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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ikim Jan 03. 2025

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싶어.

삶의 고뇌

"엄마~ 엄마~"

한 밤 중인데 춘식이가 잠에서 깹니다.

악몽을 꾼 걸까요? 춘식은 엄마를 찾습니다.

하지만 순이의 모습은 보이질 않습니다.

"어무이~ 어무이~"

"엄마~ 엄마~"

춘식은 연신 순이를 부릅니다.

"춘식아~ 와? 어무이가 없드나?"

춘식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윤석을 바라봅니다.

"아부지~ 엄마가 없다. 엄마가 없다. 아부지~"

"춘식아~ 이리 온나."

춘식이 윤석 품에 안깁니다.

"아부지 또 술 먹었어요?"

"술 잡수셨어요? 하고 물어야지...."

"아부지 또 술 잡수셨어요?"

"아부지가 마음이 너무 아파가 약주 좀 마셨데이...."

"약주?"

"약주..."

"약주는 약인 거예요?"

"........."

"아부지 술 먹는 거 싫어요."

"싫나?"

춘식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부지가 술 먹고 늦게 오면 엄마가 울어요"

"맞나?!! 미안타. 아부지가 잘못했다."

"아부지 약주 말고 다른 약 먹어요. 아픈 거 빨리 낫게....."

"알았다. 아버지 이자 술 안 묵을란다."

"정말요?"

"정말로..."

"춘식이랑 약속~"

"춘식이랑 약속...."

윤석은 춘식이를 다독다독 재웁니다.

한참을 자장가를 부르다가 나지막이 입을 엽니다.

"춘식아~ 아부지는 말이다. 

이 세상을 단맛으로 가득 채우고 싶데이~ 

그리고 즐거운 소리가 들리고 밝은 미소가 가득한 곳으로 만들고 싶데이... 

근데 말이다. 이 세상이 왜 이리 쓰고 슬프고 어두운기가....."

"............"

"춘식아~

할아버지 말이야~

오늘은 우리 춘식이 할아버지가 왜이라고 생각나는 기가......

울 아부지랑 울 어무이가 너무 보고 싶데이.....

니그 할아버지는 말이여 

호탕하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고 사람을 참 아끼는 분이셨단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나 뜻을 못 펼치고 그리 가셨지만서도......."

"............."

"춘식이 니는 알아야 한데이.....

넌 그런 할아버지의 하나뿐인 손주인기라......"

"............."

"그라니께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한데이"

윤석은 잠든 춘식이를 안은 채 계속해서 말을 합니다.

그때 윤석의 귀에 춘식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립니다.

윤석은 춘식의 얼굴을 보며 따뜻하지만 쓸쓸한 미소를 지어 보내더니 살짝 춘식을 바닥에 누입니다.

아버지와 분리되는 느낌이 들자 춘식이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윤석은 춘식의 옆에 누워 아이를 다시 안습니다.

"춘식아~ 아부지가 미안하데이~

울 춘식이랑 별이랑 엄마랑 삼촌이랑 행복하게 해 줄라 했는데.....

우리 식구들 평범하게 살게 해 줄라 했는데.....

자꾸 식구가 줄어가네......

자꾸자꾸 식구들이........"

윤석은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말끝을 흐립니다.

그러고는 이내 잠이 들어 버립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차가운 바람 한 줄기가 방으로 들어옵니다.

윤석은 찬 기운에 잠에서 깹니다.

이불을 끌어올려 춘식이를 폭 에워쌉니다.

그러고는 마당으로 나와 아직도 불이 켜진 건넌방을 봅니다.

윤석은 마당을 가로질러 불이 켜진 방의 문을 살포시 엽니다.

"밤새 여 있었나?"

"............"

"와? 아직도 내가 밉더나?"

"..........."

"미안타.... 별이 아플 때 별이 옆에 있어 주지도 못하고 순이 니 혼자 많이 힘들었제?!!"

"............."

"내가 미안타. 참말로 미안타...."

"뭔 일입니까?

이유 없이 그럴 양반이 아니잖습니꺼?

도대체 어인 일이기에 그라십니꺼?"

"............"

"와 말을 못합니꺼?

무신 말이라도 하란 말입니더?

뭔 일입니꺼? 뭔 일이기에 자식 떠나는 길 지켜주지도 막아 주지도 못하신겁니꺼?"

"저....윤....윤철이가 사고가 아닌 거 같네......"

"무슨 말입니꺼?"

"윤철이가 아무래도 살해당한 거 같아......"

순이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지금 살해라 했습니꺼?

무신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꺼?"

"..................."

"말씀 해 보이소"

"왜 계속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네 그려."

순이의 물음에 대답은 않고 윤철은 한탄만 반복해 말하고 있습니다.

순이는 다시 묻습니다.

"살해라니요?

대체 누가? 왜?"

윤석은 고개를 젓습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모르오,

하지만 분명한 건 윤철이 입을 막으려고 누군가 내 동생을 저리 만들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무슨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느냔 말입니더? 도대체 누가 왜? 누기 우리 윤철이를 죽였단 말입니꺼?"

윤석은 횡설수설하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살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예요?"

"그날 피 흘린 윤철을 누군가가 끌고 가는 걸 본 사람이 있어."

"헉....."

겨우 대답을 들은 순이는 하늘이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도대체 왜? 누가?"

