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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l 09. 2024

소설 한 편을 다 쓰고 나서

인생 처음으로 소설을 완성한 사람의 후기



 

(1).

 

애써 티모시 샬라메 사진을 띄워 두고 이번 글을 쓴다. 왜냐고 묻는다면, 너무나도 부끄러운 후기를 남길 예정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내 인생 최초로 소설 한 편을 완성했다. 퇴고 여러 번 끝에 소설 한 편이 내 손에서 끝났다. 그런데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럽다. 숨을 구멍이 필요할 때마다 티모시 샬라메 사진이나 영상을 보며 진정하는 나는 지금 티모시 샬라메만 삼십 분째 보고 있다.

 

책 중에서 소설을 가장 좋아하고, 소설 읽으며 서평 남기는 순간을 일상 중 가장 큰 행복으로 느끼면서도 정작 소설을 써 본 적은 없었다. 그나마 소설 비슷한 걸 쓴 경험은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연예인과 나를 조합해서 쓴 이성 팬픽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악플 다섯 개를 받고, 단 5회 만에 연재 종료했다) 그 외로는 천 자 안 되는 글을 소설인 척 조금씩 쓰다가 관뒀다. (이때는 언니랑 언니 친구들이 좋아하는 학교 후배를 주인공 삼아, 해피 로맨스 학원물로 썼었다.)

 

즉, 나는 독자가 체질이었다.


내 인생에 소설은 ‘읽는 용도’였지, ‘쓰는 용도’인 적 없었다. 불과 몇 달 전 그 회의만 아니었어도 영영 소설은 제 용도에 맞춰, 내 인생에 잘 끼워질 예정이었다.

 

불과 몇 달 전쯤이었다. 친구 D가 내게 이참에 소설 한번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때 나는 제출한 업무 보고서가 너무나도 현학적이며, 문학에 가깝다는 일갈로 좌절하는 중이었다. 세상만사를 긍정적으로 보려 하는 친구 D는 좌절에 허우적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안 돼? 네 글이 문학에 가깝다는 칭찬을 들은 거지. 이참에 소설 한 편 써 봐. 상사가 인정한 재능을 세상에 펼쳐 보이는 거야!”

 

어라.

위로가 됐다.

 

심지어 위로만 된 게 아니었다. 일하다가도 틈틈이 소설 쓰는 방법과 소설 공모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몇 달 전이다.

 





(2).

 

몇 달 전부터 지금껏 생각한다. 소설은 도대체 뭘까. 읽을 때는 쉬웠는데, 쓰기 시작하니까 도통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매번 친구 D를 붙잡고 우는 소리만 냈다. 주인공이 자꾸 안 움직여. 계속 생각만 해. 나 닮았나 봐. 난 소설이랑 안 맞나 봐. 소설이 아니라 잡설이 되었어. 그럴 때마다 친구 D는 일단 계속 쓰라는 말만 해 주었고, 얼떨결에 결말에 도착할 무렵부터는 소설이 뭔지 더더욱 알 수 없어졌다. 하루 중 틈 생길 때만 썼는데,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이 내게 말을 걸어온 탓이다.

 

“저기요. 슬슬 끝내죠?”

 

주인공 말대로 정말이지, 이 미친 이야기에도 끝이 보였다. 그리고 이쯤에서 학창 시절 문학 시험이 떠올랐다. 작가가 화자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르시오. 1번. 어쩌고. 2번. 저쩌고. 3번. 헤엄,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쓴 거야?


그러게.

나, 이 잡설로 뭘 말하고 싶었지?

 

일단 시작은 ‘그래요! 현학적이고 문학적이라 하셔서 소설 써 봤습니다!’였고, 나중에는…. 그저 주인공이 하자는 대로 휘둘려 주었다. 소설 삼체의 뤄지가 괜히 내 최애가 아니었다. 요 몇 달간 내 소설 주인공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다 못해 점차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모조리 내어주기 시작했다. 파마머리. 주근깨. 껄렁이는 걸음 모양까지. 캐스팅 권한이 있다면 티모시 샬라메로! 그러느라 정작 이 소설로 뭘 말하고 싶은지는 정하지 않았고, 그저 티모시 샬라메를 생각하며 쓴 주인공만 죽도록 사랑하면서 주인공과 함께 세상 하나를 창조하는 재미에만 푹 빠져 살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주인공과 함께 절체절명 그 자체인 끝을 맞이할 위기에 놓였을 즈음. 또다시 친구 D에게 전화를 걸었다.

 

“있잖아. 결말은 어떤 식으로 마무리하고, 언제 메시지를 넣으면 되는 거야?”

“그, … 있지. 나는 편집자님이 글 달라고 할 때마다 썼을 뿐이라 내 대답은 도움이 못 돼.”

 

안 돼!

