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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ikim Dec 27. 2024

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싶어.

약병

"여기네. 여기"

"어찌 여기에 아를 묻겠는가?!"

"여다 별이를 묻어야 춘식이 명이 길어질 수 있단 말이네."

지모가 윤석을 보며 말합니다.

지모는 윤석의 오랜 벗이며 풍수지리에도 능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윤석에게 말합니다.

"파출소 옆 뜰에 별이를 묻어야 한다.

그래야 춘식이가 장수할 수 있을 것이여."

지모는 별이의 묏자리를 이곳으로 정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그래도 어떻게 이곳에 내 아이를 묻으란 말인가?

파출 소 옆엔 말의 굽을 가는 곳이 있질 않는가?

"맞네.... 

하지만 파출소와 그곳 사이에 있는 이 뜰이...

이 뜰 양지 바른 곳에 별이를 묻어야 춘식에게 가는 좋지 않은 기운을 막을 수가 있어.

반드시 이 뜰에 별이를 묻어 줘야 하네.

자네 춘식이 마저 잃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꼭 이곳이어야만 하네......"

"....................."

말없이 윤석은 흐느껴 웁니다.

그리고 윤석과 그의 친구들은 파출소 옆 뜰 양지바른 곳에 땅을 팝니다.

비탄에 찬 윤석은 오열을 삼키며 아이를 이곳에 묻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럽던 별이를 잃은 윤석은 가슴에 아이를 묻으며 울고 또 웁니다.

"별아~ 미안하다. 우리 아가 별아~ 이젠 아프지 말고 다음 세상에서도 꼭 우리에게 와 주렴."

그렇게 그들은 별을 이곳에 묻었습니다.


별이를 떠나보낸 순이는 몇 날며칠 넋이 나가 있습니다.

그녀의 슬픔이 가득한 얼굴을 본 춘식은 잔뜩 주눅이 들었습니다.

어린 춘식의 눈에는 엄마가 춘식에게 화가 나 있는 것만 같습니다.

길게 말문이 닫혀 있던 순이가 춘식에게 묻습니다.

"별이 약병 니가 쏟았드나?"

춘식은 어머니가 무서워서 얼어 버렸습니다.

"약병 니가 쏟았드나?"

순이가 또 춘식에게 묻습니다.

"약병?"

춘식은 영문도 모른 채 생각을 떠올리려 노력을 해 봅니다.

"언니~ 와 이러노?

춘식이도 아다. 아가 뭘 알겄노? 그만해라."

막 방으로 들어오던 영이가 순이를 말립니다.

그러고는 춘식이를 안고 나가 버렸습니다.

홀로 방에 남겨진 순이는 별이의 베개를 안고 흐느껴 웁니다.


"춘식아~ 이모랑 할머니 집에 가자."

방에서 우는 순이의 소리가 밖으로 들립니다.

언니에게 들어가 보고 싶지만 순이의 꼭 목을 끌어 안고 있는 춘식이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영이입니다.

영이는 얼른 춘식이를 현수에게 데리고 갑니다.

"야를 델고 오면 우짜노?

춘식이라도 있어야 니 언니가 산데이~

춘식이가 옆에 있어야 순이가 기운을 차릴 거 아이가?"

"아이다.... 언니가 아를 너무 잡아 싸서 춘식이가 겁먹었었단 말이다!!

어무이... 일단은 춘식이가 여 있어야 합니더. 춘식이 생각도 좀 하소.

아가 뭔 죕니꺼? 상처받아서 안 됩니더."

현수는 말이 없습니다.

춘식인 슬픔과 두려움에 기가 죽어 있습니다.

"춘식아~ 헌진이 형아랑 전방 가서 맛난 거 사 먹을래?"

춘식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입니다.

순이는 춘식이를 데리고 나가서  헌진이를 불러 전방에 갔습니다. 

그러고는 두 아이들 손에 과자를 한 봉씩 쥐어 주었습니다.

