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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smile Aug 04. 2024

남자친구였다면, 지금이 끝낼 때.

여자들이 아기를 낳을 때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한 사람이 있다.

나에게 이 고통을 준 그 남자...




부부가 아기를 키울 때 참으로 많이 싸운다. 왜 아기를 그렇게 입혔느냐, 아기한테 그런 거 주면 안 되지 않느냐, 아기한테 왜 그런 말을 하냐 등등 싸울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시댁문제, 집안문제, 금전적 문제, 가치관의 문제로도 다투는데, 아기는 그 모든 것과 다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힘드니까 사람이 예민해져 있다. 예민해진 상태에서는 작은 자극도 크게 느껴지는 법.


나도 꽤나 많이 다퉜다. 신혼 때는 약간의 토라짐에 신랑이 달래주는 걸 즐기는 부분이 있던 것 같다. 그러나 아기를 키울 때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싸우는 데에 에너지 소모를 하는 것도 사치로 느껴질 때였다. 잠이 너무 고팠고, 잠을 방해하는 요소는 없애고 싶었다.


아기를 낳았다고 당장 "그래, 나는 아줌마다!"라는 마음이 생기진 않는다. '여자'라는 정체성이 너무나 컸던 내겐 신랑한테 여자로서 인식되고 싶었던 마음이 매우 클 때였다. 그러나 그러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모유수유 하며 젖내 나는 내의를 입고 신랑을 맞이하기도 했고, 세수를 언제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때가 있고, 거울을 들여다볼 시간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스스로 견디기 힘들었기에 신랑에 대해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나 스스로도 허덕이고 있는데 옆에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말을 듣거나 그런 행동을 볼 때 신랑과 투닥거렸던 것 같다. 


아기가 조금 더 컸을 땐, 둘이 마주 보면 아기 얘기만 했다. 이때 너무 귀엽지 않으냐, 이때 너무 웃기지 않느냐 하며 둘만 있어도 아기사진을 보면 낄낄댔다. 아기 이야기 빼고는 할 이야기가 없었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것은 어쩌면 생존과 관련이 있다. 아기의 생존도 그렇고, 우리의 생존도. 겨우 잠자고, 겨우 밥 먹었던 우리 부부. 생존에 충실하다 보면 나머지는 다 사치처럼 여겨지게 되어있다.


하지만 어렸던 나는 그런 게 싫었다. 아직 꾸미고 나가서 놀고 싶고, 신랑이랑 데이트도 하고 싶은데. 그 모든 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던 현실이 슬펐다고나 할까. 아기랑 함께해서 기쁘기도 한데, 슬프기도 하고, 또 신랑과는 예전처럼의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아쉽기도 하고. 그런 일련의 감정들이 섞여서 내 마음은 복잡 미묘한 상태였던 것 같다. 나의 상황은 완벽하게 변했지만, 내 정신과 감정은 아직 그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고나 할까.



내 감정상태가 온전치 않았기에 만만한 건 신랑이었다. 나의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고, 나를 화나게 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고... 이렇게도 싸워보고, 저렇게도 싸워보고, 극단까지 가봤다. 서로에게 나쁜 말을 쏟아내고, 자존심까지 짓밟혀보고... 그때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이가 남자친구라면, 정말 지금이 끝내자고 말할 때겠구나. 더 이상 어떻게 꿰매어야 할지도 모르게 산산조각 나버린 것만 같은 내 마음. 더 이상 마주 보고 싶지도 않은 신랑의 얼굴. 앞으로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관계.


그런 폭풍우를 잠잠하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아이더라. 비록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이 존재 자체가 우리의 관계의 실낱같은 희망이 되어, 시간과 함께 바늘로 꿰매주더라. 꼼꼼하게...

아이 때문에 싸우는 게 시작됐는데, 종국에는 아이 때문에 회복이 되더라.


아이 덕분에 나도 더 성숙해지고 성장할 수 있었고, 신랑도 그랬다. 

서로를 더 치열하게 겪으면서 가족과 가정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기도 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졌다. 물론! 아직도 수련 중이지만...


우리는 열심히 자신의 할 일을 하다가 마주하면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웃는다. 

서로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도 하고 농담도 하면 모든 피로가 가신다.

그거면 됐다는 걸 서로 깨닫는 순간, 우리가 더 소중해졌다.


서로에게 부담 주지 않고, 기대를 조금은 낮추고. 

미래를 함부로 예단하지 말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게 아이를 통해 내가 배운 부부의 자세다.

설렘에서 안정적이고 포근한 관계가 된 우리 부부.

진정한 엄마 아빠의 모습으로 조금은 변모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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