을 용기 있게 선택한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은 자퇴를 하기 전 나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문득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선택. 학교를 다닌다는 선택을 내가 한 건가? 그건 아니다. 그냥 남들 따라서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 것. 진짜 내 선택이 무엇인지 정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학교를 계속 다닌다는 선택을 한다면 나는 열심히 다녀야 할 책임이 생기고 자퇴를 한다는 선택을 하면 나는 그 또한 자퇴 후 열심히 살아야 할 책임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책임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나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불안감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늘었고 병가처리로 넘어가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숙려제를 신청하고도 2주라는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으니 빨리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간단하게 금방 선택할 수 있었다. 학교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 이상, 나는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다. 갑자기 생긴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또 다른 삶을 경험해 봐야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선택한 삶에 만족하며 사는 중이다.




청춘 만들기


  결국 나에게도 책임이라는 게 생겼다. 내 삶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 책임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거웠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나는 책임을 넘어서 성공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을 살았다.


  처음엔 청춘이 사라진 것 같았다. 남들이 말하는 초록빛 눈부시고 아름다운 청춘을 나에게서 찾아볼 수가 없다고 느꼈다. 내가 그린 미래는 이게 아닌데 후회하는  날도 있었다. 섣불리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마침표를 찍어버릴 뻔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들과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어두운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청춘은 내가 만들면 되는 거지,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점점 빛바래는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더 빛날 수 있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럼 빛나면 되지.'라는 생각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Just Do It'이라는 문구가 왜 유명해졌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한다는 게 세상에서 두 번째로 어려운 일 같다. (첫 번째로 어려운 일은 나중에 글로 쓸 예정이다.) 그 말은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던 나를 꺼내 준 말이었다.


  이젠 나도 청춘을 안다. 알고 살고 온몸으로 겪고 있다. 단순히 생각 하나만으로도 내 삶이 청춘으로 바뀔 수도 있다니 신기했다.


  나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심지어 청춘을 살고 있던 나도 청춘이 가 버린 것 같아 우울한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 버렸다는 걸 누가 정의하는가? 오로지 나만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인터넷에서 그런 말을 봤다. 나를 괴롭히는 일이 있을 때 '증거 있어?'라는 생각을 하면 보통 증거가 없다고. 청춘도 마찬가지다. 다 지나가 버렸다는 증거? 없다.


  굳이 증거를 만들 생각 말고 청춘을 즐기자. 내가 보낸 청춘 내가 다시 만들어보자.

  나만의 청춘 안에서 사는 일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가면을 벗고


  나는 보통 사람으로부터 무서움을 느낀다. 사람이 무서워서 사는 게 무섭다. 불안감이 매우 심할 때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조차 무서웠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말이다. 그 누구에게도 사람이 무섭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사람 앞에서 사람이 무섭다고 떠드는 꼴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나는 아직까지도 이 불안 안에서 벗어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세이라 함은 보통 도전적인 메시지, 동기부여, 삶에 도움이 되는 말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저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것이고 '굳이 해결하고 깨달은 점만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공유하고 공감하고 감정을 나눴다면 그야말로 제대로 된 치유 아닌가. 


  나는 아직 내 불안을 해결하지 못했다. 사춘기 소녀에게 찾아오는 불안감, 그저 그런 거 말고. 사람이 무서워서, 사는 게 무서워서 약속을 잡기가 힘들어지는 것.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 에세이 내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애썼지만 이번만큼은 진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얘기해 보고자 한다. 내 생각 말고 진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을 보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약속을 잡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약속을 잡을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생각이 있다.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을까?' 삶에 대한 고찰이 아닌 위태로운 생각.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나도 모른다. 약을 먹으며 살고 있지만 약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않는다는 걸 느꼈다.


  이제는 '스스로'라는 말까지 무서워질 정도로 억지로 약에 의존하면서 지내는 날이 많다. 스스로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스스로 이른 시간에 잠에 들고 깊은 잠을 자고 스스로 기분을 조절하는 일이 나에겐 너무, 정말, 진짜 힘든 일이다.


  요즘은 기분 조절이 매끄럽지 못하다. 전에는 약을 먹으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조심해야지, 말하기 전에 생각해야지, 참아야지 하고. 하지만 혼자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참는 연습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예민해지는 날이 많아지고 친구들과 있어도 말이 예쁘게 나가지 않는다. 아침 약을 최근에 먹기 시작했는데 약을 먹고 시간이 꽤 지나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말을 또 막 하면 어쩌지? 애들이 나를 욕하면 어쩌지?'


  걱정이 쌓여 불안이 되고 불안은 다시 걱정을 만든다. 어젯밤에는 친구들을 만나고 와서 한참을 울었다. 조절이 왜 안 되는 거지 짜증이 났다. 나만 어려운 건가, 남들은 쉽게 하던데 하고 화가 났다. 순간 사는 게 무서웠다. 나는 계속 이렇게 지낼 텐데, 말도 막 하고 기분 조절도 안 되는 사람으로 보일 텐데 내 곁엔 아무도 안 남을 것 같은데. 어렵게 붙잡고 있던 미래라는 밧줄이 툭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진짜 내 모습이 이렇게나 처참하다. 한 친구가 나에게 자퇴하고 글을 쓰는 모습이 멋있다고 해준 적이 있다. 순간 울컥해서 눈물을 쏟을 뻔했다. 멋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처음이었다. 진짜 내 모습을 가리고 지내면서도 멋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었는데, 그 말을 해준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비록 진짜 내 모습을 보고 해준 말은 아니었지만 조금의 용기가 생겼다. 가면을 벗을 용기.


  내 진짜 모습을 아는 건 나밖에 없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숨기고 가리다 보면 진짜 내 모습은 사라지고 가면을 쓰고 웃는 나밖에 남지 않는다. 내 모습을 이 넓지만 작은 공간에 진실되게 담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진짜 내 모습을 아끼고 안아주는 것. 못난 모습까지 품어주는 것. 때로는 가면을 벗고 이야기하는 것. 그런 게 따뜻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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