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역에서
1945년 여름, 산딸기가 붉게 물들어 가던 7월.
춘식은 김천역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역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우면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밤을 보냈다. 낮에는 기차역에서 소일거리를 얻어 일을 하거나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밥을 얻어먹거나 운 좋을 때는 장터 어귀에서 남은 국밥을 한 숟갈이라도 얻어먹었다. 김천역에서는 큰 애들 눈치를 볼 일도 없었고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 자유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전쟁 막바지의 기운은 역전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군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사람들 얼굴에는 불안이 드리웠다. 불안한 정세 속에서 소일거리들은 사라졌고 그러다 보니 점점 밥을 얻어먹기가 어려워졌다. 하루이틀 굶는 일이 잦아지고 장터에서도 아이들을 외면하는 날이 늘어갔다.
김천역, 밤공기는 축축하고 배고픔은 날마다 깊어졌다. 배고픔은 그렇게 아이들의 숨을 조여 왔고 이윽고 등을 떠밀기에 이르렀다.
그날 밤에도 아이들은 역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서로의 체온에 의지했다.
김천역 대합실 구석, 남루한 차림의 꼬마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나이 많아야 열둘,
어린 춘식은 그중 만 여덟 살.
햇수로 10세.... 되는 어린이로 조그마한 아이였지만 눈빛만은 어른처럼 날카로운 똘똘한 아이였다.
“얘들아, 여기선 더 못 버틴다.”
형 뻘 되는 아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역전 장터도, 구호품도, 더 이상 어린아이들한테 돌아오는 건 없었다. 춘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어디로 가는데?”
“대구. 큰 도시라 뭐라도 있다 카더라. 거기 가면 살아남을 수 있다.”
“야, 춘식아. 여기선 더는 못 버틴다. 대구로 가자.”
“야, 대구 가자. 거긴 사과도 많고 밥도 잘 얻어먹는단다.”
“맞다. 대구에 가면 굶을 일 없다 카더라.”
병수도 따라 말을 꺼내고 다른 친구들도 말을 이었다.
“왜 또 대구인데?”
“거긴 사과가 많아. 밥 얻어먹기도 쉽대. 지나가는 큰 형들이 그러더라. 참말로 그라믄 김천보단 낫지 않겠나.”
"그래, 얻어먹으려면 밥을 잘 주는 대구 가자. 사과 얻어먹으러 대구 가자."
"맞아. 일자리도 많다고 하더라. 과수원서 일하고 거 떨어진 사과들 주어다 먹고 팔고 하면 된다."
"맞나?"
"하무. 맞지.... 그럼 맞고 말고..."
춘식은 아무런 대답을 못 했다.
엄마가 이 근처 방직공장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가 춘식의 발목을 그리고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을 찾아 헤매도 공장은 굳게 닫혀 있었고 만난 노인은 “여긴 위험하다”며 아이들을 내쫓았다.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살려면 대구로 가야 한다고.... 혹시 엄마가 이 근처 방직공장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처음엔 망설이고 있던 춘식이었다. 하지만 굳게 닫힌 공장 문은 그 희망마저 막아버렸고 매일 이어지는 허기와 공포 앞에서 남겨진 선택지는 점점 사라져 갔다.
옥희가 작게 속삭였다.
“춘식아, 네 엄마가 혹시 다른 데 끌려가셨을 수도 있잖아. 우리가 여기서 굶어 죽으면 엄마 못 만나.”
“맞다, 대구로 가자. 살아야 찾을 수 있지.”
병수도 거들었다.
잠시 침묵. 춘식은 입술을 깨물었다. 만으로 여덟 당시 나이로 열 살인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아이의 선택은 늘 어른의 몫이었다. 그렇게 춘식은 어른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다.
아이들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남의 고향, 남의 도시. 그러나 주린 배와 매서운 밤바람이 이미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춘식도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대구 가자.”
그 한마디에 아이들의 얼굴에 희미한 안도와 긴장이 스쳤다.
밤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보따리를 메고 아우성쳤다. 아이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지금이야, 뛰어!”
철커덩~ 달리는 기차의 옆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작은 몸이었기에 가능했다. 손에 피가 맺히도록 쇠기둥을 붙잡고, 바람에 날리는 연기 속에서 이빨을 악물었다.
“꽉 잡아라! 떨어지면 죽는다!”
병수가 소리쳤다.
“알았다, 놔 안 할란다!”
춘식은 숨을 몰아쉬며 대꾸했다. 밤하늘은 검었고, 별빛은 흔들렸다. 아이들은 기차에 매달린 채, 김천을 떠나 대구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춘식은 꿈에서 깨어났다. 너무 걱정을 한 나머지 기차에 매달려 타는 꿈을 꾼 춘식이었다
하지만 사실 당시는 어린아이라면 기차에 무임승차가 가능했다.
우리도 탈 수 있나?”
춘식이 눈이 커졌다.
병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애들은 돈 안 내도 된다카더라. 그냥 타면 된다.”
걱정이 많았던 춘식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얼마 후 아이들은 기차를 타기 위에 승강장에 쭈르륵 서 있었다. 기차가 멈춰 선 것을 확인한 병수가 말했다.
“자, 숨죽이고 올라탄다. 알았나?”
병수의 말에 따라 아이들은 하나둘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기차에 올랐다.
