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으앙~~ 으앙~~"
"별아 왜? 악몽 꿨어?
자장자장자장~자장자장자장~
우리 별이 잘도 잔다.
자장자장자장~"
"엄마~~~"
"쉿....
별이 겨우 잠들었네, 춘식이도 얼른 자자."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륵 잠이 듭니다."
아이들을 재운 순이가 스르륵 잠이 듭니다.
"어머니~~~ 어머니~~~~
일어나셔요. 별이~~ 별이가 이상해요."
"용수야~ 용수야~"
순이는 용수의 꿈을 꾸며 슬프게 흐느낍니다.
"어머니~~~ 어머니~~~~
엄마~ 엄마~ 빨리~~ 빨리~~~
별이가 이상해~~~
별이가 별이가 왔어
빨리~~~ 빨리~~~
얼른 일어나~~~~ 얼른~~~"
용수가 숨이 넘어갈 듯 다급하게 순이를 다그치며 소리를 지릅니다.
"별이가 왜~?"
순이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앉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용수와 별이를 찾습니다.
"아~~~ 꿈이었구나!!!"
순이가 눈물을 훔칩니다.
"엄마~~~ 별이가 너무 따뜻해요...."
잠고대를 하듯 춘식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순이는 빙그레 웃으며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 줍니다.
순간 순이의 표정이 굳어집니다.
그러고는 별이의 이마를 짚습니다.
"별아~~ 별아~~~"
별이는 축 쳐져서 말이 없습니다.
"별아~~~ 별아~~~"
별이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습니다.
방을 둘러봅니다.
윤석이 보이질 않습니다.
순이는 다급하게 윤철의 방으로 건너가 봅니다.
그곳에도 윤석은 없습니다.
순이는 물을 준비해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러고는 연신 순이를 닦아 냅니다.
닦아도 닦아도 순이의 열은 내려갈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순이는 별이를 포대기로 엎습니다.
그러고는 동네 의원으로 달려갑니다.
"선생님~~ 선생님~~~"
순이는 연신 문을 두들깁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의원에 불이 켜지고 의원이 문을 열고 나옵니다.
"춘식이 어머니~ 무슨 일이십니꺼?"
"아가~아가 열이 내려 가질 않습니더"
의사는 급하게 별이를 받아 눕힙니다.
그러고는 진찰을 한 후 별이에게 주사를 놓습니다.
"열을 낮추어 주는 주사를 놓았으니 일단은 열이 내려갈 겁니다.
하지만 금세 열이 또 높아질 거예요.
약을 드릴 테니 꼭 끼니때마다 먹이도록 하세요.
이번에 돌고 있는 전염병이 이런 증상이 있는데 아이의 열이 여러 날 동안 계속될 겁니다.
약을 꼭 끼니때마나 빠짐없이 먹여야 합니다.
지금 드리는 약이 마지막 약입니다.
같은 증상으로 워낙 많은 환자가 발생하여서 약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합니다.
현재 우리 의원에 있는 마지막 남은 치료약이니까 잘 챙겨서 먹여 주십시오"
"예. 선생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영이는 별이를 업고 약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조심스레 별이를 자리에 눕히고 춘식을 안아 윤철의 방으로 갑니다.
"언제 오셨어요?"
"어~~ 나... 아까.........."
윤석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합니다.
순이는 짧게 한숨을 쉬며 윤석의 품에 춘식이를 눕힙니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가서 아궁이에 불을 지핍니다.
날이 밝아지자 밝아오는 빛에 순이가 눈을 뜹니다.
옆에 잠든 별이를 바라봅니다.
순이는 조심스레 별이의 이마를 짚어 봅니다.
아직은 열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부엌으로 가 아침을 짓습니다.
윤석이 일어나서 마당을 씁니다.
춘식이도 따라 나와 마당을 뛰어다닙니다.
순이가 부엌에서 나오며 인사를 합니다.
"오늘은 삼촌 방에서 아침을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윤석이 순이를 쳐다보더니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갭니다.
곧 순이가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옵니다.
"무슨 일 있나?'
"별이가 간밤에 열이 높았어요.
열을 닦아내도 열이 내려 가질 않아 의원에 다녀왔어요."
윤석은 퀭한 눈으로 순이를 보며 말합니다.
"고생이 많았겠네 그려.... 아는? 어떤가?"
