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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희 Oct 12. 2024

수 없이 흔들려도 나를 잃지 않기를

"나 스스로 확신한다면 나는 남의 확신을 구하지 않는다."  - 에드거 앨런 포 -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기 위해 삶의 3/4를 빼앗기고 있다." - 쇼펜하우어 -


약 8개월 만에 아들과의 첫 만남.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던 나는 아들을 보자마자 가슴이 울컥했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가 아니라, 

8개월 만에 만난 아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반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산속에라도 들어가 혼자 도를 닦고 온 사람처럼...

보기 좋았던 몸과 얼굴은 어디로 사라지고 푸석푸석하고 야윈 아들의 모습에 눈물이 글썽여졌다.

그 마음을 뒤로한 채  25살의 아들을 안아주며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내 기억으로는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처음 해주는 입맞춤이었다.

"그동안 애 많이 썼구나. 힘들었지?" 이 한마디 말을 건네며 내 마음이 그렇게 표현되었다.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는지 아들의 모습에서 그대로 전해져 왔다.

쉬운 삶이 어디 있겠냐 마는, 깊이 들여다보면 안쓰럽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냐 마는,

부모의 마음으로 자식을 보는 마음은 참으로 짠하기만 하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지독히도 견뎌내는 아들의 모습에

대견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이런저런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다.

나를 많이 닮은 아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내고,

어떻게 인내하고 있는지 눈에 선해서 늘 마음이 더 간다.

25살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한 젊은 청년의 노력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고통이라고 느끼는 시간들이 행복의 시간으로 만들어갈 아들의 삶이라는 시간 앞에서

내가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사랑은

단단한 아들의 내면을 믿고 그 믿음으로 늘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것뿐이다.

.

인생에서 최대의 고통은 무엇일까?

각 개인의 삶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은 아마 상실이 주는 고통이 아닐런지 짐작해 본다.

상실의 고통 중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이 아닐까?

사람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

그것은 나의 삶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가장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또한 나의 가장 소중한 많은 것을 그 사람에게 주고 싶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은, 아니 사랑을 준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과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맛보게 한다.

나는 한 사람을 얻고, 한 사람을 잃으면서 가장 큰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맛보았다.

마치 나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을 처절하게 맛보아야 했다.

그 시간들은 그동안의 '나'라는 존재를 무너뜨리기엔 너무도 충분했다.

사람을 잃어가는 시간들이 내가 이루고자 했던 꿈과 희망들 조차 

산산조각이 되어 먼지처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죽여야만 살아낼 수 있었다.

나를 죽이지 않고는 다시 나를 살려낼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인생이 꽃길만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가시밭길에서 아픔을 견뎌야 하는 시간만큼은 피해 가고 싶었다.

감사, 행복, 소중함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기 위해 신은 사람에게 가시밭 길을 걷게 하는 것일까?

하지만 고난 앞에서 자신을 쓰러뜨리는 것도, 쓰러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오직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삶에서 '나'를 지켜낼 수 있는 단 한 사람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그 당연함을 외로움으로 생각하지 않는 시간들을 배웠다.


안정적이고 나름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날.

나의 꿈을 향해 집중하며 보내던 어느 날.

평화롭고 고요한 삶을 깨뜨리는 시간은 늘 그렇듯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이제 내가 하고 싶었던, 이루고 싶었던 일들에 집중하며 살아보자고

그렇게 선택하며 보내려는 시간의 행복은 잠시.

소나기라고 곧 지나갈 것이라고 여겼던 악몽의 시간들은 쉽게 나를 떠나지 않았다.

마치 끝날 것 같지 않을 어두컴컴하고 지루하고 기나긴 한 여름의 장마철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상실의 아픔은 그렇게 나의 삶을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것처럼 짓밟고 있었다.

어느 정도 때가 되면 우리는 누구나 인간은 불완전하고 삶은 모순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불완전함을 포용할 때 완전함에 다가선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은 모든 자연 중 가장 약한 존재로 

인간을 무찌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으며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인간을 죽이기에 충분하다.'라고...

이렇게도 약하디 약한 인간이지만 인간의 의지는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고난을 극복하며 살고자 하는 강력한 그 의지와 희망이.


삶의 고난을 지나치면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살고자 한다면 나는 고난 앞에서 얼마든지 나를 죽이겠다고.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로 살겠다고...

이제는 삶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무너져 내리는 그 시간은 다시 나를 일으키기 위한 시간이라고...

그러니 잠시 잠깐 무너진 그 시간들 속에서 지나온 나의 삶을

다가올 나의 삶을 다 쓰러뜨릴 수는 없다고.

어떻게든 살아내겠다는 그 의지는 강한 내면을 만들고

나를 성장시키고 마음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 살아온 시간 동안, 앞으로 살아갈 시간 동안

우리가 예상치 못한 수많은 고난 앞에서 다시 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찬 비바람에 나뭇잎처럼 풀잎처럼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겠지만

마음이라는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다면 절대 뽑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런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해야 할 것이라고...

수 없이 눈물로 견뎌낸 시간들이 봄볕에 사라지는 눈처럼 한순간에 사라지게 될 

그래서 다시 미소 지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다시 올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 작은 희망이 오늘도 나를,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을 살려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자신을 가로막는 것을 극복하며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시간이 흐르면 그 시간들 조차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경험이 되어있을 테니

삶에서 어떤 상황이 찾아와도 절대 '나'를 지켜 내기를 절대 '나'를 잃지 않기를...


"오늘 근심을 물리칠 방법을 찾아라.

해결되지 않은 근심은 언제나 새로운 가면을 쓰고 나타나 나를 괴롭힐 테니까."

- 인간이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본문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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