커다란 객차 안, 아이들은 구석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잠시 후 기차는 출발을 했고 차창 너머로 김천역이 멀어져 갔다. 춘식은 마지막으로 역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 기다려 주세요. 난 꼭 다시 올 기라예.'
아이들은 좁은 객차 틈바구니에 끼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들판과 산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풍경은 여느 때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낯설움과 두려움으로 얼룩져 있었다.
밤이 깊자 아이들은 조심스레 화물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대적 고아들이 기차에 오르는 것을 그 누구도 관심 있게 보지 않았고 묻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삐걱대며 움직이는 화물칸 구석,
아이들은 서로 몸을 붙이고 웅크렸다. 바퀴소리가 자장가처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춘식은 철로를 달리며 반짝이는 불빛들을 바라보다가 ‘대구에 가면 정말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마침내 도착한 대구역.
대구역에 도착하자 세상은 또 달라져 있었다.
김천보다 훨씬 크고 북적거렸다. 광장은 인산인해였고 소란스러운 소리와 냄새가 아이들을 휘감았다.
대구역 광장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숨 막히게 붐볐다.
보따리를 짊어진 어른들, 새까맣게 그을린 군인들, 사과 꾸러미를 팔러 나온 장꾼들, 그리고 그들 같은 떠돌이 아이들까지.
대구역은 확실히 김천역과는 달랐다. 그곳은 더 크고, 더 시끄럽고, 더 거칠었다.
“야, 저기 봐라. 사과가 잔뜩 쌓여 있네.”
옥희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니까 내가 대구 가자 했잖아. 여기선 굶을 일은 없다니까.”
역 앞에는 장사꾼들이 몰려 있었고 사람들 손에는 사과 바구니가 흔하게 보였다. 그 풍요로움에 아이들 눈이 잠시 반짝였으나 곧 낯선 기운이 감돌았다. 아이들 앞에 낯선 그림자가 드리웠다.
거칠게 다듬은 머리칼, 눈빛부터 사나운 패거리 형들이었다.
대구역 꼬마들에게는 이미 그들만의 질서가 있었다. 대구역 구내에는 조직처럼 움직이는 아이 무리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새로운 얼굴들은 곧장 그물망에 걸리기 마련이었다.
구석에 모여 있던 형들 무리가 아이들을 부르며 손짓했다.
“야, 너거 어디서 왔노?”
“야, 꼬맹이들! 이리 와 봐라.”
목소리는 낮게 깔렸고 눈빛은 매서웠다. 그 순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붙잡히면 자유는 끝이라는 걸. 저들과 얽히면 고생문이 활짝 열릴 거라는 걸. 춘식은 숨을 고르고 친구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다음 순간,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열심히 달려갔다.
“야, 꼬맹이들! 거기 서 봐라.”
낯선 형들은 달아 나는 아이들을 뒤쫓아 왔다. 헌 군복에, 날카로운 눈빛.
잡히면 큰 일이라는 걸 아이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형들에게 붙잡히면 부려 먹히고 맞고 더는 도망칠 길이 없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아이들은 이미 형들과 마주쳤을 때의 행동 요령까지도 계획하고 습득하고 있었다. 당시 역전의 아이들은 정세와 정보에 능했으며 눈치도 빨랐다. 그러므로 역을 접수하고 아이들을 부리는 그네들의 존재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미 들어 아주 잘 알고 있는 터였다.
“더더더 더 빨리 뛰어!”
아이들은 형들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 전력으로 달렸다.
열심히 달리며 그 순간 춘식은 생각했다.
어디를 가든 이 땅의 아이들은 늘 쫓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달리는 발걸음만이 엄마를 찾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그리 달리던 아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짐짝 사이로, 시장통 사람들 다리 사이로, 바람처럼 스며들었다. 춘식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유독 겁이 많은 춘식은 뒤돌아 볼 틈조차도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아이들이 하나 둘 담벼락에 몸을 붙였다. 하나, 둘, 셋, 넷......
용케도 흩어졌던 아이들은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마치 이곳에 익숙했던 아이들처럼 쫓아오던 형들을 따돌리고 이곳 담벼락에 모였다.
"큰일 날 뻔했다..... 저 형들한테 걸리면 다신 못 나온다."
"그러니까 눈치 잘 봐야 된다. 여기선 살아남으려면 더 똑똑해야 돼."
춘식은 벽에 등을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기차 연기 사이로 묘하게 붉은 노을이 드리워져 있었다. 춘식은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 찾지 못한....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여기서도 버텨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언젠가 엄마를 만날 때까지."
그렇게 대구에서의 삶은 풍요와 위협, 희망과 두려움이 얽힌 가운데 새로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이제 또다시 스스로의 지혜와 용기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아이들의 또 다른 하루가 대구역의 소란스러운 밤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대구역 주변은 아이들의 또 다른 전장이었다. 어떤 날은 패거리의 눈을 피해 구호소 앞에서 얻은 보리밥 한 덩이에 하루를 의지하고 때로는 길모퉁이에서 망을 보며 소일거리를 하면서 하루를 버텼다. 굶주림과 추위는 아이들을 점점 단단하게 만들었다.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는 건 곧 사람 사이의 틈새를 읽는 법을 깨닫는 일이었다. 그렇게 만 팔세 당시 나이로 10세인 춘식과 그의 친구들은 시대의 휘영 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