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 공자 -
" 쉽게 포기하는 자는 결코 승리할 수 없고, 승리하는 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 나폴레옹 힐 -
세상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현실과 내가 잘한다고 꼭 잘되는 것도 아니다.
'진인사대천명'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다하고 하늘의 명령을 기다린다는 의미.
그동안의 노력의 결과가 나를 배신한다고 하여도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면
스스로에게 감동하는 멋진 실패의 순간이 아닐까.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결과에 승복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감동받을 수 있다면
삶의 여정에서 선물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삶.
그 삶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 회사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그런 회사였다.
내가 입사했을 무렵 5개월 정도 된 사업장이었다.
처음 접하는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그 와중에 사내분위기는 산만함 그 자체였다.
그 무엇 하나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없는 곳이었다.
입사 한 달 후 충주에 사탕크기만 한 우박이 쏟아지면서 출고대기 차량들이 우박피해를
입으면서 회사의 분위기는 하루하루가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몇천 만원씩 지불하고 계약한 신차들이 우박으로 인해 계약취소가 돼야 했고,
같은 차량을 재계약하면 언제쯤 다시 인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빗발치는 고객들의 전화와,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아 팩스로 보내는 문의사항을 일일이 놓치지 않고
응대해야 했다. 확실한 답변을 요구하는 고객들 앞에 그 어떤 확실한 답변을 해줄 수도 없는 상황.
수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로 업무는 마비상태였다.
하루하루 출근하기가 두려울 정도로 딱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전화벨 소리 환청이 들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출근해서 사직서를 낼까?', '내일은 어떻게 버티지?'라는 걱정의 연속이었다.
매일 전화벨 소리 환청과 고객들의 욕설에 나 자신이 욕받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직장 생활했던 시간들 중에서 가장 최악이었고 가장 힘들었던 회사였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수많은 욕설을 듣다 보니 자괴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정말 태어나서 내가 평생 죽을 때까지 들을 욕을 그곳에서 다 들은 듯했다.
"매일 같이 욕먹어서 100살도 넘게 살 거야."라는 말을 직원들끼리 수없이 했던 시간.
정말 나는 그곳에서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직원들은 동료들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철저한 개인주의가 되어있었고 좀 더 이기주의가 되어가고 있었다.
철저히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
새삼 느끼며 정말 사람에 대해 절망에 가까워졌다.
모두 자신의 일밖에 몰랐고 주변의 동료가 힘들어도 외면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다정함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참아내고 있는 상황에
내 위에 있는 과장님의 히스테리까지 견뎌내야 했다.
정말 기분파, 아니 '분노조절장애'가 있나? 의심할 만큼 과장님의 기분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롤로코스트를 탔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나의 스트레스는 최고치를 넘어섰다.
화가 치밀어 폭발하고 싶은 날에도 눈물이 글썽거려 쏟아질 것 같은 날에도 악착같이 참고
더 웃어 보였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나는 이러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견디며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해야 할까?" 고민 고민하던 끝에
그만 둘 각오를 하고 주말이고 뭐고 쉬고 있는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힘든 부분들을 다 토해내듯 말했고 그만두고 싶다고 전화로 말씀을 드렸다.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간도 참 컸다.
어디 대리급이 대표님께 그것도 쉬는 날 전화해서 열변을 토했을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난다.
내가 잘리든 내손으로 그만두게 되든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말을 다 들은 대표님께서는 주말 내내 참 많은 고민을 하셨는지
출근하셔서 회의를 통해 대책안을 내놓으셨다.
그리고 틈틈이 하찮은 대리급인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다.
다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 이 정도의 일에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었어? 정말 여기서 그만둘 거야?'
며칠을 나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너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었어? 여기서 포기하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독기로 버텨보자. 단 1년이라도. 가장 힘든 순간에 도망치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자.'
그리고 나는 그 후로 몇 년을 더 그 회사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힘든 순간마다 사직서를 내고 싶은 순간마다
'하루만 더 버티자.'를 나에게 세뇌시켰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주중에 집중할 수 없었던 나의 업무는 그냥 포기상태였고,
주말을 이용해 조용한 사무실에 출근하여 나의 일들을 마무리했다. 그러기를 몇 년...
소리 없이 티 내지 않고 주말 시간을 이용해 업무를 처리하는 나를 알게 되면서 사람들이 말했다.
"굳이 주말까지 나와서 일을 해요? 수당은 더 받아요? 누가 알아준다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일을 못해서 그런 거예요. 그리고 누가 알아주라고 일하나요?
내가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것뿐이에요. 내 마음 편하자고..."
환경 탓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 일만 하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없었고
어떻게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애썼다.
누가 보면 무슨 오지랖이냐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그때도 그렇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렇고 그때 그렇게 일하던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미칠 듯 힘들었지만, 기어니 해냈던 나를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남들이 뭐라든 어떤 분위기였던 나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어떻게든 버텨내고 싶었기에...
그리고 그 힘듦의 시간에 늘 고마움으로 한결같이 내게 부모님처럼
선배처럼 따뜻하게 보듬어주시고 이끌어주셨던 대표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다.
참 많이 나를 아껴주셨던 대표님...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늘 내편이 되어주셨던 든든했던 과장님, 부장님.
생각해 보면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알게 모르게 나를 아껴주시고 도와주셨던 분들이 어딜 가든 계셨다.
그 힘으로 내가 더 버티고 견뎌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감사했던 한 사람.
그것은 함께 했던 동료들이 아니라 대표님이셨다.
무심한 듯 하지만 언제나 문제를 알아차리시고 나의 힘듦을 알아차리셨다.
정말 한계가 올 때쯤이면 대표님께서 말을 거셨다.
"김대리 오늘 회식 한번 할까?"
"저야 좋지요. 다른 분들 여쭤볼까요?"
그렇게 회식은 가끔 번개로 이루어졌다.
아마 나는 그렇게 내 감정을 읽어주셨던 대표님이 안 계셨다면
나 스스로의 힘으로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곳에 일하는 동안, 그리고 차장이라는 승진까지 하고
그 자리가 아깝지 않냐며 말렸던 동료들의 말에도 나는 내 할 일을 그곳에서
다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퇴직할 수 있었고,
퇴직 이후에도 대표님에 대한 감사함은 늘 내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삶에서 늘 벽을 마주하는 시간.
피해 갈 수 없다면 그냥 하루를 버티고 견뎌내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세상은 살아낼 만하다.
이제는 누군가 '고객을 상대로 일해보지 않으실래요?'라고 제안하면
나는 흔쾌히 허락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숨 막히게 힘들었던 시간이 나를 성장시켰던 것이다.
말하고 싶다 내 인생에...
'환경탓 하지 말고, 남탓하지 말고, 포기하는 삶을 살지 말자고, 가장 힘든 순간들에서
도망치지 말라고..'
포기하는 순간 자신의 한계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희망은 그날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날이 오리라는 믿음이다." -헬렌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