"주사 맞고 지금은 열이 조금 내려갔는데....
지금 도는 병이 며칠씩 열이 난다네요.
약 받아 왔어요."
"수고가 많네...."
아이들이 아프면 늘 정성이던 윤석이인데 웬일인지 윤석이 다른 때와는 달라 보임을 느끼는 순이입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순이는 윤석에게 묻습니다.
"무슨 일 있어요?
약주를 많이 하셨던데......"
"아니... 좀....."
윤석은 말을 흐립니다.
그러고는 수저를 내려놓습니다.
"왜요? 입맛이 없으셔요?"
윤석은 멍하니 있더니 가족들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 공장을 향해 갑니다.
별이도 들여다보지 않고 영혼 없는 표정을 하고는 가버렸습니다.
평소와는 많이 다른 윤석입니다.
하지만 순이는 불평 한마디가 없습니다.
그저 조용히 밥상을 치우고 미음을 담아 별이에게 먹입니다.
별이는 겨운 넘긴 미음을 모두 토합니다.
순이는 별이의 몸을 세워 안고 아이의 등을 토닥입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약을 먹입니다.
약을 먹인 순이는 별이를 세워 안은 채 등을 쓸어 줍니다.
잠시 후 별이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약 때문인지 열 때문인지 별이는 자꾸자꾸 잡니다.
잠시 후 영이가 마당으로 들어옵니다.
"언니~ 나 왔어."
"왔나?!"
순이가 마당으로 나옵니다.
" 언니~ 니 와 그러는데?
무슨 일 있나? 하룻 밤새 얼굴이 반쪽이네...."
마당에서 혼자 흙장난을 하고 있던 춘식이가 이모를 보며 말합니다.
"이모~ 별이가 아파요~"
"응? 별이가? 왜? 어떻게?"
"별이가 열이 많이 나. 아무래도 지금 도는 전염병에 걸린 거 같아."
"현민이.... 가가 병 가져온 거 아이가?"
"설마...."
"그건 모르는 기고? 그러게 이 시끄러운 때 와 남의 아를 봐주냔 말이다~"
"됐다. 이왕에 지난 일 우에 할 끼고? 그렇다 해도 할 수 없제.....
옮을 수 있다니까 일단 우리 춘식이 좀 델구 가라."
"알았다. 내 춘식이 잘 델구 있을게. 걱정 말그라. 언니야."
"춘식아~ 이모랑 할무이집 가자."
"언니~ 니도 조심해라."
"알았다. 고맙데이~~"
"우리 간데이~~"
영이가 춘식이를 데리고 자리를 뜹니다.
"온종일 사장님은 왜 안 보이지시?"
"그게.... 무신 일이 있으신 거 같습니더...."
"윤석이 뭔 일 있는 거 아이가?"
"도과 이 친구는 또 왜 안 보이는 겐가?"
"이 번 주까지는 안 나오시는 거 아닐까요?"
잠시 후 지친 모습으로 윤석이 들어옵니다.
윤석의 친구들이 그의 옆으로 다가옵니다.
"무슨 일인가?"
"아... 아닐세. 별일 아니야~"
"별 일 아니긴.... 자네 표정이 말해 주는 걸....."
"말해. 보게 무슨 일인가?"
"혹시 지난번 도식이 일 때문인가?"
"도식이 일?"
"그건 잘 해결되었다 하지 않았나?"
"그 일이 아직 남아 있는 겐가?"
"아고 그만들 하게... 윤석이 자네가 말 좀 해 보게...."
"저.... 그게.....
아닐쎄. 별 일 아니야~~"
"자자... 이러지 말고 국밥이나 한 그릇씩 먹으러 가세."
"도과... 이 친구는 이 번주는 쉬는 건가?"
도과라는 말에 윤석의 얼굴을 굳어집니다.
어색하게 말을 이어 나가는 윤석입니다.
"아.... 어...
아무래도 이번주까지는 쉬어야지 않겠나...."
눈치 빠른 지만이 얼른 분위기를 바꾸며 말합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엿을 찾는 장수들이 늘고 있네. 우리 공장을 늘려야 하는 거 아닌가?"
"오~~~ 그 정도인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릴쎄....."
"공장 분점을 내는 건 어떤가?"
"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분점은 내가 맡아 잘 키울 테니 추진해 보시게...."
