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소녀가 사랑한 것들 | 15
뜨개질
자퇴를 하면서 시간이 많아진 요즘 나는 뜨개질하며 지낸다. 작은 키링부터 시작해서 파우치, 목도리 등등 이것저것 만드는 게 취미가 되었다. 원래 마땅히 취미라고 할 게 없었다. 그러다 자퇴를 하고 우연히 코바늘로 네잎클로버를 만드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몇 개 만들다 보니 손에 감이 잡혔고 갈수록 모양이 예뻐졌다. 그렇게 손맛을 본 나는 아직까지도 코바늘을 놓지 않고 있다.
뜨개질의 좋은 점 한 가지는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 고마웠던 사람들, 미안했던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정이 많은 나는 선물하는 일을 좋아한다. 생색내고 자랑하기 바쁜 선물이 아니라 직접 만든 정성 담긴 선물. 뜨개질이 제일 적당하다. 실제로 친구들에게 파우치를 선물하기도 했다.
생각 멈추기
하지만 뜨개질을 하는 수많은 이유 중에서 가장 큰 건 생각이 멈춘다는 것이다.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이 실을 타고 흘러가 예쁜 네잎클로버가 되는 느낌이었다. 손을 계속 움직이고 눈은 실을 따라가니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잡생각이 사라지니 우는 날도 줄었고 어느새 목도리도 뜰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잔잔한 노래를 틀어놓고 뜨개질을 하는 게 너무 즐겁다. 그 순간만큼은 걱정거리 없는 해맑은 소녀가 될 수 있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남들과 똑같은 사람처럼. 뜨개질을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이 좋은 시간이 끝나고 밀려오는 커다란 우울과 불안이 나를 삼키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평생 뜨개질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취미생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은 어떤 걱정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갈지는 모르겠으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끌려다니는 날이 있다면 나만의 취미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시간에 쫓겨 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꽤나 중요한 일이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밤이 두려운 이들에게 묻는다.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어떤 일을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