중얼거리는 순이에게 윤석이 말을 꺼냅니다.

"우리... 아부지 말이야~~"

"아버님이요?"

"응, 우리 아버지.... 춘식이 할아버지...."

"아버님이 왜요?"

"실은 아버지께서도 사고로 돌아가신 게 아이다. 

일본 순사에게 끌려간 후 결국 못 돌아오셨다 아이가..."

그 놈들이 아부지도 끌고 가고 우리 집이랑 땅이랑 가솔들까지 모두 뺏어 갔다."

"예? 그런 일이 있었어요?"

"세상에 윤철이랑 나 둘만 남았는데...."

"그때 소문이 무성했던 거 같아요."

"그랬나?!!

이게 진실인기라. 이거이 울 집이 기울게 된 이유다."

"몰랐어요,,,,"

"그래도 윤철이랑 둘이서 열심히 살았데이....

윤철인 평범하게 살게 해 주고 싶어서 기운 집안 세우느라 쎄가 빠지게 일을 했다."

"당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내가 알아요."

"맞나? 자네가 있어 내가 더 잘 해낼 수 있었다."

"제가 뭐 한 것이 있나요? 다 당신의 노력의 댓가지요."

"근데 윤철이가 자꾸 겉도는 거야..."

"왜요?"

"글쎄.... 윤철이가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리 마음을 못 잡고 탄광이나 힘든 노역지에서 고된 일을 하며 힘들게 산 걸까?"

"무얼요?"

"아버지 사건...."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게 된 걸까요?"

"그러니까.... 뭔가를 알게 되었던 게 아닐까 싶어.

난 윤철이 지키려고 어찌든 평범하게 살게 하려고 다 묻고 다 덮었는데......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았는데.....

결국 윤철이 마저 이리 떠나고...

게다가 윤철이가 세상을 떠난 이유가 다른 배경이 있다 하니 막막해지더구먼.... 

끝없이 고되게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듯 이 고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아서 

내가 요새 마음이 많이 힘들었네 그려...."

윤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순이의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맘이 많이 힘들었겠네요. 감당하기 힘든 받아들이기는 더 힘든 상황들 땜에

얼마나 힘드셨어요?"

"맴이 맴이 너무 아파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서 숨이 안 쉬어졌소.

그래서 자꾸 술을 마시게 되더구먼...."

순이는 윤석의 붉은 눌을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순이는 윤석을 감싸 안고 함께 흐느껴 웁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운 두 사람은 벽에 등을 기댄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윤석이 침묵을 깨고 순이에게 말합니다.

"밤새 일한기가?"

"잠이 안 와서요"

"그러다 몸 상할라꼬...."

"가슴에 불이 들었어요. 가만있으면 나도 숨이 쉬어지질 않아요.

너무 타서 고통스럽고요. 이거라도 해야 내가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아이를 둘이나 가슴에 묻은 엄마는 매일매일이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실을 잣고 베를 짜고 옷을 짓는 일을 하고 또 하고 매일 매 순간 반복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을 허망하게 보낸 순이는 정신을 놓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정신을 붙들어 보려 일에 몰두해 왔습니다.

그래야~ 그렇게라도 해야 이 세상에 살아남아 춘식이를 지킬 테니까요....

"춘식 아부지..... 지가... 부탁이 있습니더...."

"뭐꼬?"

"이제 더는 쫓지 마소.

억울하겠지만 더는 이 일에 매이지 마이소.

무슨 일인지 전후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더는 일을 파지 않으면 좋겠어요."

"아이다. 그건 그러면 안 된다."

"우리 춘식이 지켜야지요....

저 순한 아는 우리가 지켜야지요~

당신까지 잘못되믄 울 아는 우짭니꺼?

무서운 사람들하고는 싸우지도 말고 엮이지도 말고 우린 우리 길만 가입시다."

"안 된다. 내가 덮어도 보고 잊으려고 노력도 해 봤다.

근데 결국 윤철이도 저리 되고.....

인자 밝혀야 한 데이....

밝혀서 벌 주고 더는 우릴 괴롭히지 못하게 해야 울 춘식이가 산다."

"지가 언제 당신 뜻 거스른 적 있습니까?

당신 뜻은 다 따랐지예.... 근데 이 일은 내 말도 좀 들어 주소...."

"언제까지 이리 당하고 살 순 없지 않겠소..."

"하지만.... 나 무섭습니다. 당신마저 떠날까 봐."

순이는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윤석을 바라봅니다.

"내 당신하고 우리 춘식이는 꼭 지키겠소. 내 약속하리다...."

"하지만...."


"어무이~ 아부지~"

"어무이~ 아부지~"

아무 대답이 없자 놀란 춘식은 급히 문을 열고 나옵니다.

"엄마~ 아빠~"

춘식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순이와 윤석은 놀라 방문을 열고 뛰어나옵니다.

그들이 나와 보니 툇마루에 서서 울고 있는 춘식이가 보입니다.

자다가 혼자인 자신을 발견한 춘식이가 놀라 방밖으로 나왔습니다.

안방 툇마루에 서서 엄마와 아빠를 부르고 서 있는 춘식이입니다.

별이가 떠나고 그 충격에 불안이 커져 갔는지 춘식이는 분리불안증을 보입니다.

윤석은 그런 춘식을 안고 한참을 달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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