"허허.... 좋지^^"
엿공장에 관심이 많은 병철과 윤석은 신이 나서 대화를 합니다.
근심이 가득하던 윤석은 친구들과의 시간 속에서 잠시 근심은 접어 둡니다.
마음이 쉬고 싶었는지 별이 생각도 미처 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고 떠듭니다.
윤석은 그렇게 괴로운 맘을 잠시 접고 싶었나 봅니다.
한편, 순이는 별이를 재우고 마당을 서성입니다.
윤석의 귀가가 늦어지는 게 걱정스러운 순이입니다.
순이는 곧 윤철의 방에 불을 지핍니다. 늦어지는 윤석을 푹 재워야겠다 싶은 아내입니다.
잠시 후 비틀거리며 윤석이 들어옵니다.
"늦으셨네요.... 어서 주무셔요."
"미안합니다. 미안해."
"무슨 일이 있으신 거지요?"
윤석은 눈물을 글썽입니다.
"어서 눈 좀 붙이셔요."
힘들어 보이는 윤석에게 더 이상 캐묻지 않는 순이입니다.
순이는 성품이 온순하고 사려 깊으며 현명한 아내입니다.
정확하고 섬세한 순이의 정성으로 별이의 병이 많이 악화되지는 않았나 봅니다.
발열 후 이틀쨰 밤도 무사히 넘겼습니다.
"어제도 술이 좀 과하셨던데요?!!! 속은 좀 괜찮으셔요?"
"내가 좀 많이 마셨나 보네. 별이는 좀 어떤가?"
"아가 아직까지는 잘 버텨 주네요."
"신경 못 써서 미안하네"
"무슨 일이 있으신 거지요?"
"음.... 조금 더 알아보고 다 얘기하겄소."
"예.... 그리하십시오."
"국이 참 시원하구려...."
"천천히 잡수셔요."
순이는 옅은 미소를 띱니다.
"춘식 엄마~~"
"오셨습니까?"
"내가 주문한 거 다 되었수?"
"여기요~"
"아이고 고와라. 울 어무이 좋아라 하시겠네."
"마음에 드시면 좋겠네요...."
"길안댁~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곱네요.... 원단도 어찌 이리 곱소. 원단부터 다르다 하더니 정말 그렇네요."
"그리 보아주시니 고맙습니더."
"나도 옷 한 벌 지어 줘요."
"누가 입으실 건데요?"
"울 동생 시집가기 전에 고운 옷 한 벌 해 주려구...."
"동생분 모시고 오셔요. 치수를 재야 해서요...."
"아이고.... 무슨....
나하고 사이즈기 같아요. 나한테 맞게 만들면 되지요."
"예... 그럼 치수를 좀 재겠습니다."
"어쩜 이리 꼼꼼도 하시고...."
"잘 부탁해요."
"예 걱정 마셔요~"
"그럼 수고해요~~"
"살펴들 가셔요~~"
손님들이 나가고 영이가 들어옵니다.
"언니~~~ 엄마가 반찬 갔다 주라 해서...."
"어서 온나~~~"
"별이는 좀 어때?"
"아직 열이 오르내리고 있지...."
"얼른 좋아져야 할 텐데......"
"춘식이는 괘안나?"
"춘식이는 괘안타. 잘 묵고 잘 놀고....."
"어무이가 숫자 가르친다고 열심이랴."
"맞나?!!! 잘 따라하드나?!!!"
"하므... 뉘 아들인데... 잘한다."
"언니 니 지금 밥 묵을래? 내 차릴까?"
"됐다. 별이 약 먹을 시간이다."
"별이 좀 보고 내가 천천히 챙겨 먹을게."
"알았다. 그럼 나 간 데이~~"
"오이야. 어여 가그라...."
"알았다. 이거만 정리하고 갈게."
"영이야~~ 영이야~~~"
"와? 무슨 일이고?"
"약이... 약이 없다. 분명히 반 병이 남아 잇었는데 약이 반수저도 안 남아 있다."
"이걸로는 아 열을 잡을 수가 업데이...."
"다른 데 둔 거 아이가...?"
"다 찾아봐도 이 것뿐이데이...."
"가만....
봐라... 이건 우리 거 아이다. 우리 약병이랑 다르데이....."
"어쩌지.... 손 탓나 부네. 누꼬? 누가 아 약을 바꿔 갔단 말이가?"