"헌진이랑 춘식이랑 가서 사이좋게 놀아야 해."

"네~~~"

둘은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영이는 다시 집으로 들어옵니다.

"와? 니그 언니 집에서 무슨 일 있었드나?"

"언니가 약병..... 춘식이가 쏟았냐고 아를 쥐 잡듯이 했데이..."

"뭐라꼬? 아가 뭘 안다고 그러는 긴데?"

"지금 와서 약 병 쏟은 거 추궁해서 뭐할라꼬 그라는지 나도 모르것소."

"순이가 맘에 병이 깊이 들어 그런다.

약병 쏟은 게 누군지 궁금해서 그러는 게 아이다."

"그게 뭔 소리고? 누가 별이 약병을 쏟았드나?"

물을 먹으러 나오던 철이가 둘의 대화 속으로 들어옵니다.

"응..... 별이 약병을 쏟았어."

"누가?"

"몰라."

"근데 와 그걸 춘식이한테 묻노?"

"실은......"

"헌진이랑 춘식이랑 안방서 나간 후 들어가 보니 약병이 떨어져 있었는데.... "

"그만해라. 그게 아그들이랑 뭔 상관이고? 갸들이 떨어뜨리고 쏟는 거 봤드나?

다시는 그런 소리 입 밖으로 내지 말그레이..."

이리 말한 철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뒤를 돌아봅니다.

"춘식아~~ 니그들  언제 왔나?"

"언제부터 거기 있었드노?"

"이모~~~ 춘식이가 약을 쏟은 거예요?"

"아냐, 춘식아~ 그런 거 아니야~"

"형도 알아? 내가 그런 거야?"

"응.... 니가 그랬잖아. 방에서 공 가지고 나올 때 니가 공으로 창문 칠 때 그랬잖아."

"헌진아~~ 아이다~~~ 춘식이가 그런 거 아이다~~~"

"헌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말합니다.

"내... 내가 아니에요. 아니란 말이에요. 춘식이가 그렀어요. 춘식이가...."

"우~~~ 엥~~~~"

"별이가 춘식이 땜에 춘식이 땜에 죽은 거예요? 이모~ 정말 그래요?"

"아니야~~ 춘식아~~ 그런 거 아니야. 헌진아~~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약 안 쏟았어요. 내가 안 그렀어요."

헌진이는 이상할 정도로 아무도 묻지 않은 사실에 대해 극구 부인하며 춘식이 잘못이라 떠넘기 듯 말합니다.

"그만~~~"

현수가 큰 소리로 호통을 칩니다.

"그만들 하고 헌진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춘식이는 건너방으로 가 있거라."

철이는 춘식이를 데리고 건너방으로 갑니다.

영이는 헌진이를 데리고 헌진이 집으로 갑니다.


"애기씨 오셨어요."

"아니야~~ 내가 안 그랬어. 아니야~"

"헌진아~~ 왜 그래? 무슨 일 있니?

헌진이는 엄마를 보더니 엉엉 울어 버립니다.

항상 의젓하기만 하던 헌진이인데 오늘따라 달라진 모습에 헌진의 어머니는 걱정스레 헌진을 안습니다.

"헌진아~~ 괜찮아. 

무슨 일 있니?

헌진인 연신 울기만 합니다.

헌진을 다독다독 달래던 그녀가 헌진에게 묻습니다.

"괜찮아. 헌진아~

엄마한테 천천히 얘기해 줄 수 있을까?"

헌진은 망설입니다.

"헌진아~ 엄마한테 얘기해 주겠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여전히 헌진은 훌쩍입니다.

"애기씨~ 무슨 일이에요?"

"저.... 애들이 놀다가 별이의 약병을 쏟았었나 봐요."

"네~~?"

"그게 도대체 무슨 얘기에요?"

"아이들이 쏟은 걸 보셨어요?"

"쏟는 걸 본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다녀간 후에 쏟아져 있었어요."

"아이들이 쏟는 것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뭔가를 더 말하려다 그녀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닫습니다.

