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일어나서부터 포문처럼 내 머릿속에서 계속 일어나는 말 "당신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신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말이 내게는 큰 울림을 주었다. 따뜻한 말이었다.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주는 움직여주는 동적인 말이었다.
추운 겨울날 웅크려진 몸을 풀어주는 우동 한 그릇의 국물 같은 거였다. 따뜻하고 시원하고 배부른 그런 거였다. 그분의 말씀처럼 나는 여기까지 왔구나, 실감 나는 말이었다. 그래, 나는 지금 여기에 와 있다. 따뜻하고 안정적인 곳에서 하고 싶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에 와 있다.
감사했다. 이 세상 혼자다. 하늘 아래, 땅 위에서 나는 혼자다. 그 기분이 몹시 사람을 처량하게 만들었다. 불쌍해 보이지 않으려고 반듯하게 서 있으려고 애를 썼지만 내 속은 흔들리는 가랑잎처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찬 빗속을 내달려야 하는 그런 처량함이 나를 맴돌아서 고달팠다. 그런데 나를 위한 찬양곡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를 생각해 주시는 분이 계셨다.
누군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
오늘 아침에는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좋아했었던 찬송도 듣게 되었다. 그분 덕분에.
아주아주 아주아주 오랜만에 실컷 울었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당신이 외로이 홀로 남았을 때
주님이 아시네 당신의 마음을
그대 홀로 있지 못함을
조용히 그대 위해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나는 그동안 임신한 여자처럼 성경과 찬송을 멀리 했었다. 보기도 싫었고 듣기도 싫었고 부르기도 싫었다. 내가 우는 게 청승맞아지는 게 싫었다. 그냥 씩씩하고 싶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마음으로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거야. 넌 할 수 있어. 나는 당당하고 용감하고 멋진 여자이고 싶었다. 성경책을 보면서 훌쩍이고 싶지 않았고, 찬송을 부르면서 슬픔에 잠겨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울고 나서 후련해졌다. 그분 덕분에 성경도 읽고 찬송도 듣고 부르게 될 것 같다. 기도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은 하나님을 부정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질문을 많이 던졌다. 여기에 일일이 적을 수는 없지만 나는 세상에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던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했었다. 그렇지 않나요? 이런 질문들을 했었다. 기도는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 그런 의구심을 쏟아냈었다. 가끔 나의 그런 의구심을 남편한테 스쳐 지나가듯이 풀어내고는 했었다. 그러면 남편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 그랬었다.
어젯밤 늦게, 자정너머 새벽까지 <샤론의 꽃 예수> 찬송을 들었다. 그분의 댓글을 다시 한 번 읽었다. 그리고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다시 들으면서 그분의 따뜻함에 문득 <샤론의 꽃 예수> 찬송 생각이 났다.
하나린이 부르는 <샤론의 꽃 예수> 찬송을 좋아한다. 왜? 언제부터? 어린 시절 교회에 다닐 때 불렀다. 오랫동안 생각도 안 났었고, 당연히 찾지도 부르지도 않았던 그 찬양곡이 다시 기억이 났다. 어린 시절 머릿속에 입력된 기억은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랑 교회에 다닐 때 나는 이 찬송을 들었던 것 같다.
내 생명이 참사랑의 향기로
간 데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마음에 사랑으로 피소서
아주 오랜만이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찬송을 들었다. 작년 상반기쯤인 것 같다. 어느 날 노사연이 찬양하는 이 찬송을 듣고 감명을 받아서 아주 한참 들었던 기억이 났다. 반가운 마음도 있었고, 또 걱정해 주신 작가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마음이 울컥해졌다. 아, 나를 걱정해주신 분이 계시구나. 조용히 몇 번을 들었다.
2024년 9월 13일 금요일 감사일기
(아헤브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응원해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