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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싶어.

삶의 고뇌

by Unikim

"엄마~ 엄마~"

한 밤 중인데 춘식이가 잠에서 깹니다.

악몽을 꾼 걸까요? 춘식은 엄마를 찾습니다.

하지만 순이의 모습은 보이질 않습니다.

"어무이~ 어무이~"

"엄마~ 엄마~"

춘식은 연신 순이를 부릅니다.

"춘식아~ 와? 어무이가 없드나?"

춘식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윤석을 바라봅니다.

"아부지~ 엄마가 없다. 엄마가 없다. 아부지~"

"춘식아~ 이리 온나."

춘식이 윤석 품에 안깁니다.

"아부지 또 술 먹었어요?"

"술 잡수셨어요? 하고 물어야지...."

"아부지 또 술 잡수셨어요?"

"아부지가 마음이 너무 아파가 약주 좀 마셨데이...."

"약주?"

"약주..."

"약주는 약인 거예요?"

"........."

"아부지 술 먹는 거 싫어요."

"싫나?"

춘식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부지가 술 먹고 늦게 오면 엄마가 울어요"

"맞나?!! 미안타. 아부지가 잘못했다."

"아부지 약주 말고 다른 약 먹어요. 아픈 거 빨리 낫게....."

"알았다. 아버지 이자 술 안 묵을란다."

"정말요?"

"정말로..."

"춘식이랑 약속~"

"춘식이랑 약속...."

윤석은 춘식이를 다독다독 재웁니다.

한참을 자장가를 부르다가 나지막이 입을 엽니다.

"춘식아~ 아부지는 말이다.

이 세상을 단맛으로 가득 채우고 싶데이~

그리고 즐거운 소리가 들리고 밝은 미소가 가득한 곳으로 만들고 싶데이...

근데 말이다. 이 세상이 왜 이리 쓰고 슬프고 어두운기가....."

"............"

"춘식아~

할아버지 말이야~

오늘은 우리 춘식이 할아버지가 왜이라고 생각나는 기가......

울 아부지랑 울 어무이가 너무 보고 싶데이.....

니그 할아버지는 말이여

호탕하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고 사람을 참 아끼는 분이셨단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나 뜻을 못 펼치고 그리 가셨지만서도......."

"............."

"춘식이 니는 알아야 한데이.....

넌 그런 할아버지의 하나뿐인 손주인기라......"

"............."

"그라니께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한데이"

윤석은 잠든 춘식이를 안은 채 계속해서 말을 합니다.

그때 윤석의 귀에 춘식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립니다.

윤석은 춘식의 얼굴을 보며 따뜻하지만 쓸쓸한 미소를 지어 보내더니 살짝 춘식을 바닥에 누입니다.

아버지와 분리되는 느낌이 들자 춘식이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윤석은 춘식의 옆에 누워 아이를 다시 안습니다.

"춘식아~ 아부지가 미안하데이~

울 춘식이랑 별이랑 엄마랑 삼촌이랑 행복하게 해 줄라 했는데.....

우리 식구들 평범하게 살게 해 줄라 했는데.....

자꾸 식구가 줄어가네......

자꾸자꾸 식구들이........"

윤석은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말끝을 흐립니다.

그러고는 이내 잠이 들어 버립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차가운 바람 한 줄기가 방으로 들어옵니다.

윤석은 찬 기운에 잠에서 깹니다.

이불을 끌어올려 춘식이를 폭 에워쌉니다.

그러고는 마당으로 나와 아직도 불이 켜진 건넌방을 봅니다.

윤석은 마당을 가로질러 불이 켜진 방의 문을 살포시 엽니다.

"밤새 여 있었나?"

"............"

"와? 아직도 내가 밉더나?"

"..........."

"미안타.... 별이 아플 때 별이 옆에 있어 주지도 못하고 순이 니 혼자 많이 힘들었제?!!"

"............."

"내가 미안타. 참말로 미안타...."

"뭔 일입니까?

이유 없이 그럴 양반이 아니잖습니꺼?

도대체 어인 일이기에 그라십니꺼?"

"............"

"와 말을 못합니꺼?

무신 말이라도 하란 말입니더?

뭔 일입니꺼? 뭔 일이기에 자식 떠나는 길 지켜주지도 막아 주지도 못하신겁니꺼?"

"저....윤....윤철이가 사고가 아닌 거 같네......"

"무슨 말입니꺼?"

"윤철이가 아무래도 살해당한 거 같아......"

순이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지금 살해라 했습니꺼?

무신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꺼?"

"..................."

"말씀 해 보이소"

"왜 계속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데이."

순이의 물음에 대답은 않고 윤철은 반복해 한탄만 하고 있습니다.

순이는 다시 묻습니다.

"살해라니요?

대체 누가? 왜?"

윤석은 고개를 젓습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모르오,

하지만 분명한 건 윤철이 입을 막으려고 누군가 내 동생을 저리 만들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무슨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느냔 말입니더? 도대체 누가 왜? 누가 우리 윤철이를 죽였단 말입니꺼?"

윤석은 횡설수설하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살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예요?"

"그날 피 흘린 윤철을 누군가가 끌고 가는 걸 본 사람이 있어."

"헉....."

겨우 대답을 들은 순이는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도대체 왜? 누가?"

중얼거리는 순이에게 윤석이 말을 꺼냅니다.