 

친구 D는 소설로 등단한 작가였기에 몇 달간 의존했고, 친구 D 말이라면 다 정답으로 여겼었다. (미안하다!) 그런데 그냥 때가 올 때마다 쓰다가 때가 되어서 끝냈다고? 그러면 내 소설은 어떡하지. 내 소설엔 따로 ‘때’라는 게 없었다. 공모전에 냈다가는 심사위원분께 피곤한 짐 하나 얹는 상황이고, 애초에 상사에게 한 방 먹은 통증을 소설로 달래고 싶었을 뿐이었기에. 나에게는 마감 기한이 없었다. 이런 내게 다른 지인은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너도 데드 라인 정해 보라며 온갖 공모전 소식을 물어다 줬다.

 

흥미롭긴 했다.

 

개중 몇 개는 이미 고민해 본 공모전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나라는 사람이었다. 일단 문예창작학과 안 나왔고, 소설 쓰기는 초등학생 때 이성 팬픽으로 악플 다섯 개를 받아 본 게 전부인 사람이 나였다.

 

이런 사람도 소설 공모전에 뭘 내도 되는 거야?

 





(3).

 

주인공은 끝내자고 아우성치는데 도무지 끝낼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기를 일주일쯤. 끝내 소설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그게 약 한 시간 전쯤이다. 무려 팔만사천 자 끝에 주인공과 작별했다. 잘 가라 해 줬고, 엉성한 뒷모습이긴 해도 주인공 역시 나를 떠나가긴 했다. 두 달 반간 하루에 최소 십 분씩은 쓰면서도 끝날 줄은 몰랐는데, 끝났다.

 

지금 내 기분은 얼떨떨하다.


내 인생에는 소설을 끝까지 읽는 순간만 있을 줄 알았더니, 끝까지 쓰는 순간도 오는구나.

 


그와 동시에 친구 D를 우러러보게 된다.


친구 D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도 한 주제로 끝까지 완주한 친구 D를 존경했는데,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존경스럽다. 그렇기에 이 소설만은 친구 D에게 못 보여 주겠다. 내 모든 업무 보고서를 보여 주더라도 이 소설은 안 된다. 비록 친구 D는 소설이 완성되는 즉시 본인에게만이라도 꼭 좀 보여 달라고 했지만. 슬그머니 그러겠다고도 대답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미안해진다. 엉성하기만 한 소설을 남에게 읽게 하는 것은 고문 아닐까.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또 내 기분을 묻는다면,

기쁘다.

부끄럽고, 기쁘다.

 

내 머릿속에서만 뒹굴뒹굴하던 이야기를 끝내긴 끝냈다는 희열이 손가락마다 붙어 다닌다. 앞으로 또 어디서 문학적이라든지 현학적이라든지 그런 말을 들으면, 아무도 모르게 소설 한 편 더 써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긴 호흡 말고, 짧은 호흡으로 써 보고 싶다. 두 달 반간 한 이야기만 물고 늘어지다 보니 주인공을 너무 사랑하고 말아서 안 되겠다. 끝내자는데도 끝내기 싫어서 주인공을 몇 번이나 더 이야기 속에서 하염없이 돌아다니게 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실은 오늘 낮에 몰래 단편소설을 썼다. 앉은 자리에서 완성되길래 평소 좋아하던 출판사의 온라인 소설 플랫폼에 올리려다가, 관뒀다. 아직은 기쁜 마음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더 크다. 온라인 소설 플랫폼에 올린다고 갑자기 누가 내 글을 찾아내서 읽어 주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냥…, 그냥 부끄럽다. 독자인 내가 소설을 쓰는 게 그냥 너무 부끄럽다.

 

 




(4).

 

그럼에도 브런치에서는 작가님이라는 댓글을 받아 보았으므로 이 글을 작가의 말 삼아 두 달 반간 하고 싶었던 말을 슬쩍 남겨본다. 이렇게라도 기분 좀 내고 싶다!

 

지난 두 달간 내 주인공으로 사느라 고생 많았어.

난 지난 두 달간 널 정말 많이 사랑했어!

 

그리고 주인공 이름으로 본인 이름 빌려준 멋진 친구에게 고맙다. 소설 작가로서 첫 소설 도전기 듣기가 무척 힘들었을 텐데 이야기 끝에 다다를 때까지 매번 같이 고민해 준 친구 D도 고마워. 너 덕분에 이야기가 헛돌지는 않은 것 같아. 다 썼으면 공모전에 내보기나 하라며 지금도 그렇고, 언제나 부추겨 주는 친구도 고맙다.

 

마지막으로!

 

네 글은 현학적이고 문학적이라며, 글빨로 보고서 사기 그만 치라고 해 주신 상사 두 분께도 감사합니다. (실제론 두 분 다 다정하셔서 그저 농담으로 한 말씀입니다. 근데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엔 저에게 사기 칠 의도가 가득했기에… 찔렸고, 아팠나 봅니다…!) 두 분 덕분에 절대 제 글빨로는 사기 칠 수 없는 영역, 소설을 겪었습니다! 제 글빨은 딱 보고서까지 먹히는 글빨 같습니다!

 

덧붙여서.


이러다 갑자기 마음 바꿔서 공모전에 이 소설을 투척할 때를 대비하여 심사위원 여러분께 미리 죄송합니다. 이게 다 우리 애 보고서가 문학적이고 현학적이라고 부추긴 모두의 결과입니다. 저만 탓하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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