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에는 억울한 일들이 도처에 있다. 예를 들면 학교폭력도 억울한 일이다. 피해자에게 네 탓이다. 네가 친구들과 잘 못 어울려서 그런 거야. 장난으로 그런 거야, 친구들끼리 논 거야.
학교폭력을 당한 학생에게 그런 말들은 또 다른 가해이다. 폭력을 당한다는 건 아프고 괴롭고 억울한 것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래야 산다.
좋은 말이 있다. 다 내 탓이다, 그래야 용서가 되고 증오가 없어지고 살아갈 수 있다. 참으로 덕 있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로 다 내 탓일까? 내가 잘하면 나쁜 일이 안 생기는 걸까? 그런 건가?
그 좋은 말. 다 내 탓이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할까? 아니면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지 않고 상대방 탓으로 돌릴까?
자책이야말로 무서운 것이다. 자책하면 우울하게 되고 미궁에 빠지게 된다.
자책 : 자신의 결함이나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깊이 뉘우치고 자신을 책망함 (네이버 사전)
자책은 잘못한 사람이 해야 똑같은 잘못을 안 하게 된다.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게 된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용서가 된다. 용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억지로 하는 용서는 결국에는 참다가 터지게 된다.
용서도 다 때가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도 있는데 아직은 용서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사랑을 2년 하고 실연을 하게 되면 그 사랑을 잊어버리는 데에 2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다. 상처가 깊고 아픔의 시간이 길었다면 용서의 시간도 그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겉으로 웃고 지낸다고 속으로 아프지 않은 게 아니다. 자신이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야만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단단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더 이상은 비참한 곳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달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용서는 달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독일은 진정한 사과를 하고 책임 있는 말과 행동을 했다. 용서받을 수 있는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도 망언을 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을 용서해야만 하는가? 일본은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