"우리... 아부지 말이야~~"

"아버님이요?"

"응, 우리 아버지.... 춘식이 할아버지...."

"아버님이 와요?"

"실은 아버지께서도 사고로 돌아가신 게 아이다.

일본 순사에게 끌려간 후 결국 못 돌아오셨다 아이가..."

그 놈들이 아부지도 끌고 가고 우리 집이랑 땅이랑 가솔들까지 모두 뺏어 갔다."

"예? 그런 일이 있었습니꺼?"

"그런 일이 있었데이. 그래가 이 세상에 윤철이랑 나 둘만 남개 되었다 아이가...."

"그때 소문이 무성했던 거 같아요."

"그랬나?!!

이게 진실인기라. 이거이 울 집이 기울게 된 이유다."

"몰랐습니더"

"그래도 윤철이랑 둘이서 열심히 살았데이....

윤철인 평범하게 살게 해 주고 싶어서 기운 집안 세우느라 쎄가 빠지게 일을 했다 아이가."

"당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내가 압니더."

"맞나? 자네가 있어 내가 더 잘 해낼 수 있었다."

"제가 뭐 한 것이 있나요? 다 당신의 노력의 댓가입니더."

"근데 윤철이가 자꾸 겉도는기라..."

"와요?"

"글쎄.... 윤철이가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리 마음을 못 잡고 탄광이나 힘든 노역지에서 고된 일을 하며 힘들게 산 걸까?"

"무얼요?"

"아버지 사건...."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게 된 걸까요?"

"그러니까.... 뭔가를 알게 되었던 게 아닐까 싶으네.

난 윤철이 지키려고 어찌든 평범하게 살게 하려고 다 묻고 다 덮었는데......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았는데.....

결국 윤철이 마저 이리 떠나고...

게다가 윤철이가 세상을 떠난 이유가 다른 배경이 있다 하니 막막해지더구먼....

끝없이 고되게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듯 이 고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아서

내가 요새 마음이 많이 힘들었네 그려...."

윤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순이의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맘이 많이 힘들었겠네요. 감당하기 힘든 받아들이기는 더 힘든 상황들 땜에

얼마나 힘드셨어요?"

"맴이 맴이 너무 아파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서 숨이 안 쉬어졌소.

그래서 자꾸 술을 마시게 되더구먼...."

순이는 윤석의 붉은 눈을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순이는 윤석을 감싸 안고 함께 흐느껴 웁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운 두 사람은 벽에 등을 기댄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윤석이 침묵을 깨고 순이에게 말합니다.

"밤새 일한기가?"

"잠이 안 와서요"

"그러다 몸 상할라꼬...."

"가슴에 불이 들었어요. 가만있으면 나도 숨이 쉬어지질 않아요.

너무 타서 고통스럽고요. 이거라도 해야 내가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아이를 둘이나 가슴에 묻은 엄마는 매일매일이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실을 잣고 베를 짜고 옷을 짓는 일을 하고 또 하고 매일 매 순간 반복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을 허망하게 보낸 순이는 정신을 놓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정신을 붙들어 보려 일에 몰두해 왔습니다.

그래야~ 그렇게라도 해야 이 세상에 살아남아 춘식이를 지킬 테니까요....

"춘식 아부지..... 지가... 부탁이 있습니더...."

"뭐꼬?"

"이제 더는 쫓지 마소.

억울하겠지만 더는 이 일에 매이지 마이소.

무슨 일인지 전후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더는 이 일을 파지 않으면 좋겠어요."

"아이다. 그건 그러면 안 된다."

"우리 춘식이 지켜야지요....

저 순한 아는 우리가 지켜야지요~

당신까지 잘못되믄 울 아는 우짭니꺼?

무서운 사람들하고는 싸우지도 말고 엮이지도 말고 우린 우리 길만 가입시다."

"안 된다. 내가 덮어도 보고 잊으려고 노력도 해 봤다.

근데 결국 윤철이도 저리 되고.....

인자 밝혀야 한 데이....

밝혀서 벌 주고 더는 우릴 괴롭히지 못하게 해야 울 춘식이가 산다."

"지가 언제 당신 뜻 거스른 적 있습니꺼?

당신 뜻은 다 따랐지예.... 근데 이 일은 내 말도 좀 들어 주소...."

"언제까지 이리 당하고 살 순 없지 않겠소..."

"하지만.... 지는 무섭습니더. 당신마저 떠나게 될까봐 무섭습니더."

순이는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윤석을 바라봅니다.

"내 당신하고 우리 춘식이는 꼭 지킬끼다. 내 약속한데이...."

"하지만...."


"어무이~ 아부지~"

"어무이~ 아부지~"

아무 대답이 없자 놀란 춘식은 급히 문을 열고 나옵니다.

"엄마~ 아빠~"

춘식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자 순이와 윤석은 놀라 춘식에게 뛰어 갑니다.

춘식은 툇마루에 서서 울고 있습니다.

자다가 혼자인 자신을 발견한 춘식이가 놀라 방밖으로 나왔네요.

안방 툇마루에 서서 엄마와 아빠를 부르고 서 있는 춘식이입니다.

별이가 떠나고 그 충격에 불안이 커졌는지 춘식이는 분리불안증을 보입니다.

윤석은 그런 춘식을 안고 한참을 달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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