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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닿는 자리 # 16

시간이 머문 찰나의 공간

by Unikim

시간이 머문 찰나의 공간

유니


탄천을 따라 걷던 어느 오후
생태습지공원에 세워둔 프레임 하나가
가만히 나를 불러 세웠다

그 틀 안으로 들어오는 가을은
누군가 오래전부터 준비해 둔
작은 무대 같았다
빛은 금실처럼 얽히고
바람은 낙엽의 숨결을 실어 나르며
잠시만 머물다 가라고 속삭였다

나는 그 찰나를 바라보다
깨달아 버렸다
머무는 건 풍경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는 것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듯한 이 순간이
사실은 오래도록 나를 지켜온
삶의 가장 깊은 자리였다는 것을.

우리는 하루의 수많은 장면을
그저 지나쳐 버리지만
어쩌면 인생은
그 틀 안에 잠깐 걸린 빛처럼
찰나의 모음이 모여 이루어진 것인지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멈춰 설 이유를 찾아 걷는다
스쳐 가는 계절 속에서
내 안의 시간을 살짝 들어 올려
프레임 속에 가만히 놓아 본다

그곳에서야 비로소
내 삶의 속도가
조용히 머물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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