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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ajera 비아헤라 Aug 11. 2024

[치앙마이 여행] 느리게 느리게

Sabai Sabai

  이른 아침 새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가 나른한 상태로 침대에서 좀 더 뒹굴뒹굴 거렸다. 물 먹은 솜 같은 몸을 일으켜 10시쯤 숙소를 나와 올드시티를 둘러싼 해자를 따라 걸으며 산책했다. 우리나라 강물에 비하면 색이 많이 뿌옇지만 아침 햇살을 받아서 그런지 여행 와서 들뜬 기분 탓인지 마냥 청량해 보였다. 오늘은 처음으로 올드시티를 벗아나 님만해민에 가려고 거리를 검색해 보니 2km쯤 되길래 교통편을 잡아서 빨리 갈까 고민하다가 아직 아침이라 많이 덥지도 않고, 골목골목 걸어 다니면서 천천히 도시를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에 구글맵을 켜고 천천히 골목을 산책했다. 평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원래 인적이 없는 골목인 건지 꽃과 새들만 가득하고 가끔가다 오래된 차와 오토바이만 한 대씩 지나가는 길이었다.

 





  골목을 따라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들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으며 걸어 나오니 어느새 번화가에 도착했다. 아침을 안 먹고 30분을 더위 속에서 걸었더니 허기가 져 구글맵에서 인근 브런치카페를 검색해 GROON이라는 베이커리카페로 갔다. 구슬땀을 흘리며 걸어왔는데 들어오자마자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있고 인테리어가 깔끔한 화이트톤이라 마치 천국 같았다. 연어 샌드위치, 착즙 오렌지 주스를 시켜 쓱싹쓱싹 비웠다.



  아점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배도 식힐 겸 근처에 있는 북스미스 서점에 갔다. 아트북과 태국도서, 영어도서가 주로 있어서 둘러만 보고 나왔다. 마야몰로 가는 길에 원님만 쇼핑몰 사이로 화이트마켓이 열려있어 구경을 했다. 코끼리 똥으로 만든 상품이 있어 신기해서 구경을 하다가 기념으로 똥종이와 똥책갈피를 샀다. 사기 전에 혹시나 싶어 코를 박고 킁킁거려 보니 다행히 냄새는 안 났다.



  치앙마이에 오기 찾아 읽었던 치앙마이래빗이 "치앙마이, 그녀를 안아줘"라는 책을 보고 '치앙마이 가면 여기는 가봐야지!'라고 생각했던 장소가 몇 곳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란라오 서점이었다. 가게 입구부터 싱그럽고 넓지 않은 내부에는 책들이 소복이 모여있었고, 반겨주시는 사장님이 정다웠다. 대부분 태국도서라 큐레이션 된 그림책을 좀 읽다가, 태국어를 하나도 모르니 그림만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아 내려놓았다. 정처 없는 눈길로 애꿎은 서가만 훑어내리다가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줄지어 꽂혀있는 책들의 등에서 낯익은 글자를 보았다. 서점에 들어와서 까막눈이 기분을 느끼고 있는 내가 읽을 있는 유일한 글자였다. 한국어, 그리고 내가 이미 읽어서 한국 서점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책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기쁜 마음에 책을 꺼내 둘러보니 종이 속살은 까만 태국어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소설을 태국어로 번역한 책들이고,  책등만 한국어 원제가 한글로 적혀있는 거였다. 내가 읽은 책,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태국서점에 꽂혀있다는 게 신기했고, 태국사람들은 이 책을 많이 읽었을지, 읽었다면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안쪽에 "치앙마이, 그녀를 부탁해"를 비롯한 한국의 치앙마이 여행서가 두세 권 놓여있어서 또 한 번 반가웠다.



  아쉬운 마음에 엽서와 스티커를 기념품으로 사고 발길을 돌려 맞은편에 있는 세계 라떼 챔피언이 운영한다는 리스트레토 커피로 갔다. 찜통 같은 날씨에 야외 테이블에 앉은 지독한 얼죽아이자 유당불내증이지만, 라떼아트로 유명한 세계적인 바리스타라고 하니 전에 없이 따뜻한 라떼를 시켰다. 벨벳크림 위에 살포시 올라가 있는 천사의 날개 같은 하트 아트를 감상하며 호로록호로록 마시다 보니 어느새 더위도 도롯가를 가득 채운 매연도 잊고 한 잔을 비웠다.




 플레이웍스에서 엽서, 손수건, 파우치 등 기념품을 실컷 쇼핑하고 마야몰로 갔다. 원래는 마야몰 안에 있는 팟타이가 맛있다고 해서 먹어보려고 했는데 아직 배가 채 꺼지지 않아서 치앙마이 스타일 옷을 몇 개 사고 아이쇼핑만 실컷 하다가 지쳐서 땡모반을 한 잔 마시면서 쉬었다. 역시 태국은 1일 1땡모반...  땡모반으로 에너지를 다시 장전하고 나라야 매장을 찾아갔다. 오래전 유행을 탄 이후로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브랜드다. 파우치, 여권지갑, 안경집, 장바구니 등 기념품을 신나게 장바구니에 담았다. 특히 코끼리 문양 아이템이 너무 치명적이라 심장을 부여잡으며 주워 담았다.




  쇼핑을 마치고 두 손은 무거운데 님만해민에서 올드시티로 가는 썽태우가 잡히지 않아 툭툭을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짐을 내려놓고 란나스퀘어 야시장으로 갔다. 관광객, 특히 서양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망고와 맥주를 시켰다. 음식을 시키고 먹는 사람들로 시끌시끌하고, 무대에서는 포크가수의 노래공연과 학생들의 댄스공연이 이어졌다. 싱싱한 망고와 시원한 창맥주와 함께 공연을 즐기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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