"쪼메 잇으라.... 내 의원에 좀 다녀와야 것다."
"선생님~~~ 약 들어왔지요? 약 좀 주이소...."
"약이 와 벌서 없습니꺼?"
"약병을 누가 바꿔 갔어요."
"반 병이 남아 있었는데 먹이려고 보니 거의 없었습니더.
우이합니꺼? 약 좀 주이소...."
"없습니다. 먹는 약도 주사 약도 다 동이 낫다 말입니다."
"요즘 약이 귀하다 보니 도둑질을 당하고 난리도 아니라고 합니다."
순이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의원에서 나온 순이는 약방으로 갑니다. 약방에도 약이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순이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현수를 찾습니다.
"엄마~~~"
"와 이리 넋이 나갔는데? 무슨 일이고?"
"엄마~ 별이 약을 도둑질당했다. 우이하노?"
"가만 이스라... 여 있다. 급할 땐 이거라도 먹여라. 해열제다."
"춘식이는 와 안 보입니꺼?"
"야가 어델 갔노? 방금까지 있었는데...."
"춘식아~ 헌진아~
니들 여 어케 왔는데?"
"공이랑 딱지 가지러 왔지..."
"고모~~~ 춘식이랑 놀다 갈게요."
"이모~~~ 나 형아랑 공놀이 갈 거야~~"
둘은 영이에게 각자 다른 호칭을 쓰는 게 재미있는지 여러 번 영이를 부르며 장난을 칩니다.
그러고는 금세 사라졌습니다.
"언니~~ 와? 약 못 샀나?"
"응.... 약이 없데~~~"
"손에 든 거는 뭔데?"
"엄마가.... 해열제....."
"아...."
순이는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주로 새벽에 별이 열이 높아지니까 치료약 조금 남은 거는 그때 먹여야겠지?"
"응... 그래야겠네."
"근데 이어서 먹이라고 했다면서... 괜찮을까?"
"그런가....?"
순이와 영이는 방으로 들어갑니다.
"왜 약병이 쏟아져 잇는 거야?"
순이는 경악을 합니다.
조금 있던 약마저 다 쏟아져 잇습니다.
"아니.... 창가에 세워 놓은 병이 왜 바닥에 쏟아져 있냐구...?"
"누구 왔드나?"
"어... 저....."
"와? 누가 왔는데?"
"응.... 헌진이랑 춘식이 왔다 갔다."
순이는 그만 털썩 주저 앉는다.
이대로 두면 조금 약병에 담은 약도 다 말라 버릴 것 같았는지 순이는 물을 약간 넣어 병을 흔들어 섞습니다.
"그 약 별이 약이랑 같은 약 맞나?"
"약 병도 색도 냄새도 똑같다. 누가 자기네 다 먹어 가는 치료약이랑 우리 약이랑 바꿨나 봐. 이가라도 먹여야 안 되겠나?"
순이는 그저 속이 상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밤이 되고 새벽이 되었습니다.
열이 오른 별이의 몸을 닦아내던 순이가 잠깐 잠이 듭니다.
용수가 자꾸 울며 순이의 눈물을 닦아 줍니다.
놀란 순이가 잠에서 깹니다.
여전히 윤석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순이는 별이의 이마를 짚어 봅니다.
아이의 이마가 차갑습니다.
놀란 순이는 아이의 손을 잡아 봅니다.
손도 차갑습니다.
불을 켠 순이는 별이를 흔들어 깨워 봅니다.
별이는 조금도 움직이질 않습니다.
순이는 별이를 안고 울고 또 웁니다.
순이는 넋이 나간 채 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 줍니다.
오늘도 술에 취한 윤석은 비틀 거리며 들어와 윤철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날이 밝고도 순이는 방에서 나오질 않습니다.
윤석은 일어나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안방문을 열어 봅니다.
눈물이 넋이 나간 순이를 보고 윤석은 놀라 방으로 들어옵니다.
"별아~~ 별이야~~~"
놀란 윤석이 별이를 안으려 하자 순이는 별이를 안은채 몸을 돌리며 윤석을 밀쳐 냅니다.
"저리 가. 우리 별이 자잖아. 조용히 하고 가라고~~"
순이는 또 자장가를 부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윤석은 오열을 합니다.
너무나 사랑스럽던 그들의 별이는 그렇게 이들의 곁을 떠났습니다.
별이가 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