"아니~~ 애한테 뭐라고 하신 거예요?

뭐라고 했길래 아이가 이러는 거예요?"

"헌진이한테 뭐라고 하려던 것이 아닌데 아이들이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 버렸어요."

"무슨.... 말이에요?"

"별이 약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아이들이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약병....? 그러니까 말하고 싶은 게.....

별이 약이 쏟아져서 별이가 약을 못 먹어서 떠났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아뇨....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별이가..... 별이가.... 별이가 죽었다고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면.......

아이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고 상처를 받겠어요?"

"그러니까요....."

"아니 어른들이 조심해 주셨어야지요. 아이들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일단 돌라가 게셔요. 애기씨~

헌진이 진정되면 제가 다시 헌진이랑 얘기해 볼게요."

영이는 자리를 떠나 순이에게로 갑니다.


"헌진아~ 이젠 우리 둘만 남았네. 솔직하게 얘기해 보렴.

헌진이가 알고 있는 대로 엄마한테는 말해 줄 수 있을까? 엄마가 알아야 헌진이를 도와줄 수가 있어."

"엄마.... 사실은 내가 춘식이네 집에서 공을 가지고 오면서 장난치다가 창가에 있는 병을 떨어 뜨렸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그래서 약이 쏟아졌니?"

헌진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 때문에 별이가 죽은 거지요?"

"아니야~ 아니야~ 헌진아.

네가 실수한 건 맞지만.... 헌진이 때문에 별이가 하늘로 간 건 아니야."

헌진의 어머니는 헌진을 달랩니다. 하지만 마음은 큰 바위를 이고 있는 것처럼 무겁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춘식이가 잠을 자며 중얼거립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니가 별이 약이 쏟아서 별이가 약을 못 먹어서 별이가 죽은 거야."

"아.... 아니야~ 아니야~~ "

"별아~ 별이야~"

"엄마~ 엄마~~ 나 버리지 마요.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아부지~ 가지 마세요~~

아부지~~~ 아부지~~~"

잠을 자고 있던 춘식이가 고통스러워합니다.

현수는 춘식을 깨웁니다.

"아가~ 아가~ 춘식아~~~"

"할머니~? 내가 그런 거예요? 내가 별이 죽게 한 거예요?

할머니~ 엄마가 날 버렸어요? 엄마는 왜 춘식이 보러 안 와요? 엄마가 화가 났어요.

엄마가 나 때문이래요.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아니야~~ 춘식아~ 아니야~~~ 우리 춘식이 때문이 아니야~"

"아빠도 떠났어요. 아빠는 별이한테 간데요.

할머니도 춘식이가 싫어요?"

"아니야~ 춘식아~아니야~ 춘식아~~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우리 춘식이를 몹시 사랑한단다."

악몽을 꾸고 있던 춘식이를 달래며 현수가 이어서 말합니다.

"춘식이 때문이 아니야. 아가~ 

그런 생각하지 마."

"별이가 아파서 하늘로 떠난 거야. 우리 춘식이때문이 아니야~"

"그리고 울 춘식이는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우리의 아이란다."

춘식을 다독거리며 이어 자장가를 부르는 현수입니다.

"자장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자장자장자장 검둥개야 짖지 마라 우리아 잠 깨울라.

자장자장자장 우리 춘식이 잘도 잔다 자장자장자장~"

현수는 춘식이를 달래며 안아서 재웁니다.

현수는 살포시 아이를 내려놓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춘식이가 자면서 자꾸 놀라고 몸을 움츠립니다.

그러더니 몸을 부르르 떱니다.

"춘식아~ 춘식아~"

"엄마~"

"야가 와 이라노? 경끼하는 아처럼 와 이라노?

야야 어여 바늘 가져 온나. 물 끓여가 소독해 온나~"

영이는 놀라서 급히 바늘을 가져옵니다.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다 따야 한데이~

니 춘식이 꼭 안그라~"

영이는 춘식이를 꼭 안습니다.

현수는 바늘로 춘식의 손과 발을 바늘로 땁니다.

그러고는 온몸을 주무르고 복부와 등을 쓸고 두드려 줍니다.

부르르 떨며 파랗게 되었던 아이의 숨이 트입니다.

현수와 영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날이 밝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춘식인 아직 일어나질 못합니다.

"춘식아~ 밥 먹고 의원에 가자. 일어나렴."

춘식인 일어나질 못합니다.

"좀 더 재워가 밥 먹여야겠네...."

1시간가량이 지났습니다.

영이가 또 춘식이를 깨웁니다.

"춘식아~"

"엄마~ 엄마~ 춘식이도 열이 난다."

현수는 화들짝 놀라 방으로 뛰어들어갑니다.

"니 얼른 가가 언니한테 약 달라해라."

"약 나눠 먹다 옮으면 우에 하라고?" 내 업고 의원으로 갈려."

"아~ 맞나? 그라믄 그라자."

현수와 영이는 춘식이를 데리고 의원에 갑니다.

의원이 아이를 진찰을 하고는 간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이가 크게 충격을 받았구먼....

일단 주사 치료를 하였으니 집에 가서 안정을 취하게 하시고

식후에 이 약을 먹이세요. 약을 먹고 좋아지면 계속 복용하게 하고 

먹고도 차도가 없으면 내일 다시 오시게."

"무슨 약입니까?"

"아이의 열을 내려주고 마음에 안정을 주고 순환이 되게 하는 약입니다."

"별이가 걸렸던 병이 옮은 것은 아닙니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일단 이거 먹여 보고도 열이 내리지 않으면 다시 오세요."

"예, 감사합니다. 선생님"

인사를 하고 나가려던 현수가 뒤돌아 묻습니다.

"내일까지 아가 차도가 없으믄 델구 오라 했는데 그라믄 인자 치료약이 있는 겁니꺼?"

"예, 치료약을 확보했습니더. 이제는 약이 충분히 있습니다."

"우째 울 별이가 아플 때만 약이 똑 떨어졌단 말입니꺼?"

"미안합니다. 그땐 방법이 없었습니다."

"약 또 없다 하지 말고 내일까지 울 춘식이 약은 좀 따로 빼내 주이소."

"그리하겠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 약도 그냥 같이 주이소."

잠시 생각을 하던 의원은 약병을 건네며 두 약을 함께 먹이면 안 됩니다.

오늘은 일단 먼저 드린 약부터 먹이시고 차도가 없으면 그때 이 약으로 바꾸시면 됩니다.

절대 함께는 먹이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현수와 영이는 춘식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현수의 집에는 춘식의 기별을 들은 순이가 와 있습니다.

"왔드나~"

"춘식이는 어떻습니꺼?"

"우째 알고 왔드나?"

"철이한테 들었습니다."

"야기 충격이 컸든갑다."

"춘식아~~"

순이는 춘식이를 꼭 안아 줍니다.

"춘식아~ 엄마가 미안타~ 엄마가 그런 걸 춘식이한테 묻는 게 아니었는데 엄마가 잘못했어."

춘식이는 순이를 한참 쳐다봅니다.

"춘식이가 그런 거 아니에요?"

"춘식이가 그런 거 아니야~

집에 약 도둑이 들어서 약병이 바꿔치기되어서 빈병이었어.

별이가 약을 못 먹은 건 그래서야~~ 절대 춘식이 잘못이 아니야~~"

"가자. 울 아들~~ 엄마랑 가자."

순이는 춘식이를 안고 집을 향해 갑니다.

사실 쏟겨진 약은 조금이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약을 먹어야 하는 기간 동안 별이가 약을 충분히 먹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힘든 시대가 가져다준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순이는 모든 것이 순이의 잘못인 거만 같습니다.

그 마음이 무겁고 괴로워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던 걸까요?!!

이미 순이는 알고 있습니다.

별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그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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